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데이터다 고로 존재한다

돌칼과 돌도끼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석기시대 이후 부단히 발달해온 도구의 역사는 곧 인류 문명의 역사다. 현실의 삶과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더 나은 도구를 만들기 위한 생각과 시도로 나타났으며, 삶은 날로 개선되고 있다. 무수한 도구가 명멸하면서 사람과 사회에 영향을 끼쳐왔지만, 지금 우리가 당면한 상황과 견줄 만한 때는 유사 이래 없었다.

2015-03-19     구본권

인간을 보조하고 인간을 대체하는 데서 더 나아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으면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없는 미래, 설계자를 압도하는 디지털 기술에 관해 알아야 할 몇 가지

인간이 지구상의 나머지 생물종들과 다른 진화의 길을 걷게 된 걸 설명하는 개념의 하나가 '호모파베르'(Homo Faber)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술을 힘의 하나로 분류하고, 앙리 베르그송이 구체적으로 개념화했듯이 '도구를 만들어 쓰는 존재'(호모파베르)는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돌칼과 돌도끼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석기시대 이후 부단히 발달해온 도구의 역사는 곧 인류 문명의 역사다. 현실의 삶과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더 나은 도구를 만들기 위한 생각과 시도로 나타났으며, 삶은 날로 개선되고 있다. 무수한 도구가 명멸하면서 사람과 사회에 영향을 끼쳐왔지만, 지금 우리가 당면한 상황과 견줄 만한 때는 유사 이래 없었다.

먹방은 그대로, 젓가락이 바뀐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다르다. 역사상 이토록 광범하고 동시에 깊게 의존하면서, 그에 대한 사용자의 이해와 통제 수준이 낮은 기술은 일찍이 없었다. 농경술·인쇄술·산업혁명 또한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기술임이 틀림없으나, 지금의 디지털 기술과 몇 가지 점에서 다르다.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까지 규정하는 디지털 기술의 속성을 알아야 비로소 생존이 가능해졌다. 이미 우리의 통제를 넘어서 그 설계자를 압도하는 디지털 기술에 관해 알아야 할 몇 가지를 살펴보자.

나도 미래의 인류가 요리하고 먹는 즐거움을 알약과 3D 음식제조기의 편리함과 곧장 맞바꿀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먹는 즐거움과 요리하는 기쁨이 포기할 수 없는 본원적인 생활 방식이라고 해서 미래의 식탁이 변화의 무풍지대는 아닐 게다. 우리는 계속 숟가락과 젓가락, 그릇을 이용해 식사를 하겠으나, 그 모습은 디지털화할 것이다. 지난 2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는 '미래를 바꿀 10가지 정보기술(IT)'에 중국 바이두가 2014년 공개한 스마트 젓가락 '콰이서우'를 선정했다. 스마트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으면 음식의 성분과 온도, 열량 및 부패 등 안전성 등이 자동 감지·측정되는 기술이다. 2010년 일본의 변기 제조업체 토토는 소변을 분석해 당뇨 등 건강 상태를 체크해서 의료진에 자동 전송하는 기능의 스마트 변기를 선보인 바 있다. 주목되고 있는 미래의 스마트 홈과 원격의료 시스템의 일부분이다. 이처럼 요리하고 먹고 배설하는 것처럼 변화하지 않을 인간의 본능적 행위에도 디지털 기술은 다양한 형태로 결합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영향을 받지 않을 영역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정확하다.

"너는 나를 창조했지만 주인은 나야"

에서 괴물이 자신의 창조자를 협박하며 "넌 나를 만들었지만 네 주인은 나야. 어서 복종해"라고 울부짖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디지털 기술이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곧 인간이 생활하고 관계 맺는 모든 방식에 변화를 요구한다는 말이다. 전기와 전구의 발명 이후 밤마다 촛불과 호롱불을 밝힐 필요 없이 밤 시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듯, 새로운 기술로 생활 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디지털 기술은 예전과 같은 범위와 성격을 훨씬 넘어선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은행과 카드사 등 각종 금융기관에 기록된 개인별 정보는 물론이고 스마트폰과 각종 센서 등의 도구를 통해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개인들의 미세한 자료까지 수집해서 전산처리하고 인터넷에 연결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지난 1년간 어디에 지출하고 다녔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기계와 세무 당국은 1원 한 푼 빠뜨리지 않은 채 고스란히 기록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섬뜩해진다. 교통카드 이용 내역을 인터넷으로 조회해볼 때도 비슷하다. 내가 교통카드를 이용해 이동한 시각과 위치가 오차 없이 정확하게 기록돼 있다.

