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할머니의 패션 구상

누구에게나 한때 젊은 날이 있다. 그 젊음의 시대가 끝났을 뿐,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나이 60 이후의 삶, 또는 퇴직 이후의 삶이라는 살짝 두려운 신세계가 우리 앞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한쪽 문이 닫히고 다른 쪽 문이 열릴 때, 웃는 얼굴로 걸어 들어갈지 말지를. 그러고 보니 나이 60 이후라는 런웨이를 걷는 베이비부머 할머니, 그 명랑함이 내 패션전략이다.

2015-08-07     정경아
ⓒgettyimagesbank

동갑내기 남편과 함께 가족형제들을 불러 합동 회갑 모임을 갖기로 했다. 장소는 해물 뷔페식당. 근데 뭘 입고 가지? 옷장을 휘 둘러본다. 한때 작업복이었던 낡은 정장이나 철 지난 바지, 니트류뿐이다. 그렇다고 새 옷을 사러갈 의욕은 전무. 60년을 살아와 낡은 몸에 새 옷을 걸친다는 게 왠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다. 평소대로 흰 티셔츠에 블루 톤의 롱 베스트, 그리고 7부 바지나 치마를 입기로 마음을 정했다.

햇빛 밝은 창가로 손거울을 들고 나가 얼굴을 샅샅이 들여다본다. 썬크림으로 얼굴을 도배해도 막아내기에 불가항력인 검버섯과 기미, 주근깨. 게다가 윤기 없는 은발. 갑자기 의기소침해진다. 역시 현실을 직시하면 아프다.

옷장을 정리해야 할 시점. 3년 이상 손 한 번 대지 않은 옷은 과감히 버리라던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몸에 딱 붙는 옷은 이제 불편해서 못 입겠다. 낡았지만 브랜드 옷이라 차마 버리지 못했던 정장들은 중고의류 가게로 보내야 하나. 그 중 조금 쓸만한 것들은 몇몇 후배들을 불러 밥 먹이며 골라보라고 할까보다.

브라를 입는 것도 점점 거추장스러워지고 있다. 가슴을 조이는 게 싫어 연장후크를 사다가 브라 고리에 끼우기까지 한다. 요즘 호감 아이템은 조끼. 짧은 조끼든 롱 베스트든 안에 티셔츠나 블라우스를 받쳐 입는 레이어드 룩 취향으로 발전 중이다. 니트 카디건도 계절 별로 두어 개씩 생겼다. 걸쳐 입기 편해서다. 아우터든 이너든 조임이 없는 옷이 맘에 든다.

메이크업도 조금 바꿔야 할까? 잘 모르겠다. 썬크림이야 계속 바르겠지만 파운데이션이나 팩트는 좀 더 엷게 해야 할 것 같다. 나이 들수록 가벼운 화장이 깨끗해 보인다. 기미와 주근깨를 굳이 감추고 싶지 않다. 눈썹 숱이 줄어들고 있어서 눈썹을 조금 그려줘야 한다. 머리 염색을 할 계획은 없다. 퍼머는 석 달에 한번 꼴로 계속해 긴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려 한다. 진짜 문제는 머리칼. 숱이 줄어든 것도 모자라 윤기 없이 바스락거린다. 아무리 옷매무새가 좋아도 머리칼의 윤기가 없으면 요즘 말로 '너무 없어 보인다.' 헤어 에센스 제품을 조금 더 사용해야 하지 싶다. 휴!

누구에게나 한때 젊은 날이 있다. 그 젊음의 시대가 끝났을 뿐,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나이 60 이후의 삶, 또는 퇴직 이후의 삶이라는 살짝 두려운 신세계가 우리 앞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한쪽 문이 닫히고 다른 쪽 문이 열릴 때, 웃는 얼굴로 걸어 들어갈지 말지를. 그러고 보니 나이 60 이후라는 런웨이를 걷는 베이비부머 할머니, 그 명랑함이 내 패션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