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 감별사, 고영주 이사장은 누구인가?

2015-10-10     김병철
ⓒ한겨레

하지만 그를 맞이한 공안검사는 너무도 신사적이었다. 손찌검도 없었고 말투도 정중했다. 하얀 얼굴에 검은 뿔테는 학구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검사로 기억에 남았다. 고영주 검사였다. 지금의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다.

점심도 사줬다. 자신이 직접 차를 운전해 이재화를 비롯한 운동권 출신 시보 4명을 두부집으로 데리고 갔다. 분위기가 좋은 건 거기까지였다. 고영주 부장은 앉자마자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불순분자가 침투해 있다”고 말했다. 점심 자리는 갑자기 얼어붙고 말았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변호사 이재화와 세 번의 인연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정당 해산을 밀어붙이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변론을 자처한 것이다. 그래도 고영주 이사장의 기준으로 보면 이재화 변호사도 ‘법조계의 김일성 장학생’쯤으로 비칠 것이다.

1980년대 공안검사들은 대부분 ‘악질’ 소리를 들었다. 김원치, 이사철 등이 대표적이었다. 고영주는 좀 달랐다. 그는 법대가 아닌 공대 출신이다. “군에 입대해 법 공부를 시작했다. 사법시험을 보면 휴가를 보내 준다고 해 휴가 가고 싶어서 사시 1차 시험을 장난스럽게 봤는데 합격했다. 고교 선배가 공부를 계속해 보라고 해서 검사로 살게 됐다”는 게 그의 회고담이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부드러워 보인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때 검찰은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하면서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군 통수체계 및 민주헌정질서를 뿌리째 와해시키고 건전한 경제구조를 왜곡시킨 반국가적 반역사적 범죄”라며 “결국은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것을, 진실보다 더 큰 힘은 없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 달라. 이 재판이 이 땅에 법과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이정표로 승화될 수 있도록 추상같은 법의 심판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고영주의 머리는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져간다. 금태섭 변호사가 들려준 얘기다. “검사 초임 시절에 법무연수원에서 고영주 공안기획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박홍 서강대 총장이 하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해서 놀란 적이 있다.”

고영주와 함께 공안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후배 검사는 그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일을 참 열심히 하시는 분이었다. 당시 공안부는 검찰 안에서도 엘리트 집단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대기업으로 따지면 그룹 기조실에서 일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다. 게다가 대부분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니 공대 출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자기 확신을 극도로 밀고 간 게 아닌가 싶다.”

“노무현만 아니면 내가 검찰총장…”

고영주의 사고방식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건 이제 온 천하가 알게 됐다. 하지만 보도되지 않은 장면들도 많이 있다. 방송문화진흥회가 대주주인 엠비시(MBC) 관계자가 들려준 사례다.

어느 자리에서는 고 이사장이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우리 국사교과서는 좌파들이 만든 거라 문제가 많다. 차라리 일본 교과서가 양호하다. 국사교과서를 역사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나 정치학자에게 맡겨 쓰게 해야 한다.”

검사 고영주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하는 분석은 인사에 대한 불만이다. 고영주 서울남부지검장은 2006년 초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e)-프로스’에 이런 작별인사를 올렸다. “소신에 반해 행동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아도 27년간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검찰 조직에 감사합니다. 큰 허물 없이 떠날 수 있는 걸 축하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글은 짧고 담백했지만 속내는 그러지 않았나 보다.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핍박을 받다가 더럽다고 하고 검사를 그만뒀다. 그때 청와대에 있으면서 나에게 비토권을 행사한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다. 문재인은 청와대 있으면서 나를 계속 비토하는 사람, 그 사람은 내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이다. 그렇다. 황교안 총리의 심리구조와 비슷하다. 황 총리는 예전에 스스로를 ‘좌파정권의 희생자’로 부각시키는 데 애썼다. 대표적인 게 2011년 5월 부산지역의 한 교회에서 한 특강이다. 당시 부산고검장이었던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로 규정하고 자신을 포함한 공안검사들이 부당하게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기춘과의 관계를 잘 살펴보라

고영주가 그래? 하하. 김대중, 노무현 때 탄압은 내가 받았지 왜 자기가 받아. 고영주는 그래도 할 것 다 해봤잖아.”

노무현 정부에서 검찰 인사를 담당했던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도 물어봤다. “고영주라… 별로 기억에 없는데.” 특별히 불이익을 주지도 않았고 혜택을 주지도 않아서 기억에 남는 게 없다는 취지다. 그래도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인사라는 게 워낙 주관적인 거고 개인의 기대치는 다 다를 수 있다. 섭섭하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김기춘 실장의 힘은 막강해졌고 그걸 뒷받침하는 게 검찰 조직이다. 그러나 사실은 김 실장이 검찰 조직을 잘 모른다. 떠난 지가 오래됐고 연배 차이가 많이 나 현직 검사들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김 실장으로서는 그 틈새를 메울 전직 검사들이 필요했다. 어떤 검사가 유능하고 충성심도 강한지 알아야 사람을 쓸 것 아닌가. 그래서 과거 눈여겨봤던 후배 검사들, 특히 공안부 출신들을 가까이 두기 시작했다.

정홍원 전 총리, 황교안 현 총리, 그리고 고영주 이사장이다. 정기적으로 만나며 정권 안보에 필요한 사항을 논의하고 인사 추천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총애'를 받았던 정홍원 전 총리

는 “김기춘 실장이 지난 10월 초 우파 시민단체 대표 10여명을 만나 식사를 하며 여러 의견을 들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두 가지 사실을 묶어보면 김기춘 실장과 고영주 이사장은 과거 1970년대의 공안검사처럼 좌파로부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켜내기 위해 함께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좌파를 척결하는 데 온몸을 바친다면 그만큼의 보상도 따르리라는 심리가 작용할 법하다. 검사 고영주로서는 김대중·노무현 때 평가받지 못했던 공로를 김기춘 실장을 통해 한꺼번에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은 셈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공로는 황교안 총리가 다 가져갔다. 법무부 장관에서 국무총리로 영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정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낸 점이다. 그에 비하면 고영주가 방문진 감사에서 이사장으로 승격한 건 참으로 약소하다.

고영주 이사장은 "노무현은 변형 공산주의자, 박정희는 전향 공산주의자"라고 말했다.

황교안 법무장관 내정 때의 반응

“다른 검사들은 그저 사건 하나하나를 처리하는 데 그쳤지만 저는 10년 넘게 통합진보당의 역사와 강령을 분석하고 사건들 사이의 연관 관계를 파악했습니다. 잘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캐들어간 겁니다. 오랫동안 축적한 자료가 있었기에 헌법재판소를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고영주 이사장 쪽 설명은 다르다. “법무부는 우리가 제출한 청원서를 풀어서 쓰고 우리가 제공한 자료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전공을 둘러싸고 둘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검찰을 출입하면서 검사들끼리의 경쟁을 지켜본 적이 있다. 서울지검의 공안1부와 공안2부가 경쟁하고, 특수1부와 특수2부가 부닥친다. 이게 부장끼리의 경쟁이라면 같은 부서 안에서는 검사 개개인이 실적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아무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소리 없는 총성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지나친 비약이라고? 하지만 뭐 대수인가. 고영주 이사장도 사람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그러니 고영주 이사장의 인식을 그대로 돌려줘도 될 성싶다. “고영주 이사장은 변형된 출세주의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