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이 재생산권리를 쟁취한다는 것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보면 어떠한가.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장애인을 시설수용의 대상으로만 간주해 인권을 침해했던 역사와 재생산권리의 침해는 궤를 같이 한다. 시설에 수용되어 살아가기 때문에 사생활을 갖기 어렵고, 성생활 영위는 부정되었으며,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권은 박탈되기도 했다. 시설입소와 거주를 조건으로 한 불임수술이나 낙태수술을 강요한 역사는 1999년 김홍신 의원의 조사 보고서 등 여러 증언을 통해서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2015-09-02     나영정

사업을 통해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해 말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올해는 기획단을 형성하여 여성운동계, 대구지역의 장애여성 자조모임 구성원과의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올 9월에는 목포지역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및 장애여성회원들과 간담회를 앞두고 있다.

1. 화두를 던지기

- 장애여성이 임신출산 과정에서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성관계와 피임여부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는 것

- 장애여성이 가진 장애의 조건으로 인해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이 부정되거나 그러한 경험이 폄하되지 않는 것

- 장애여성이 인류의 생명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재생산 활동에 주체성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것(반드시 임신과 출산을 통한 것이 아니라 해도).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장애여성공감이 재생산권리에 관한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지고 있었던 화두라고 할 수 있다. 매우 범위가 넓고, 복잡하며, 결론을 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들이다. 근대 국가의 형성과 함께 시작돼 지금까지 누군가 태어나고, 또 누군가를 낳고 기르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내내 부딪혀 왔던 문제들이다. 그러나 그동안 이러한 화두를 은폐하는 권력에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했고, 소수자들이 논의 과정에 참여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도 없었기 때문에 장애여성이 재생산권리를 확보하기 어려운 뿌리 깊은 구조가 만들어졌다.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연속포럼 -대구지역 장애여성모임' (장애여성공감 제공)

2. 재생산권리에 접근하기

이러한 기준에 비춰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보면 어떠한가.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장애인을 시설수용의 대상으로만 간주해 인권을 침해했던 역사와 재생산권리의 침해는 궤를 같이 한다. 시설에 수용되어 살아가기 때문에 사생활을 갖기 어렵고, 성생활 영위는 부정되었으며,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권은 박탈되기도 했다. 시설입소와 거주를 조건으로 불임수술이나 낙태수술을 강요한 역사는 1999년 김홍신 의원의 조사 보고서 등 여러 증언을 통해서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장애여성이 재생산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자신의 독립적인 생활과 자신이 선택하고 구성한 가족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말하자면 긴 시간을 조망하는 인생의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가 지속가능하고 미래를 계획해나가는 생활이 가능한 구조에서 재생산권리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고 미래를 생각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장애여성의 재생산권리를 확보하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 또한 환대받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재생산권리가 왜 인권의 관점에서 제기되어야 하고, 차별과 평등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장애여성공감 제공

3. 누구와 어떤 이야기들을 해나갈까.

기획단 활동을 통해서 재생산권리를 좀 더 다양한 정체성과 위치를 가진 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볼 있었다. 이를 통해 재생산활동을 정상가족의 역할로 동일시하거나 국민의 의무나 책임, 성적 역할에 있어서 정상성을 증명하는 활동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인구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시각에서 만들어진 정책은 젊고, '건강한 몸'을 가진, 중산층의 혼인한 부부가 아이를 낳도록 장려하면서 여성의 몸을 통제해왔다. 이는 동시에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빈곤하거나 혼인상태가 아닌 커플, 특히 여성의 재생산은 위험하고 바람직하지 않고 사회에 부담을 준다는 평가를 받게 했다. 하지만 그 동안 여성운동이나 장애운동계에서 이러한 분할과 배제에 주목하고 구체적인 활동을 만들어내지는 못한 채 장애여성의 양육을 지원하는 복지정책을 펼쳐왔다.

또한 그 여정에는 장애/여성이 국가와 관계 정립을 다시 한다는 의미도 있다. 장애여성이 태어나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 안에 장애여성이 만족스럽고 안전한 성관계를 누리고, 피임과 임신출산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양육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최고 수준의 건강권과 정보권에 도달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권으로 옹호하기 위해서는 장애/여성을 바라보는 국가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국가가 변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임신과 출산을 하든 하지 않든 모두가 다음 세대와 미래를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는데 동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을 바라보는 국가와 사회의 입장과 복지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