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자폭탄', 한국인 피해자들의 호소

2015-08-06     곽상아 기자
ⓒ히로시마 총영사관

1945년 8월6일 아침 8시15분께, 일본 히로시마 시마병원 위로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떨어졌다. 당시 5살이던 이곡지(75)씨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약 1.5㎞ 떨어진 집 안에 있었다.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한 42만여명 가운데 조선인은 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사흘 뒤 두번째 원폭이 투하된 나가사키에서도 조선인 2만여명이 피폭당했다. 한국이 일본에 버금가는 ‘원폭 피해국’인 이유다. 그 뒤 긴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실태 파악이나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광복 70년은 이들에게 고통의 70년이다.

일본 히로시마(廣島) 원폭 투하 70주기를 하루 앞둔 5일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히로시마 지부 부인회 회원들이 위령비 앞에서 '원폭희생자위령가'를 부르는 모습.

히로시마 원폭 투하 70돌을 하루 앞둔 5일 이씨는 남편 김봉대(77)씨와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 위에 있었다. 환경재단과 일본 피스보트가 마련한 ‘피스 앤 그린보트’ 프로그램에 초청받아 참가자들에게 ‘탈핵과 평화’를 얘기하고자 배에 오른 것이다. 김씨는 “원폭 피해자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8월 중에 국제소송도 제기하려 한다”고 했다.

한국 고려대와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히로시마경제대학 등에 소속된 양국 학생들과 서장은 히로시마 총영사(왼쪽)가 피폭 70주기를 하루 앞둔 이날 오전 히로시마(廣島)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 '조선오엽(잣나무의 일종)'을 심는 모습이다.

더 큰 문제는 자녀에게서 나타났다. 45년 전 낳은 쌍둥이 중 한 아이는 22개월 만에 폐렴으로 세상을 떴다. 남은 아들 김형률씨도 10년 전 세상을 등졌다. 김씨는 “형률이는 폐 기능의 70%가 망가진 상태로 살다가 갔다. 2001년에 와서야 ‘선천성 면역글로불린 결핍증’이라는 희귀병인 걸 안 뒤, 원폭 후유증임을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심진태(72)씨는 2살 때 원폭을 경험했다. 시마병원에서 약 3.5㎞ 떨어진 곳에 살던 그는 후유증을 크게 겪지 않았지만 자식들한테 증상이 나타날까봐 늘 불안하다. 심씨는 “손주들에게서 혹시나 증상이 나타날까봐 남몰래 살펴본다. ‘광복 70년’ 같은 말을 들으면 원폭 피해와 불안 속에 살아온 우리의 70년이 생각나 화가 난다”고 했다. 심씨는 한국 내 원폭 피해자 절반 이상이 살아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경남 합천에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지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평균연령 80대인 원폭 1세대들이 죽기 전에 정부가 실태 조사와 연구를 하고 일본과 미국에 한국인 피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원자력발전만 강조하지 피해자 조사와 추모사업 하나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5일 '한국의 히로시마'인 경남 합천군 황강변 야외공연장의 '제4회 2015 합천 비핵·평화대회'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한국인 피해자 1세대가 원폭 투하 당시 참상을 그린 그림을 보고 있다.

청년초록네트워크와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등은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일본·대만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각국 정부와 국제사회에 핵산업 중단을 요구하는 ‘푸른하늘 국제선언’을 발표한다. 이날과 나가사키 원폭 투하 70돌인 9일에는 합천에서 한국인 원폭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