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정치'와 8.25 남북합의의 역설

남북관계에서 통일부를 무력화시켜가면서 진행되는 청와대 주도의 본질은 국내정치에 대한 고려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에 의한 남북관계의 국내정치화가 '전쟁의 정치'와 결합되면 심각한 정치의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전쟁의 정치'와 그 언어가 갖는 선동성은 '평화의 정치'와 관련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며, 힘의 우위와 군사적 압박이 주는 달콤함은 군사주의에 대한 모든 제동을 무장해제 시키게 될 것이다.

2015-09-03     이승환
ⓒ연합뉴스

그러나 이러한 균형은 남북이 각기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와 공간을 남겼다. 8.25합의 이후 우리 정부는 "확고한 도발불용 원칙과 의연한 자세로 협상을 진행하여 지뢰 도발에 대한 북한의 사과 및 재발방지를 위한 실효적 조치를 확보"했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북은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 (...) 상대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벌이는 경우 (...) 있어서는 안될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쟁의 정치'

따라서 8.25합의는 남북이 서로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만 서로 교환하고 남북관계 발전과 관련된 나머지 문제들은 모두 8.25합의의 제1항 '여러 분야의 당국 간 대화와 협상'에 내맡긴 '긴급합의'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는 8.25합의 자체가 남북관계의 기준이나 지침이 되는 것이 아니며, '8.25합의에도 불구하고' 향후의 남북관계는 당국 간 회담이 어떤 내용을 생산해내는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전쟁의 정치'가 북한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의 군사위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계속 강조해왔던 것은 이른바 '도발-긴장 고조-대화 제의'의 전형적인 북한식 패턴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간의 남북관계 상황을 보면 정부의 이런 주장은 현실과 큰 거리가 있다. 최근에는 우리 정부의 남북대화 촉구에 북한이 '대결앙심을 감추기 위한 사기극'이라며 거부해왔지만, 작년초 북한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잠정 중단하면 올해 안에 한반도에서 많은 일들을 해결하는 게 가능하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대화를 제의했을 때 우리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오히려 한미합동군사훈련 규모 확대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강화 등 대북군사압박을 더욱 강화하는 조치로 응답하였다. 이번 군사위기 전개과정에서도 정부는 전군 최고경계태세 지시와 전투기 동원 무력시위, B-52전략폭격기 출동 검토 등 강력한 군사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8.25합의의 불편한 역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전쟁의 정치'가 국내정치적 고려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이번 군사위기에서 '전쟁의 정치'를 동원한 핵심 이유의 하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국내정치적 고려였다. 국내정치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북한의 사과라 할 수 있는데, 정부가 사과 문제에 집중했다는 것은 "사과 부분과 확성기 문제가 협상의 핵심"이었다는 통일부장관의 국회 보고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등 회담팀에게 두번이나 철수를 지시한 것도 바로 이 사과 문제 때문이었다.

청와대에 의한 남북관계의 국내정치화가 '전쟁의 정치'와 결합되면 심각한 정치의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전쟁의 정치'와 그 언어가 갖는 선동성은 '평화의 정치'와 관련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며, 힘의 우위와 군사적 압박이 주는 달콤함은 군사주의에 대한 모든 제동을 무장해제 시키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