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천재 조치훈과 광복 70돌

그가 사는 곳은 일본의 지바현인데, 바둑만 두면 될 줄 안 그가 최근에 경색된 한-일 관계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적을 바꾸지 않아 문패가 한국 이름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알아본 우익이 집에 돌을 던진 일도 있다고 합니다.

2015-08-13     김창금
ⓒ월간바둑

1980년 일본 명인에 오른 뒤 금의환향한 조치훈 부부 한국기원 제공

좌우간 말보따리를 풀어놓은 조치훈 9단은 자신의 최근 일본 생활도 전했다고 합니다. 그가 사는 곳은 일본의 지바현인데, 바둑만 두면 될 줄 안 그가 최근에 경색된 한-일 관계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적을 바꾸지 않아 문패가 한국 이름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알아본 우익이 집에 돌을 던진 일도 있다고 합니다. 조치훈 9단의 부인은 일본 사람인데, 일본에서는 여성이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른다고 합니다. 한국인 이름의 명패가 곤경을 당한 것이지요.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일에 조치훈 9단도 놀랐다고 합니다.

1980년 일본 명인에 오른 뒤 금의환향한 조치훈 부부 한국기원 제공

그 조치훈 9단이 7일 평생의 반려자인 부인 교코(65) 여사를 잃었습니다. 지난달 귀국 때도 부인이 아프다고는 했기에 위중한 상황은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췌장암이 무섭긴 무서운가 봅니다. 교코 여사는 여섯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기원에서 활약하던 조치훈 9단의 외로움을 달래준 친구였습니다.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일본의 프로무대에서 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마음의 상처도 많았을 조치훈 9단한테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조치훈 9단은 부인의 사망 소식을 세상에 알리지 않고 지난 10일 가까운 친척끼리 가족장을 치렀다고 합니다. 장례를 모두 치른 다음 날인 11일에야 일본기원에 이 같은 사실을 통지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사족으로, 광복 70돌이라고는 하지만 한-일 관계는 막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과거는 망각하지 않아야 하지만, 미래를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조치훈 9단이 일본에서 겪는 혐한 바람에 불편해하듯,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 사람들도 요즘 주변의 시선 때문에 불편해한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의 인격이나 성격, 기질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어는 나라 출신이다'라는 내셔널리티의 백그라운드로 보는 것은 참 나쁜 일입니다. 사람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막기 때문이죠. 주변의 일본 사람들은 일본 정부도 아니고 우리의 이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더 잘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을 잡을 때, 그들이 일본에 돌아가 두 나라 관계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여론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일 민간 차원의 교류나 이해의 확대는 정부가 하는 일보다 100배나 두 나라 사이를 가깝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조치훈 9단을 보면서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