에서 강조하는 바다.

두려움은 더 커진다. 인터넷과 컴퓨터는 기존의 다양한 장벽을 없애고 세상 모든 정보와 사람을 연결시킨 마법처럼 편리한 도구로 다가왔으나, 일자리를 없애며 많은 직업 종사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물론 컴퓨터를 통한 자동화와 기계화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산업구조를 바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가 새 직종과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는 일자리의 전체 차원과 장기적 관점에서의 통계이자 전망이다. 당장은 과거 방식대로 일해오던 직무와 그 종사자들의 지위가 위협받는 걸 피할 수 없다. 2014년 12월 국내 금융·보험 분야 취업자는 80만7천 명으로, 1년 전에 비해 5만2천 명이 줄어들었다. 2009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다. 은행과 증권 업무의 대부분이 창구가 아닌 온라인으로 처리되는 세상에서 불가피한 현실이다.

서울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의 방범용 폐회로텔레비전(CCTV) 관제센터 모니터에 비친 강남 거리의 모습

사람도 데이터, 데이터일 때 출입이 가능

셋째, 디지털 세계에서 모든 것은 데이터이고 모든 데이터는 처리(Processing)된다. 독일 관념론이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을 인간의 정신적 작용이 만들어낸 의미와 개념으로 파악했다면, 디지털 세계는 모든 것을 데이터로 간주하며 0과 1의 전자적 형태로 치환한다. 이동성 있는 생물인 사람도 데이터에 불과하며, 데이터일 때만 비로소 디지털 세계의 출입이 허용된다. 데이터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는 디지털 세계에서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없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 설립자인 니컬러스 네그로폰테가 1995년 저서 <디지털이다>에서 "아톰의 세계가 비트의 세계로 전환되는 걸 막을 수 없다"고 예측한 그대로다.

네그로폰테의 20년 전 예언을 현실로 만드는 결정적 도구는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화 세상을 향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동시에 스마트폰은 사용자들이 접촉하는 모든 것을 데이터로 바꾸는, 미다스의 손과 같은 도구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스스로 데이터를 만들어 제공하는 게 대가이자 사용 조건이다. 피드백을 통한 서비스 개선을 위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해, 또는 사용자 모르게 설계자가 만들어놓은 매트릭스에 따라, 사용자는 자신의 데이터를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SNS를 통해 일상의 대화와 사적 메모가 데이터로 변신하고, 인스타그램과 플리커 등의 이미지 공유 서비스를 통해 우리가 눈으로 보는 시각정보는 컴퓨터가 인식하는 픽셀 데이터로 변환된다. 비콘(Beacon)과 각종 센서, 웨어러블 기기, 생체이식형 컴퓨터 등 인간의 모든 활동과 상태를 데이터로 만들기 위한 경쟁과 상품화가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다음달 출시될 애플워치는 스마트폰에서는 불가능하던 개인의 신체 상태 데이터를 만들어내 활용하게 하는 도구다.

충남 금산군에 위치한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은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2011년 준공된 금산3공장의 자동화율은 98%에 이른다.

디지털 족적 없이 살 수 있겠는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엔진 빙(Bing)은 지난 2월23일 열린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를 뛰어난 정확도로 예측했다. 작품상, 감독상, 남녀 주연, 남녀 조연 등 주요 6개 부문의 결과를 정확히 맞혔고 전체 24개 부문 중 20개 수상자 예측에 성공했다. 84%의 적중률은 미국 카지노 업계의 예측보다 훨씬 정확했다. 구글의 자율주행 자동차도 방대한 데이터와 이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기술이다. 레이더와 카메라를 통해 인지한 주변의 교통 상황과 운행 지역의 지리정보가 실시간 데이터로 만들어지고 이 데이터에 따라 자동차를 제어하는 알고리즘이 핵심 기술이다. 2004년 미 국방부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첫 무인자동차 대회를 열었을 때만 해도 132km 완주에 성공한 팀이 없었으나, 구글의 자율주행 차량은 2014년 110만km 무사고 운행에 성공하며 빠르게 기술을 개선하고 있다.

