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에 해방 기념을 하지 말자고?

온 국민이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가운데 왜 이런 황당한 주장을 펼칠까? 논거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기는 했으나 세계를 향해 독립을 선포한 것은 1948년 8월 15일이다. 1949년 9월 이승만 정부는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여 그 날을 광복절로 지키기로 하고, 1950년, 51년 8월 15일을 각각 제2회, 제3회 광복절로 경축했다. 그런데 1951년 한 언론의 실수로 제3회가 제6회로 기록되면서 혼란이 시작되었다.

2015-08-15     전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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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가운데 왜 이런 황당한 주장을 펼칠까? 논거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기는 했으나 세계를 향해 독립을 선포한 것은 1948년 8월 15일이다. 1949년 9월 이승만 정부는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여 그 날을 광복절로 지키기로 하고, 1950년, 51년 8월 15일을 각각 제2회, 제3회 광복절로 경축했다. 그런데 1951년 한 언론의 실수로 제3회가 제6회로 기록되면서 혼란이 시작되었다. 한 언론의 실수가 전체 언론계에 파급되었고 정부도 슬그머니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주년이 오기되고 경축 대상도 정부 수립(건국)이 아닌 해방으로 바뀌었다. 요컨대 애초에 광복절은 건국을 경축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초기 2년 동안 그 정신에 입각하여 회수를 붙였으므로, 지난 수십 년 간의 잘못된 광복절 개념과 주년 부여를 정정해서 원래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해방과 광복이 다르다고?

오히려 내게 상식이 되어 있는 개념은 해방은 독립이요, 광복이라는 것이다. 1945년 8월 15일에 수많은 군중이 거리로 뛰쳐나와 한 목소리로 외친 구호가 무엇이던가? '대한 독립 만세!' 아니었던가? 정부 수립 이전 제1회 해방 기념일에 백범 김구 선생이 연단에서 만세 삼창하며 외쳤던 말이 무엇이던가? '대한 독립 만세!' 아니었던가? 뉴라이트의 주장대로라면 김구 선생은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을 놓고 만세를 외친 셈이다. 당시에 우리 국민 모두에게 독립은 곧 해방이었다.

"나에게 1945년의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이다." "1945년 8월의 광복에 나는 그리 흥분하지 않는다."

이승만의 인식과도 다른 뉴라이트의 생각

"8월 15일 오늘에 거행하는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民國)이 새로 탄생한 것을 겸하여 경축하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1952년과 53년에는 아예 광복절 기념사 제목을 각각 '8.15 해방 독립 기념일에 제하여', '독립절 기념사'로 붙였다가, 1954년과 55년에는 광복절 주년을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변경하여 기념사를 발표했다(제9주년 광복절 기념사, 제10주년 광복절 기념사). 1955년 기념사에서 이승만은 "오늘은 우리가 소위 해방한 지 제10회 기념일을 축하하자는 것인데"라고 말해서 광복절을 해방 기념일로 규정했다. 요컨대 이승만은 해방 경축과 정부 수립 기념 사이에서 오락가락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그에게 광복절이란 해방 기념일이자 정부 수립 기념일이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닐까 짐작한다.

이승만은 자신이 건국한다고 생각했을까?

"1919년(기미년)에 우리 13도를 대표한 33인이 우리나라 운명을 개조하기 위하여 1776년에 미국 독립을 선언한 미국 창립자들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 한국을 독립 민주국으로 공포한 것입니다. 이 민주 정부가 서울서 건설되어 임시로 중국에 가있다가 3년 전 오늘에 우리 반도 남방에서 실현된 것입니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든지, 광복절의 주년을 3년 줄이자든지, 광복절을 독립기념일로 변경하자는 뉴라이트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의 지지를 받을 수도 없고 그들이 존숭하는 이승만의 인식과 조화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이승만 복권? 친일파 복권?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