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의 귀가 반쪽이 된 사연 |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반려견 간 폭행

정말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 일어났다. 길 반대편에서 검은색 차우차우가 주인과 함께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차우차우의 주인인 남자가 '천천히, 천천히...'라고 개에게 속삭이는 것을 보니 다른 개를 보면 흥분하는 경향이 있는 듯해서 얼른 지나가려고 줄을 다잡는 순간, 1초 만에 차우차우는 '으르렁' 소리를 냈고, 주인은 즉각 줄을 당겨 반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발밑을 내려다보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밴조의 귀는 반 이상이 사라져버렸고, 귀가 있던 자리에서는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15-10-09     이형주

이른 시간이라 공원에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종종 조깅을 하던 길인데, 사는 게 뭐가 그리 바쁘다고 언제 마지막으로 함께 걸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밴조는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의 나들이냐"는 듯, 입은 귀까지 올라가고 꼬리는 하늘 높이 흔들면서 신나게 걸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발밑을 내려다보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밴조의 귀는 반 이상이 사라져버렸고, 귀가 있던 자리에서는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산책길에 당한 봉변, 개 주인은 '원래는 착한 아인데...'

"뭐라구요?"

14킬로그램이 넘는 밴조를 안고 꽤 먼 거리를 뛰는 동안 팔이 아픈 줄도, 온 몸이 피로 흠뻑 젖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옮긴 동물병원에서 밴조는 이빨 모양으로 잘라진 귀를 일자로 다듬고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졸지에 반쪽도 안 남은 귀를 보니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수술을 집도한 수의사는 '차우차우는 악력이 강한 종이다. 이 정도로 공격성을 보이는 개들은 야생성이 살아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목덜미 같은 급소를 공격하는데, 다행히 피해서 귀를 물린 것'이라며 '자칫 목이나 가슴을 물렸으면 즉사할 뻔했는데 그래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며 위로했다.

물어뜯긴 밴조의 귀와 봉합 수술 후의 모습 (c)치료멍멍동물병원 신사본원

남의 개에게 내 개가 물려 죽었을 때, '개 값'만 물어주면 된다?

그러나 물려 죽은 것이 사람이 아닌 동물일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동물도 사람의 '소유물', 즉 물건으로 보기 때문에 '개 값', 다시 말해 동물의 목숨 값으로 몇 만원 안 되는 돈만 배상하는 것 외에 아무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 개에게 물려 다른 개가 다쳤는데도 '뭐 개들끼리 놀다 그런 걸 갖고 그러냐'며 병원비를 못 내겠다고 되레 큰소리치는 사람도 여럿 봤다.

좋은 개? 나쁜 개?

그러나 이 법안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법이 시행되는 지역에서 사고가 줄어들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금지된 종을 숨겨서 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거나 책임감 있게 개를 기르는 견주와 동물들이 피해를 보는 등의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이다. 혼혈견의 경우 종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of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도 BSL에 대해 반대하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다. CDC는 개의 공격성은 종 외에 성별, 유전적 성향, 어렸을 때의 경험, 사회화 훈련 정도 등 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CDC는 특정 종에 국한해서 사육을 금지하는 것보다, 종과 상관 없이 책임감 있는 사람들만 동물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면허제를 실시하고, 중성화 의무화법이나 투견 금지법, 개를 묶어서 기르는 것을 금지하는 법(anti-tethering law) 등을 강화하는 등 종과 상관 없이 모든 동물 소유자가 책임의식을 갖고 자신의 동물을 통제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반려견의 종이나 크기와 상관없이 사회성을 길러주고 정신적 건강을 유지해주어야 한다. (c)Gopal Aggarwal, http://gopal1035.blogspot.com

'로망'만 가지고 기르는 대형견, 비극적 사고로 가는 지름길

나는 어린 아이들이나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강아지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다가가는 핏불들을 많이 알고 있다. 우리 동네에는 세상 느긋한 성격 때문에 '순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차우차우도 있다. 반대로, 창피한 이야기지만 예전에 부모님이 기르시던 요크셔테리어는 막둥이 대하듯 '오냐오냐'를 남발하는 잘못된 교육방법 덕에, 자신이 가족을 지키는 '서열 1순위'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어 집에 손님이라고는 얼씬도 못하는 시절을 보낸 적도 있다.

트레이드 마크이던 밴조의 '단발머리 귀', 이제는 '짝귀'가 되어버렸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 뒤따라가지 못하는 시민의식

반려동물을 기른다면, 동물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책임지는 것은 기본이다. 나와 이웃, 그리고 내 동물을 위해서 목줄, 이름표 하기, 배설물 수거하기 등의 공중도덕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가령 공공장소에서 목줄을 하지 않는 경우,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개를 잃어버리거나 차에 치이는 사고도 당할 수도 있다.

책임감 있는 '반려동물 가족 되기', 실천은 나부터

미국 수의사협회(American Veterinary Medical Foundation)이 권장하는 '책임감 있는 반려동물 가족 가이드라인(Guidelines for Responsible Pet Ownership)'

- 충동적인 결정으로 동물을 기르지 않고, 자신의 주거환경과 생활습관에 맞는 동물을 고른다.

- 음식, 물, 집, 건강 관리, 관계 등 적절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종류와 숫자의 동물만을 기른다.

- 동물 등록, 목줄 착용 등 지역 내 규정을 지킨다.

- 수의사의 조언에 따라 동물의 일생 동안 예방적, 치료적 건강 관리를 제공한다.

- 배변 처리와 소음을 조절하고 유기하지 않는 등 이웃과 다른 동물, 주위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 긴급 재난 시 동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다.

- 동물의 삶의 질이 떨어진 것을 감지했을 때는 시한부 환자 간호에 대해 수의사와 상의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