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라는 연기괴물

이준익 감독의 '사도'를 봤다. 영조로 분한 송강호를 보는 건 진정 경이로운 일이었다. 콤플렉스의 화신이자 힘센 신하들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계몽군주 영조로 분한 송강호의 연기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경지다. 불혹이 넘어 얻은 아들에 대한 너무나 큰 기대와 사랑이, 실망과 미움으로 바뀌는 과정을 송강호는 마치 영조의 환생인 듯 보여준다. 어긋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

2015-09-21     이태경
ⓒ쇼박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7일째 날에 영조로 분한 송강호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독백과 사도세자로 분한 유아인과의 상상속 대화를 하는 장면은 정말 눈물을 참기 힘들만큼 슬프다. 죽어가는 자식을 향한 아비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감정선이 송강호를 통해 분출되는 장면은 장관이라는 표현이 모자란다. 뒤주 속에서 죽은 아들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단장의 울음을 토하던 왕은 어느새 냉정을 차리고 사태를 수습한다. 아비보다는 군주로서의 정체성이 앞섰던 영조가 송강호의 연기를 통해 구체의 옷을 입는 순간이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동진으로 분한 송강호가 류로 분한 신하균을 죽이기 전 "너 좋은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그렇지?"라고 말할 때의 음성과 표정을, 류를 살해한 후 테러단에게 난자당해 죽어가면서 보이던 억울함과 궁금함(왜 살해당하는지를 알고 싶은)이 기묘하게 뒤섞인 표정을 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연기괴물 송강호는 동어반복이 어울리지 않는 배우다. '사도'의 영조 역할을 통해 송강호는 계속 진화하고 있음을, 부단히 갱신하고 있음을 훌륭히 입증했다. 연기괴물 송강호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건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