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15 국제디자인총회 미리보기-기조 연사(2) 하르트무트 에실링거

'디자인 민주화'나 '크라우드 소싱' 등은 비용 절약을 위해 디자인을 상품처럼 생각하는 까닭에 현실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볼 수도 있죠. 하지만 디자인 품질은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디자인은 분명 소수 전문가의 분야이고 실제 디자인적 사고는 좌뇌 성향을 가진 사람의 브리핑을 평범하게 만들고 그 한계를 드러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유행하는 평범함을 따르지 말라(Never Accept Trendy Mediocrity)'는 것입니다.

2015-10-02     전종현
ⓒHartmut Esslinger

2015-09-29-1443532756-7648287-hartmut_esslinger_portrait_audionet.jpg

하르트무트 에실링거 PROFILE

   지난 반세기 동안 에슬링거는 베가(Wega), 소니, 애플, 루이비통, 마이크로소프트, SAP, 루프트한자 등과 일하며 이들이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를 확고히 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 특히 그는 인간 중심의 하이터치 디자인을 복잡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기술의 세계로 처음 도입한 디자이너로 꼽힌다. 생존 디자이너로서 1934년 역사상 최고의 스타 디자이너로 꼽히는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 이후 두번째로 1990년 <비즈니스 위크>의 표지를 장식하며 '하이테크 디자인의 첫 번째 슈퍼스타'로 명명됐다.

         이번 '2015 국제디자인총회'의 주제는 '이음·Design Connects'입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광주에서의 기조연설 제목이 '디자이너 CEO들: 하향식 교육과 상향식 교육(Designer CEOs: Education Top-Down and Bottom-Up.)'입니다. 제목만 보더라도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한데요. 요약 말씀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제 디자인이 '지구 온난화'처럼 전 세계적인 변화까지 다루기 시작하면서 재부팅이나 다름없는 정말 새로운 사업 전략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창의성은 무한 루프의 궤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똑같은 제품을 계속해서 생산하는 과잉 체제 속에서 낭비를 지속해 왔습니다. 지구를 말끔히 하고 과열을 막는 데 필요한 새로운 기술은 정치, 경제적 이유와 연결된 거부 반응 때문에 무기력해지기 일쑤였습니다. 진정한 진보의 길을 걷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지요.

한편 아래로부터 우리의 기초 교육 시스템 또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합리적이라 여겨지는 교육 시스템은 창조적인 재능을 제대로 북돋워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위 '예술'이라는 퇴보적 원칙은 학생의 창의성을 꺾고 오히려 질식시키기 일쑤입니다. 학생 8명 중 1명은 우뇌 성향의 창의력을 보인다고 합니다. 모호하거나 '아주 고약한' 문제를 풀어내는 걸 즐기는 성향이죠. 앞으로 우리는 10살 즈음의 학생들에게 기존 교양과 자연 과학 과목 이외에 '창의 과학(creative science)을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고등 교육 또한 새로운 타입의 디자인 학교를 요구합니다. 예컨대 지난 1953년부터 1968년까지 존속했던 '울름 조형 대학(Hochschule für Gestaltung Ulm)'을 꼽을 수 있을까요. 예술적인 자기표현을 넘어 총체적인 커리큘럼을 제공했던 전설적인 그곳 말입니다. 기업, 혁신, 디자인 분야 리더 간의 동등한 동반자 관계는 창의적인 디자이너로부터 시작됩니다.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에서 리더이자 파트너로 성장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죠.

프로그 디자인의 심볼

         박사님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인 전략 회사 중 하나인 프로그 디자인(Frog Design)의 창립자이신데요. 프로그 디자인이 지금까지 다른 회사와 차별화될 수 있었던 점을 꼽아본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프로그 디자인(이하 프로그)은 디자인하는 방식을 바꾸고자 하는 제 바람에서 출발한 회사입니다. 프로그가 추구한 것은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완전히 통합되고, 사람과 자연, 미래에 유의미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략을 가지며, 저를 포함한 디자이너에게 좋은 보수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사용자와 디자이너 모두에게 인간적인 디자인이었죠. 프로그는 최고의 기업, 임원, 기업가와 협업하기를 꿈꿨고 이를 실현한 세계 최초의 글로벌 디자인 에이전시입니다. 특히 저희가 말하는 최고의 기준은 기존에 인정받던 플레이어에 국한하지 않고 스스로 더 높은 곳을 향하길 원하던 이들입니다. 축약하면 오직 최고(only the best)의 파트너인 것이죠. 이런 점은 지금도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해요.

