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논란으로 본 '정치의 실패'

내가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 일부 민간인을 처벌 대상에 포함한 것이 잘못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정치의 실패'라는 점이다. 입법은 일기 쓰기가 아니라 씨나리오 쓰기에 가깝다. 텍스트에 그치면 안된다. 예상되는 처벌 대상, 필요한 수사인력, 우려되는 부작용 및 그에 대한 보완책, 법시행에서 예상되는 저항과 그것의 극복법 등 '결과 만들어내기'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2015-03-19     고나무
ⓒ연합뉴스

사립학교 교원, 언론인 등 민간인을 포함한 것이 헌법소원까지 불렀다. 일단 '나'로부터 시작해보자.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을 본다. 2003년부터 <한겨레>에서 12년째 글 쓰고 있다. 어렵게 기억을 쥐어짜도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은 경우'(김영란법 8조)가 내겐 없다. '금품'은 광범위하게 정의된다. '돈, 유가증권, 회원권, 음식·술·골프 등의 접대·향응, 교통·숙박 제공, 취업 제공, 이권 부여 등 유·무형의 경제적 이익'이 다 금품이다. 내가 받은 최고액의 금품은 수십만원 정도로 추정되는 '양폭(양주폭탄)' 술자리였음을 고백한다. 그마저 일년에 3회는커녕, 통틀어 한자릿수다. 십만원대 식사도 가끔 얻어먹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한겨레>가 유독 깨끗해서가 아니다. 현장에서 취재하고 글 쓰는 대부분의 평기자들이 그럴 게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이유 없이 100만원어치 금품'을 받을 일이 대체 뭐란 말인가.

과도한 위헌논리, 그러나 문제는 있다

편집국 내부의 보고절차를 밟아 다녀왔다. 김영란법이 '기업 제공 출장 전면금지법'은 아닐 것이다. 기업이 기회를 제공하는 출장이 죄다 악도 아닐뿐더러, 언론사가 일부 비용을 부담하는 등 취재 목적과 상황에 따라 미디어는 내부의 윤리강령 제정으로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수사기관이 무리하게 정당한 출장을 문제 삼지 않는 한 김영란법이 '언론탄압'의 빌미가 되리라는 우려에 쉽게 감정이입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 일부 민간인을 처벌 대상에 포함한 것이 잘못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정치의 실패'라는 점이다. 입법은 일기 쓰기가 아니라 씨나리오 쓰기에 가깝다. 텍스트에 그치면 안된다. 예상되는 처벌 대상, 필요한 수사인력, 우려되는 부작용 및 그에 대한 보완책, 법시행에서 예상되는 저항과 그것의 극복법 등 '결과 만들어내기'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여러차례 이야기한, 결과를 만들어내자는 마키아벨리즘의 교훈을 되새겼어야 했다.

지금 신문의 공공성을 해치는 것은 기업의 광고에 기대는 불안한 매출구조다. 누구나 안다. 김영란법과 무관하다. 그렇다면 김영란법이 다루고자 하는 언론인은 누구인가? 가끔 형사처벌되는, 돈을 받는 일부 지역언론인인가?

철학 없는 제도 도입의 한계

김영란법의 시행은 '냉소주의'와 '과거 법의 실패'와 싸워야 한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의 이해충돌 방지 의무가 제대로 지켜진다고 믿는 국민은 없다. 그 법은 2005년 제정됐다. '국민권익위원회 행동강령 법령집 공무원 행동강령'을 보면, 공무원·공직자가 받을 수 있는 '금품 등은 3만원' '경조금품은 5만원'이다. 그러나 이 액수 기준에 대한 찬반을 넘어, 실제로 지켜진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따라서 김영란법 시행은 '공직자윤리법과 행동강령에 대한 냉소'와 싸워야 한다. 냉소의 벽을 뚫는 것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결과 만들어내기'다. 적용 대상을 줄였어야 했고, 예상되는 반론과 저항마저 고려했어야 했다. 결국 우리는 입법 하루 만에 입법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이 잘못을 인정하는 정당정치의 실패를 보고 있다.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닉재산 수사를 그나마 가능케 한 것은, 1993년의 금융실명제였다. 그 법의 본질은 처벌이 아니라 '정보의 해방'이었다. 정보의 해방이 결과적으로 부패를 어느정도 제어했다. 지금 김영란법은 1993년 금융실명제가 한국을 바꾼 것만큼의 결과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