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간의 미국서부 일주②]자동차로 달린 네바다 사막, 척박한 땅에도 마을이

붉은 카펫이 깔린 실내에는 한국의 오락실 게임기처럼 생긴 수많은 게임기가 가득했다. 모두 버튼을 누르면 따거나 잃은 액수가 화면에 숫자로 표시되는 자동화된 방식이다. 손으로 당겨서 동전이 우수수 떨어지는 슬롯머신은 추억의 영화 속에나 등장할 뿐,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게임기의 종류도 무척 다양했는데, 심지어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 나오는 네 명의 여주인공을 소재로 하는 게임도 있었다. 딜러들이 손님을 상대로 카드 게임을 하거나 룰렛을 돌리는 것을 구경하다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15-10-28     임은경

▲ 9월 8일 오후에 들어간 라스베가스 대로(Las Vegas Boulevard) ⓒ 임은경

사막이라는 표현은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 같으면 이른 새벽인데 쌀쌀하기는커녕 햇볕이 너무 쨍쨍하다 싶더니, 7시가 되자 뜨거워서 더 이상 밖에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야자수를 비롯해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나무와 꽃들에 정신이 팔려있던 우리는 서둘러 김 목사 댁으로 돌아갔다. 이곳은 9월에도 낮 최고 기온이 40℃까지 올라가는 지역이다. 토론토에 있다가 하필 가장 더운 8월에 이곳으로 이사 온 김 목사 가족은 지난 한 달간 더위 때문에 심한 고생을 했다고 한다. 한국의 더위는 저리 가라다. 에어컨이 없으면 도통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다.

▲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의 사막을 가로질러 라스베가스로 향했다. ⓒ 임은경

낮 최고기온 40℃, 가뭄 심각한 LA

고속도로에 트럭은 또 왜 그리 많은지. 트럭 한 대에 두 개나 세 개의 짐칸을 연결해서 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반 승용차들도 유홀(U-Haul)이라고 부르는 승용차 전용 짐칸을 뒤에 달고 자전거나 오토바이 등 물건을 운반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승용차 뒤에 달 수 있는 유홀의 사이즈는 다양한데, 심지어 이사를 할 때 커다란 유홀을 빌려 이삿짐을 싸서 넣고 자가 운전으로 이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라디오를 듣다가 싫증나면 가져간 USB를 차에 꽂아 음악을 듣기도 하고, 이따금 사진도 찍었다. 덥고 햇볕이 너무 뜨겁긴 했지만 날씨는 정말 좋았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쾌청한 하늘에 구름도 눈부시게 하얗고 선명하다. 산이며 들에 자라는 것들은 기껏해야 사람 허리 높이밖에 안 되는 키 작은 사막 식물들인데, 그냥 눈으로 봐도 수분기 없이 빼빼마른 단단한 느낌이었다. 마치 폭탄 맞은 머리(?)처럼 사방으로 둥글게 가지를 뻗은 모습은 선인장을 연상케 했다.

▲ 네바다 사막을 가로질러 가는 길. 척박한 사막에도 식물이 자라고 사람이 산다. 미국의 도로는 보통 상행선과 하행선이 일정한 간격을 띄우고 떨어져 있다. ⓒ 임은경

한국의 대중 식당과 술집 화장실은 대개 열악하고 지저분하고 화장지도 없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서는 냄새 나는 화장실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이용객이 많은 공원 등의 공중화장실도 깨끗한 편이고, 편의점이나 레스토랑 화장실은 더 깨끗하다. 딱 한번 어느 시골 주유소에서 파리가 몇 마리 꾀는 화장실을 만나기는 했다. 미국인 여성 두 명이 화장실 문을 열어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나가는 것을 보고 나 혼자 용변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한국에선 이런 화장실이 보통인데 말이지.

