죄가 있어야 벌 받는 거 아이가? : 밀양송전탑 투쟁 할매·할배의 11명 항소이유서

2015-10-29     원성윤
ⓒ한겨레21

왜 지금 밀양인가.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은 2005년 12월5일 시작됐다. 당시에는 어느 언론도 보도한 곳이 없었다. 한 달 남짓 뒤면 10년을 맞는다. 한국 사회에서 단일 사안을 두고 10년 싸움을 벌인 전례는 찾기 힘들다. 더구나 밀양 투쟁에 참가한 이들의 대다수는 60~80대 노인이었다. “우리는 요대로만 살고 싶습니다”라고 호소하던 할매·할배를 국가권력은 철저히 짓밟았다. 그리고 점점 밀양은 잊히고 있다.

취재는 지난 9월15일 주민·연대활동가 18명에 대한 1심 선고 당일부터 시작됐다. 이후 10월6~7일 이틀간 밀양에서 11명을 만났다. 18명 가운데 한국전력공사와 합의했거나 벌금형 선고유예를 받은 이들을 뺀 전부다. 항소심 재판을 앞둔 그들의 육성으로 송전탑 건설의 부당함, 검경의 수사·기소와 법원 판결의 정의롭지 못함을 들었다. 또 하나의 ‘항소이유서’다. 6시간30분에 이르는 녹음 분량을 지면에 모두 싣지는 못했다. 밀양 송전탑 반대 10년 투쟁을 되돌아봤고, ‘시즌3’를 준비하는 움직임도 살폈다.

그렇게 한 달간 이어진 취재의 결과를 독자에게 전한다. 송전탑을 막고 싸움을 끝내리라 희망했던 밀양의 할매·할배들은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철탑이 있어도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취재 전진식 기자, 편집 박수진 기자, 디자인 장광석

지난 10월6일 밤 경남 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에서 바라본 765kV 초고압 송전탑.

지난 9월15일 창원지법 밀양지원 형사법정. 머리에 서리가 한가득 내려앉은 노인들이 들어섰다. 피고인석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판결문에 적힌 이들 18명의 죄명은 ‘가. 상해’에서 ‘러.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까지 18가지에 이른다. 늘어선 피고인들 누구도 선처를 바라거나 죄를 부끄러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들은 냉정한 법정에서 외려 웃거나 따뜻하게 손을 맞잡았다. 판사의 양형 선고가 끝난 뒤 피고인 한 사람은 자리에 무너져 울었다. 억울하고 미안하다는 눈물이었다.

유죄 선고 뒤 무너져 운 할매·할배들

한옥순(64·부북면 평밭마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10년을 이렇게 했는데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밤에 잠을 못 잡니다. 대구에 정신병원 가서 약을 좀 타먹었어예. 지금도 밤에는 잠이 안 와요. 왜 제가 옷을 벗었노 하면, 그 굴 안에 우리가 있었는데 우리를 죽일라꼬 경찰 이삼천 명이 왔는데, 우린 안 죽을라꼬 옷 홀딱 벗고 쇠줄 감고 있었어요. 안 끌려나갈라꼬. 여자 경찰도 아니고 남자 경찰이 칼을 들고 와서, 우리는 완전 반기절을 했어요. 칼을 들고 우리를 위협해놓고 개 끌듯 끌어내고. 같은 동족끼리 전쟁도 아니고, 할매라도 여잡니다. 경찰 앞에서 나 안 죽을라꼬 옷을 벗었어요.

이남우(71·부북면 평밭마을) 상해 등/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송전탑이 꼭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다 카면 내 재산 가치가 몰락해도 돼요. 그런데 그게 아이라. 철탑이 여기서 여기로 갈 거면 바로 가야 철탑 수도 줄어들고 불평불만도 무마하잖아요. 근데 요기엔 특정인의 농장이 있어. 둘러가다보니까 철탑이 7개씩 들어서야 돼. 1개에 30억씩. 4개 마을 거쳐가야 하고. 한 사람만 피해 보면 되는데…. 저기 송전탑 철선은 피복을 안 한 겁니다. 전자파 그대로 노출됩니다. 이렇게 부정하게, 비민주적으로 공사를 하니, 우리가 참을 수가 없다 아이가. 제일 가슴 아픈 게 그깁니다.

건강이 문제고 재산이 문제지마는 한전하고 정부의 미래를 팔아먹는 전기 정책 때문에 더 가슴 아파하고 반대하고 있다는 거 아입니까. 이라면 안 됩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경찰들이 손가락 사이에 연필 깎는 칼을 끼워서 할매들 옆으로 지나가면서 쓱 긁어서, 할매들 손에 피가 나고 하는데 즈그들은 모른다 카고. 이 나라가 이래서 되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더 분노한다 아입니까.

