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창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죽창이라는 단어가 섬뜩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850만명,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가 230만명,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에 이르며, 변화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현실이 더욱 섬뜩한 게 아닐까. 더더욱 섬뜩한 건 그건 각자의 능력에 따른 정당한 차별이므로 각자 알아서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발상이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원칙이 지배하는 정글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데에 전율을 느껴야 옳지 않겠는가 말이다.

2015-10-26     강준만
ⓒ겨레미술연구소 / 한겨레

동학농민군의 주요 무기였던 죽창이 그로부터 120여년이 지난 오늘날 "죽창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슬로건으로 되살아났다. '지옥 같은 한국'을 고발하는 헬조선닷컴의 메인 페이지에 등장하는 이 슬로건은 일자리 때문에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적잖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런 질책과 비아냥의 선의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헬조선과 죽창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청년들의 고통에 대한 진단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헬조선과 죽창의 파생어로 나온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비유가 잘 말해주듯이, 문제의 핵심은 '공정'이다. 따라서 기성세대가 굶주리던 시절의 경험이나 굶주리는 나라들과 비교해서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건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죽창이라는 단어가 섬뜩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850만명,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가 230만명,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에 이르며, 변화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현실이 더욱 섬뜩한 게 아닐까. 더더욱 섬뜩한 건 그건 각자의 능력에 따른 정당한 차별이므로 각자 알아서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발상이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원칙이 지배하는 정글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데에 전율을 느껴야 옳지 않겠는가 말이다.

기성세대는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청년들은 우리가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할지 그 답을 알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성원 박사가 20~34살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답은 '붕괴, 새로운 시작'이었다. 청년들은 서열사회의 붕괴와 공정사회의 시작을 원한다. 극소수의 용보다는 대다수의 개천 미꾸라지들을 위한 세상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방향 전환을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기존 모델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헬조선과 죽창을 외치게 만드는 온상은 바로 그런 각자도생 욕망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