베가를 위한 TV 디자인

소니 트리니트론 TV

         '형태는 감성을 따른다(Form Follows Emotion)"'는 프로그를 정의하는 핵심 문장입니다. 박사님이 태어나신 독일에서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생각이 강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상공을 나는 독수리, 만개한 사과 꽃, 일하는 말, 한가로운 백조, 가지 많은 참나무, 구불구불한 옹달샘, 떠도는 구름, 궤도를 따라가는 해, 이 모든 것의 형태는 그 기능을 따르는 법이다(form ever follows function). 기능이 변치 않는 한 형태도 변치 않는다. 유기물과 무기물, 물리적인 것과 철학적인 것, 인간적인 것과 초인간적인 것, 이성과 감정, 영혼의 표현, 이 모든 것에 있어 삶은 표현함으로써 인식되고 언제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그것이 법이다."

소니-베가의 오디오 시스템 Concept 51K. 뉴욕 MoMA의 영구 소장품이다.

         지난 1969년 설립한 이래 프로그는 놀라운 프로젝트를 수없이 내놓았는데요. 그중 애플의 초기 매킨토시 디자인을 상징하는 'Snow White Design Language'는 이미 전설이 되었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애플의 프로젝트 코드명은 'Snow White'였어요. 디즈니의 만화 영화 '백설공주'의 일곱 난쟁이를 본 따 총 7개의 챕터로 구성되었죠. 잡스는 디터 람스의 브라운(Braun)과 독일의 카 디자인에 호감을 표하면서 세계 최고의 디자인을 원한다고 했죠. 저는 그런 도전적인 면이 마음에 들었고 사업적 측면에서 원하는 것을 물어보았습니다. 잡스는 매우 긍정적인 사고를 했어요. 매킨토시 100만 대를 팔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건 당시 애플의 출하량의 10배에 이르는 양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코트에 번갈아가며 공을 치는 테니스 선수가 되어 질문과 논쟁을 주고받았어요.

매킨토시 SE

애플의 초기 디자인에 대한 정보는 워낙 잘 알려져서 제가 이 자리에서 모두 언급하는 건 무척 힘들 것 같네요.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다면 작년에 발간한 <Keep It Simple: The Early Design Years of Apple>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애플과 함께 일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쓴 책이랍니다.

<Keep It Simple: The Early Design Years of Apple>

*Snow White Design Language

스노우 화이트 프로토타입 'Baby Mac'

스노우 화이트 프로토타입 'Macbook'

스노우 화이트 프로토타입 'Tablet Mac'

         디자인은 현재 끝없는 변화에 대응해야만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디자인 프로세스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또한 그 변화가 디자이너, 컨설턴트, 교육자로서 박사님의 다양한 활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현실에서 디자인이라는 분야와 실제 직업으로서의 디자인 사이에 간극이 커지고 있습니다. 환경, 도시, 지속가능성 등과 관련한 문제 해결에 디자인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지만, '디자인의 민주화' 같은 움직임으로 디자이너를 위한 재정적 뒷받침이 매우 열악합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1990년 11월 <비즈니스 위크> 표지를 장식한 하르트무트 에슬링거 박사

         이번 총회의 주요 주제 중 하나가 다학제간 접근입니다. 디자인에서 유의미한 다학제간 접근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을 위해 다학제간 협업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이 궁금합니다.

         박사님은 디자인 분야에 반세기 넘게 종사하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죠. 젊은 디자이너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부탁해도 될까요?

1.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 자신의 능력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세요.

3. 성취감에 안주하는 사람보다는 앞으로 나서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역경을 기꺼이 받아들이세요.

◇ 인터뷰에 응해주신 하르트무트 에실링거 박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thedesigncracker@gmail.com

2015-07-24-1437706437-1806767-idc_poster_1_Page_2.jpg

2015 국제디자인총회

www.2015idc.org

일시     2015년 10월 17일-2015년 10월 23일

장소     광주광역시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소개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과 광주광역시가 공동 주최하는 '2015 국제디자인총회'는 세계 디자인계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국제단체들이 공식 파트너로 참여해 30여 개국, 3,000명의 디자인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