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도 돈에 취하면 안 된다 | 홍대상권과 젠트리피케이션

요즘 자영업자들 사이에는 이런 자조 어린 푸념이 터져 나온다. '장사가 잘 돼도 고민, 잘 안 돼도 고민이다. 잘 안 되면 어떻게 임대료를 낼까가 고민이지만, 잘 되면 쫓겨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2015-10-14     김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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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주요 도시가 직면한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심 원주민 구축) 현상이다. 신흥 부유층이 도심으로 진입하면서 임대료를 높여 놓는 바람에 기존 주민들이 주택가나 상권에서 쫓겨나는 일을 말한다. 솔직히 시장경제의 부산물 같아서 이 현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기란 쉽지 않다. 도시가 돈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 아닌가?

그렇다면 늘 있어 왔던 일이자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이유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용인해야만 할까? 벌써부터 몇 가지 문제가 예상된다. 우선, 도시에 범죄와 부정의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런던 고급 주택가의 집값과 임대료를 고공행진 하게 한 것은 주로 러시아 범죄 조직의 은닉 자금이었다. 현재 인류 역사상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뉴욕 고급 콘도미니엄들 역시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의 검은돈이 출처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최대 해악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설 땅을 없앤다는 점이다. 정작 상권 개발의 주역인 그들은 치솟는 임대료로 상권이 형성조차 되지 않은 주변부로 내몰린다. 그 곳에서 재기의 기회를 찾기란 쉽지 않다. 어렵사리 주변부 상권을 일구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요즘 자영업자들 사이에는 이런 자조 어린 푸념이 터져 나온다. '장사가 잘 돼도 고민, 잘 안 돼도 고민이다. 잘 안 되면 어떻게 임대료를 낼까가 고민이지만, 잘 되면 쫓겨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세계 주요 도시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도시 재정을 들여가며 싼 임대료의 주택이나 상가를 공급하려 든다. 우리나라에서도 건물주와 자영업자간 자율 협약을 권장하고 있다. 자영업자들도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을 통해 미친 상권에 맞서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결국 사람과 마찬가지로, 도시도 돈에 취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