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가게'를 위한 바른 디자인

공정 거래 무역의 결과물을 재료로 삼고, 생산부터 폐기까지 친환경적인 제조 시스템을 구성하며,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공법으로 지구 온난화를 막거나,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음으로써 윤리성을 확보하는 등 도덕적으로 '바른' 기준과 디자인을 엮는 게 바른 디자인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 바른 식당에 필요한 것은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도와주고,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존중하는 디자인이다.

2015-03-17     전종현
ⓒ바르다 김선생

'바르다 김선생'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요즘 '대세'인 프랜차이즈 김밥 브랜드다. 김밥 한 줄 가격이 다른 곳의 배를 호가하는 터라 '황제 김밥'이란 농담도 있지만 '바른 사람, 바른 재료, 바른 마음, 그리고 바른 식당'이란 명확한 브랜드 콘셉트 덕분에 날개 돋힌 듯 팔리는 히트 상품이 됐다. 평소 그 '바른 김밥'에 호기심이 있던 터라 우연찮게 발견한 센트럴 시티 지점을 그냥 지나치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식당은 단촐하면서도 허름하지 않은 깔끔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분식집과는 사뭇 다르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충분히 정돈된 느낌의 테이블과 의자, 벽면, 그리고 차림표까지 일관성 있게 엮은 디자인은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김밥 하나를 시켜 자리에 앉고 나니 시계는 오후 9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이윽고 가격, 맛, 분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경지의 '신선함'이 시작됐다.

그런데 앞서 느낀 기묘한 부재감은 멈추지 않았다. 어떤 손님이 김밥을 주문하자 종업원은 이렇게 말했다. "품절입니다." 그 김밥이 인기상품인지 나중에 온 사람들이 다시 주문을 넣고 종업원은 또 다시 품절이라고 말하는 광경이 반복됐다. 손님은 품절인 상품을 계속 외치고 종업원은 이미 다 팔렸다고 계속 맞대응하는 상황이 한 편의 희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이런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주 간단한 디자인적 장치로도 충분하다. 중앙 차림표나 작은 메뉴판에서 매진 항목을 아예 가려놓든지, 해당 메뉴 옆에 '매진(sold out)'을 알리는 스티커나 자석 등의 도구을 붙이면 더이상 품절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손님들과 주문을 받는 단 한 명의 종업원 모두 말이다.

단 30분 동안 접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해프닝이 일어난 장소는 다름 아닌 '바른' 식당이다. 응당 그 이름에 걸맞는 '바른' 디자인이 긴급하게 필요해 보이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공정 거래 무역의 결과물을 재료로 삼고, 생산부터 폐기까지 친환경적인 제조 시스템을 구성하며,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공법으로 지구 온난화를 막거나,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음으로써 윤리성을 확보하는 등 도덕적으로 '바른' 기준과 디자인을 엮는 게 바른 디자인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 바른 식당에 필요한 것은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도와주고,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존중하는 디자인이다.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층위의 디자인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착하다, 옳다, 바르다 등 윤리적인 단어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위해 하늘에 떠 있는 메니페스토의 성에 올라가 실마리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디자인의 기본과 핵심에서 한 치의 눈길도 떼지 않는 태도로부터 바른 디자인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동화 속 파랑새가 결국 어디에서 발견됐는지 우리 모두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혹여 영업 시간이 아니라 개선점을 미처 경험하지 못한 거라면 thedesigncracker@gmail.com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다른 곳에서 필자와 유사한 디자인 경험을 겪은 분 또한 위 메일 주소로 소중한 예시를 공유해주시면 감사합니다.

2014-08-03-CA_LOGO.png   www.cakorea.com

위 글은 CA Korea 2015년 01월호 'Insight'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