연말정산 과정에서 경험했듯, 구매와 대중교통 이용 등 경제적 활동과 조금이라도 연결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기록돼 있고 데이터 접근권을 가진 권력에 의해 활용되는 삽화를 수시로 만나게 된다. 지난 정권의 한 고위 공직자는 뇌물로 받은 억대의 백화점 상품권을 몇 년 뒤 사용하면서 포인트를 적립했다가 덜미가 잡혔다. 세월호 침몰 이후 장기간 도피 생활을 하던 유병언씨의 장남 유대균씨를 검거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정보는 도피 조력자가 물건을 산 뒤 무심코 발급받은 현금영수증 한 장이었다. 감시 대상인 사용자는 디지털 사회의 구조와 특성을 모른 채 조심스레 움직였지만,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을 피할 수 없었다. 10년 넘게 미국 정보기관의 철통 감시망을 피해 은신한 오사마 빈라덴처럼 일체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디지털 족적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사고와 판단력 영역에서도 우위 넘겨줘

컴퓨터는 사람과의 대결에서 일찌감치 승리를 거뒀다. 1997년 IBM의 컴퓨터 딥블루는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눌렀고, 2011년 2월 컴퓨터 왓슨은 퀴즈쇼 <제퍼디>의 저명한 인간 우승자들을 잇따라 꺾었다. 사고와 판단력이 중요한 영역에서 사람은 컴퓨터에 대한 우위를 상당 기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허망한 기대였다.

에 스스로 학습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장치(DQN)의 개발 사실을 공개했다. 이 장치는 세계 최초의 비디오게임회사 아타리의 49종 고전적 비디오게임을 처음 실행하면서 보상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모습을 보여줬다. 얼굴 표정을 분석하는 미국 기업 이모션트(Imotient)는 2014년 미세 표정 변화 연구의 대가인 폴 에크먼 박사의 '얼굴 움직임 부호화 시스템'(FACS) 연구를 바탕으로 구글 글래스용 '감정 분석'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매장에 들어온 고객의 표정을 분석해 감정을 파악한 뒤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이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7월 70만 명을 상대로 뉴스피드 조작을 통한 '감정 전염 실험' 결과를 자랑스레 학회지에 발표했다가 거센 반발에 직면한 바 있다. 컴퓨터의 지능과 알고리즘이 단순 연산 기능을 넘어 인간 고유의 특성으로 간주돼온 감정과 학습 기능마저 갖추려는 욕망이 드러난 사례들이다.

에서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로 볼 때, 2045년이면 인공지능이 사람의 지능을 능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의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인류 최대의 실존적 위협은 인공지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인공지능은 스스로를 개량하고 도약할 수 있는 반면, 인간은 생물학적 진화 속도가 늦어 인공지능과 경쟁할 수 없고 대체되고 말 것"이라며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미래인간성연구소장인 닉 보스트롬은 2014년 펴낸 <초지능>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순간 로봇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 미래를 만들어나갈 것"이라며 이에 대한 적절한 통제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달리, 저명한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는 단순해 보이는 인간의 인지와 판단 기능을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것은 앞으로도 여전히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본다. 주식 분석 직종은 컴퓨터와 알고리즘에 대체돼도, 요리사나 정원사의 직업은 적어도 수십 년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핑커의 예측이다.

인간과 기계의 공생 혹은 경쟁

에서 미래에는 사람들이 사람들과의 친교보다 사람을 닮은(휴머노이드) 로봇과 교감하며 자연스럽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자율적 학습능력과 감정 인식 기능을 갖추고 사람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을 걱정하는 2015년 시점에서 보면, 로봇과의 친교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일찍이 1930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기술 발달에 따른 실업을 일시적 현상으로 봤다. 기계의 효율성과 기술 진보 덕분에 미래에 인간은 일자리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고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벗어날 것이란 게 그의 전망이었다. 미래 인간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한한 여가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디지털화에 따른 격차 확대는 지식정보 사회가 가져온 역설적 현상이다. 인터넷과 디지털화는 지식과 정보 등 전통적 희소자원에 대한 장벽을 낮춰 거의 모든 구성원에게 접근권을 허용했으나 그 결과는 부나 권력과 같은 자원의 분배에서 격차가 더욱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개인들만이 아니라, 기업과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에 실은 '가련한 러다이트'라는 칼럼에서 산업혁명 당시를 언급하며 "기계를 다루는 법에 대해 재교육을 받지 못한 대다수는 장인으로 대우받던 과거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단순 반복 업무의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제2의 기계시대> 저자들은 산업혁명이라는 제1의 기계시대에는 동력기계가 육체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면, 정보화라는 제2의 기계시대에는 자동화와 알고리즘이 지식노동자들의 직무를 대체하고 있다고 말한다.

에서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변화하는 지식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를 배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기계가 압도하는 '특이점'은 올까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