뜨거운 사막 위 마을에도 사람이 살고

▲ 길이 400미터, 폭 20미터의 LED 천장이 하나의 화면이 되는 라스베가스의 프리몬 스트리트 ⓒ 임은경

피로한 몸을 침대에 눕히고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저녁 6시. 라스베가스의 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이다. 마침 호텔 근처가 라스베가스의 발상지인 다운타운이었다. 천장 전체를 뒤덮은 LED 쇼로 유명한 프리몬 스트리트(Fremont Street)가 바로 옆에 있어서 구경을 나갔다. 라스베가스에는 하루 저녁만 머물 예정이었기 때문에 도시의 신시가지 격인 스트립(strip)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미라지 호텔의 화산 폭발 쇼나 하얀 호랑이, 실내 열대 우림,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 쇼 등 유명한 볼거리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음 번 방문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프리몬 스트리트를 구경하는 데만도 하루 저녁이 다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 라스베가스의 발상지인 다운타운의 화려한 옛날식(?) 네온사인. 호텔들에서 운영하는 1층 카지노에 손님을 끌기 위한 것이다. ⓒ 임은경

거리도 온통 볼거리다. 마술, 댄스, 난타 공연 등 발 닫는 데마다 길거리 공연이 한창이고, 토플리스에 야한 란제리를 걸친 여자나 근육질의 젊은 남자들이 관광객과 포즈를 취하고 즉석 사진을 찍기도 했다. 웃통을 벗어제낀 젊은 남자와 선정적인 포즈를 취한 뚱뚱한 백인 아줌마는 좋아서 입이 벌어지고, 그 모습을 촬영하는 남편도 따라서 웃는다. 군데군데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각종 밴드 공연도 펼쳐졌다. 고개를 들면 프리몬 스트리트 천장을 끝에서 끝까지 관통하는 긴 줄에 사람이 매달려 마치 공중 비행을 하듯 날아가는 놀이기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모든 공연이 36대의 컴퓨터로 조종된다는 이 쇼는 대형 화면의 화려한 영상과 218개의 스피커와 54만 와트(Watt)의 사운드 시설에서 나오는 음악이 12분간 계속된다. 2004년에는 LG전자에서 기존의 전구를 1,250만 개의 LED로 교체, 선명한 화면과 함께 다이내믹한 사운드가 한층 생생해졌다. 이 시간동안 천장 화면을 제외한 거리의 모든 불이 꺼지고, 모든 사람이 서로서로를 껴안고 천장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 프리몬 스트리트 군데군데 설치된 무대 위에서 밴드 공연이 한창이다. ⓒ 임은경

LG에서 시공한 라스베가스 천장 LED 쇼

밥을 먹고 기운을 보충하고 나서 이번에는 프리몬 스트릿의 반대편 거리로 나서봤다. 이쪽은 호텔이 없고 작은 카지노 영업소들만 있는 거리다. 가로등을 제외하고는 불빛도 별로 없는 썰렁한 길가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카지노들의 유리문 앞에는 '스트립의 카지노보다 이곳의 베팅 성공률이 몇 퍼센트 높은지'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 적혀 있었지만, 가게 안의 손님은 많지 않았다.

숙박업소 천지인 라스베가스에는 화려한 호텔도 많지만, 미국인들이 로지(lodge)라고 부르는 소규모 모텔들도 적지 않다. 라스베가스 호텔들의 숙박료가 워낙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그 로지들의 숙박료도 호텔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럼 대체 어떤 사람들이 왜 호텔이 아니라 로지에 묵을까.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들이 현금을 주고 이용하는 곳이 바로 그런 모텔들이란다. 호텔 예약은 보증금(deposit) 제도가 있어서 기본적으로 신용카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국과는 달리 아무에게나 신용카드를 발급하지 않는 미국에서 신용카드가 있다는 것은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 혹은 신분 증명을 의미하는 셈이다.

▲ 인적이 드문 프리몬 스트리트 반대편 거리의 공원 겸 쇼핑몰 ⓒ 임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