손가락 사이에 칼 끼워 할매들 긁고

송영숙(59·단장면 용회마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하루아침에 국가에서 이거 하겠다고 뺏어가니, 강도나 마찬가지라예. 막상 일을 당해보니까, 다시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준 거예요. 이렇게 주민을 무시하고 하는데, 우리 한두 사람 죽는 건 눈도 껌뻑 안 하는구나. 생명을 중시하지 않는 국가는 경제적으로 발전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거는 선진국 가는 길이 아니거든예.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이는 게 진실이 다가 아니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된 기라예.

우리는 기댈 데가 없고 앞이 캄캄한 거예요. 법에 따라 재판받고 있지만 우리는 형 살라 카면 들어가 살면 되고, 그런 건 겁 안 나예. 이런 식으로 억압하면 안 되는 기라. 힘의 논리로 무조건 밀어붙여가지고 하는 건 정말로 거꾸로 가는 기라예. 민주주의 선진국 될라 카면 이거부터 정리해야 돼요. 우리는 끝까지 싸울 기라예. 우리가 이렇게 형을 받을 만큼 잘못한 게 있나 하면, 공사를 방해할라꼬 엄청나게 불을 지르고 파괴했다 치면 죄를 받을 수 있지만, 우리는 저항을 했다뿐이고 쫓겨난 건데. 너무 더러븐 거예요. 자기들은 우리를 어떻게 했는데…. 대한민국 국민이란 거에 자부심을 가져야 되는데 그게 아닌 거예요. 그게 서글프고…. 어디를 가도 나는 내가 떳떳해지고 싶기 때문에, 한전에도 그랬어예. 모든 사람이 떠나도 내가 혼자 남을 거라고.”

“길만 막아도, 욕만 해도 업무방해”

윤여림(76·부북면 위양마을) 상해 등/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윤여림 씨(왼쪽), 정임출 씨

2013년에 암에 걸려갖고 수술하고, 그래서 몇 달 (반대 활동에) 참가를 못하고 있다가 2014년부터 또 참가했지. 2013년 9월에 판결받아가지고 시월 십일월 십이월 몬하고.

판사한테 할 말? 정치논리로 판사도 하는데 거서 뭔 얘기를 할 거야. 할 이야기가 없어요. 저번 재판에서도, 내가 죄가 없다면 무죄로 하고 죄가 있다면 구형보다 더 세게 때려달라고 했어요. 살려달라 그런 소리 필요 없고 판결만 정확하게 하라는 얘기만 햇지. 정치논리가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이야기라.

정임출(73·부북면 위양마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2013년 오월달에 저놈들한테 끌려나올 때, 끌려나오기 전에 그랬거든요. 내가 화장실 간다고 내려오니까 못 올라가게 길을 딱 막더라꼬. 기어코 길을 막는 기라. 오월달이 덥다 아입니꺼. 우리는 땡볕에 있고 즈그는 차광막 쳐서 그늘에 있고. 우리 움막에 맨 줄을 풀어서 즈가 끈을 매서 쳤더라꼬. ‘왜 느 끈 하지 우리 끈 하노’ 그러고는 끈을 딱 푸는 순간에 ‘이 더러븐 세상에 살면 뭐하노’ 싶은 마음이 딱 들더라꼬. 그땐 아무 생각이 없어. 나뭇가지가 있길래 딱 던지는데 누가 뒤에서 잡더라꼬. 보니까 형사가 ‘할매 이러면 됩니까’ 카더라꼬. 그 자리에서 통곡이 나오더라꼬. 실컷 울었거든요. 그때는 죽고픈 맘밖에 없더라꼬요. 자슥도 생각도 안 나고 내 목숨 하나 눈 감아뿌면 고만이라고.

내가 청년들한테 말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죽어도 끝까지 저 철탑 빼낼 때까지 한다. 저거 있으면 후손들이 못 산다. 우리 하다 못하면 후손들이 해야 한다. 우리가 없으면 느가 해야 한다. 그걸 알고 앞으로 선거하면 불참하지 말고 선거해’라고예. 정의롭게, 위에 눈치 보지 말고 판결해줬으면 좋겠어예. 시장이 서민을 외면하면 어째서 시장이 됩니까? 시장이 서민하고 대화를 해야 옳은 시장이지. 이거는 아이잖아요. 서민 없는 나라가 어딨고 서민 없는 기업이 어딨습니까?”

“더 좋은 에너지로 송전탑 없어질 세상 올 것”

서종범(55·부북면 위양마을) 업무방해 등/ 벌금 200만원

한전은 항상 피해 없다고 얘기해요. 왜 피해 없다면서 1킬로 반경에 다 보상해주냔 말이에요. 그거는 논리가 안 맞는 기라. 첨엔 저는 정부 비판 안 했어요. 근데 한전, 정부에서 거짓말하는 기라.

9월에 판사한테 얘기했어요. ‘일제강점기 시절에 독립군들이 독립운동하고 감옥도 들어가고 그랬다. 세월이 지나면 우리 말이 맞은 거를 언젠가는 역사가 증명할 거다’. 앞으로 더 좋은 에너지 나타날 수 있어요. 그러면 송전탑이 없어지고 그런 세상이 있을 거예요. 정권이 바뀌고 민주화가 되면, 지금도 70년대에 민주화운동 해서 감옥 간 사람들 재심해서 다 무죄받고 정부에서 보상받고 그러잖아요. 우리가 잘못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걸 세월이 증명할 거예요.”

