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났다, 임신했다

2015-08-24     곽상아 기자

모성애 탐구생활

한 달 하고도 일주일 전, 한 인간이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나를 엄마로 맞이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그러니까 나는 모성애라는 것은 애초에 내 두뇌나 심장에 탑재돼 있지 않다고 믿어왔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엄마로 두다니. 아이의 운명도 참…. 그냥 삼신할머니가 랜덤으로 엄마를 골라주는 과정에서 약간 재수가 없었다고 마음 편히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살다보면 재수가 좋은 날도 오겠지.

임신 6주차 초음파 사진. 여름이(태명)의 존재가 처음으로 밝혀진 날.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데에는 세상이 여성에게 던지는, 모성에 대한 강요된 시선도 한몫했다. 엄마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수많은 요구 조건들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이에 대한 저항이 의식적으로 모성애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지 않으면 ‘비정한 엄마’ ‘이기적 엄마’로 낙인찍는 사회에서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내가 지금껏 쌓아올린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또 손가락질을 해댔다. 너 편히 살자고 아이를 안 낳는 것은 정말 이기적인 짓이라고. 이러한 시선은 또한 얼마나 폭력적인가.

이후 수많은 걱정에 휩싸였던 나는 나보다 1년 앞서 출산을 한 회사 동기에게 물었다. “아무개야, 아이를 낳으면 자동으로 모성애가 생기는 거니?” 아무개가 대답했다. “아니, 안 생겨.” 이 대답은 묘하게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자동으로 모성애를 장착하고 있는 건 아니구나. 주변의 시선, 아이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등을 벗어던지고 진짜 모성애에 대해서 한번 솔직하게 얘기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 자신을 흥미롭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