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담화는 반성이 아니다

아베담화에도 식민지배와 위안부 등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만 '일제'라는 가해주체가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주어'가 없다. 만주사변의 배경으로 세계공황을 든 것, 전후 세대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는 으름장(?)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요컨대 아베담화는 반성의 내용과 형식 모두 낙제점이다.

2015-08-15     이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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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이 식민지배 아래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줬다"(곡학아세식 역사관)

"식민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해 모든 민족의 자결과 권리가 존중되는 세계가 되어야 한다"(가해주체 모호)

"일본이 세계공황에 휩쓸리면서 일본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고, 힘의 행사에 의해 해결하려 시도했다. 그로 인해 만주사변 등을 일으켰다"(구차한 변명)

- 아베 담화, 식민 지배 직접 사과 없었다(한겨레 8월 14일)

'반성'의 기준을 이렇게 설정할 때 아베담화는 '반성'이 아니다. 아베담화에는 일제가 대외팽창전략을 취해 조선 등을 강제로 병탄해 식민지로 만든 사실, 만주사변 및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아시아를 혈겁에 몰아넣은 사실, 식민지 조선의 꽃다운 처녀들을 포함해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이 일본군의 성욕해소의 도구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 일제가 관여했던 사실 등이 명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베 신조에게 화를 낼 기력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베 신조에게 분노하기가 힘들다. 대한민국이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의 나라인데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축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주류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우울한 광복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