문정선(47·전 밀양시의원) 업무방해 등/ 벌금 200만원

낭떠러지에 전경 아이들이 떨어질 정도로 서 있어서, 걔들 다치지 말라고 주민들이 낫으로 풀도 쳐줬어요. 여경들이 화장실도 못 가고 그래서 화장실 갖다놓게 하고. 우리는 참 인간적이게 했었는데, 우리는 폭행죄고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고….

비폭력 투쟁이었거든요. 우리가 돌멩이를 든 거도 아니고. 팔만 쇠사슬로 묶고요. 경찰들 오들오들 떨 때 핫팩 까서 몰래 주기도 하고요. 우리는 그야말로 비폭력으로, 말하기 위한 자리만 만들었고 신부님들이 위로해주는 기도 하고 그게 전부였거든요. 내가 어깨 힘줄 끊어졌을 때도 하청업체 직원들 다 복면하고 있었어요.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준비한 거거든요. 앞으로도 폭력은 하면 안 돼요. 주민들도 그렇고, 경찰들도 맞으면 안 돼요.”

“공무집행방해? 경찰이 왜 산에서 공무를 보나?”

김영자(58·상동면 여수마을) 업무방해 등/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김영자 씨(왼쪽), 장재분 씨

과연 우리가 뭘 얼마나 잘못했는지, 공무집행방해니 업무방해니 하지만서도요. 경찰이 왜 산에 와서 공무를 보냐고요. 진지한 대화를 안 한 거예요. 참, 우리도 사람인데 대를 위해서 소가 희생되어야 하는 것도 아는데, 대를 위해서 소가 희생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잖아요. 누가 봐도 합리적인 공사가 아니었잖아요.

눈만 뜨면 마주쳤던 마을 사람들하고 (송전탑 찬반으로 갈라져서) 이제 말을 잘 안 하니까 이웃사촌이라는 게 없어졌죠. 이웃사촌. 너무 슬프죠.

장재분(59·부북면 평밭마을) 공동상해 등/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옆 마을에서 (합의) 도장 받는다 캐서, 그런 걸 우리가 알고 따지러 갔는데 언성만 높여도 폭력을 썼다 카고. 고함만 질러도 그렇다 카고. 너무 억울하니까 얘기하러 간 건데. ‘니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고 말만 해도 목뼈가 부러졌다 카고. 그게 우리나라예요.

서보명(55·상동면 고답마을) 업무방해 등/ 벌금 200만원

아버지 연세가 85세, 어머니가 81셉니다. 네 식구가 일해서 1년에 천만원 버는데 수입의 5분의 1을 벌금으로 내놔야 된다 말입니다. 이 부당한 짓을 한 국가에는 돈 10원도 낼 수가 없거던. 차라리 교도소 가서 노역을 했으면 했지 돈은 국가에 보태주기 싫다, 이 말입니다.

우리 송전탑 주민들은 ‘죄를 더 물어주이소’, 내 같은 경우는 ‘사형시켜주이소’ 카는 게 대한민국에 없는 일 아입니까? 그만큼 우리 주민은 당당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당신들이 단죄할 죄를 범한 적 없다”

이계삼(42·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특수공무집행방해’는 2012년 6월28일, 밀양 주민들의 밀양시청 점거 농성 사건의 주모자로 기소되면서 적용된 죄목입니다. 당시 밀양시에서 한전이 요청한 밀양 송전탑 공사 야적장 및 진입로 인허가가 곧 떨어질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공사가 곧 재개될 상황이었습니다. 거기에다 당시 밀양시 공보관이 한 언론에 ‘밀양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보상금을 더 받아내기 위한 수작’이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당시 저는 현장에서 주민들과 시청 공무원들 사이에 중재를 서면서 폭력 사태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모진 애를 썼는데, 뜻밖에도 저는 ‘점거 농성의 주모자’로 지목되었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공소장에 적시된 ‘사전 모의 및 지시’는 정말 아무 증거가 없습니다) 저를 기소하였습니다.

‘기부금품법 위반’은 저희 밀양대책위 후원계좌를 기부금품 모금 등록처로 두 차례나 신청했지만, 경상남도가 등록된 비영리법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반려하면서 자연스럽게 ‘미신고 불법 모금’의 책임자로 계좌 개설자인 저를 기소한 사건입니다. 투쟁 중인 단체에 대해서는 비영리법인 단체 등록을 받아주지도 않기 때문에 사실상 연대기금을 모으는 것은 자연스럽게 불법 모금이 됩니다. 이미 강정마을회도 이런 이유로 기소되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저는 하느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단죄할 죄를 범한 적은 없습니다.”

밀양=글 전진식 기자 , 사진 박승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