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짓을 생각하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 맨해튼 계획에 참가했던 남자의 회상

내가 일본인이라고 하자,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말했다. "나는 원자 폭탄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죽었던 아이들과 죄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는 시선을 돌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자랑스럽지 않아요." 그리고 그는 계속 울었다.

2015-08-06     佐藤由美子
ⓒASSOCIATED PRESS

오키나와 전투에서 살아남은 뒤 미국으로 이주한 한 여성은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과거의 기억에 압도당했다.

한 남성은 죽기 전에 내게 자기가 사이판 전투에서 일본 군인 한 명을 죽인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샘이라는 93세 환자가 있었다. 그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왔을 때는 대장암 말기였다. 체구가 작고 친절한 그는 언제나 미소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빅 밴드 음악 팬이었고, '블루 문'과 '마이 웨이'를 특히 좋아했다.

내가 아는 이탈리아 포크송은 '산타 루치아' 뿐이었다. 내가 그 노래를 부르자 그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일본인이라고 하자,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말했다. "나는 원자 폭탄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죽었던 아이들과 죄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난 자랑스럽지 않아요."

세계 2차 대전 중, 미국은 영국, 캐나다와 함께 원자 폭탄을 개발하고 제조했다. '맨해튼 계획'이라 불린 이 프로젝트는 1939년에 시작되었다. 13만 명 이상이 관여된 것으로 추정된다. 샘은 그 중 하나였다.

그는 베개에서 고개를 들고 애원하듯 나를 보았다. 그가 울자 노쇠한 그의 몸이 떨렸다.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조용히 그의 곁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그가 수 년간 지녀왔던 고통과 슬픔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폭탄이 터진 직후 죽은 사람이 많았어. 시체를 모두 수습하는 건 불가능했단다. 지금까지도, 너희들이 서 있는 콘크리트 아래 잠든 사람들이 많이 있어."

샘을 만나고 나서 나는 이 비극의 또 한 가지 면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직도 폭탄의 개발에 관여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미국인들이 많다.

"음악을 듣고 싶어요. 노래를 불러줘요." 그가 말했다.

나는 그가 세상을 뜰 때까지 계속 그를 찾아갔다. 그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그의 수치심과 슬픔은 깊어졌다. 그는 예전처럼 미소 짓지 않게 되었다.

"나는 전쟁이 최고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지난 번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다음 전쟁에서 승리할 사람도 없다." - 엘레노어 루즈벨트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에 최초로 게재된 글로, 미국판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