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너울·칼바람과 10시간 동안 싸웠다

2015-09-07     원성윤
ⓒ연합뉴스

제주 추자도 인근 해상을 항해하던 돌고래호(9.77t·해남선적)는 어둠이 내린 5일 오후 불룩한 배 바닥을 하늘로 향해 드러누워 버렸다.

사선의 경계를 넘나든 시간은 장장 10시간이 넘었다.

순간 풍속 초속 11m 이상의 칼바람과 빗줄기, 2m 이상의 높은 파도는 그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고 손을 놓으라'고 종용하는 듯했다.

함께 낚시하러 온 '바사모(바다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은 날씨가 나빠 섬에 하루를 더 있고 싶었다.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선장은 섬을 떠나기로 했다.

제주 추자도 인근에서 낚시 관광객 등 19∼20명(추정)을 태우고 전남 해남으로 가다가 통신이 두절된 낚시어선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로 추정되는 배가 6일 오전 6시 25분께 추자도 남쪽의 무인도인 섬생이섬 남쪽 1.2㎞ 해상에서 뒤집힌 채 발견됐다.

"금방 해경이 구조하러 올거다"라고 다독이던 선장 김철수(46) 씨도 어느새 시야에서 멀어졌다. 파도 높이가 3m나 되는데 출항을 강행한 선장이었다.

밧줄 한쪽을 스크루에 매고 다른 한쪽은 서로의 손에 묶었다. 한 명이 힘이 빠져 떠내려가려 하면 밧줄을 당겨 못 떠내려가게 했다. 그 순간만큼은 생사를 함께하는 운명공동체였다.

이씨는 "해경 함정이 저 멀리 지나가는 게 보였다. '살려달라', '살려달라' 소리쳤지만, 불빛도 비추지 않고 가버렸다"고 낙담하기도 했다.

완도읍 선적 연안복합인 흥성호(9.77t)가 우연히 사고 해상을 지나가다가 기적처럼 뒤집힌 돌고래호를 발견, 이들 3명을 구조해 낸 것이다.

이씨는 구조되고 나서 기자의 이 같은 질문에 당시를 회상하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한참을 조용히 있었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바다에서 사라진 그들, 한 명, 한 명 살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