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의 상징, 사자 '세실'의 죽음이 남긴 것들

2015-08-02     박수진

세실이 야생동물 사냥을 즐기는 미국인 치과의사 손에 무참히 죽은 사실이 알려지자 전 세계는 공분했다. 사람들은 머리가 잘린 채 발견된 세실의 사체에 경악했고 사냥 방식의 잔혹함에 치를 떨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잔혹했던 만큼 '세실'이라는 이름은 과시용 박제 기념품을 남기려는 '트로피 (trophy) 사냥'에 경종을 울리는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잔인한 사냥꾼에게 사람들의 분노가 쏟아졌고 사냥을 도운 중개인들은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국제 사회는 세실의 죽음을 계기로 야생동물 보호를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세실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 중에서

참수된 채 발견된 짐바브웨 국민사자 '세실'

미국인 치과의사 월터 파머는 지난달 초 여느 관광객과는 다른 목적으로 짐바브웨를 찾았다. 야생동물 사냥이 취미인 그에게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사자인 세실은 한낱 사냥감에 불과했다. 파머는 세실을 유인해 사냥하려고 중개인들에게 5만 달러(약 5천800만원)를 냈다. 그는 미끼로 꾀어 공원 밖으로 유인한 세실을 석궁과 총으로 사냥했다.

'세실 도륙'에 전 세계가 공분

파머의 치과병원과 자택 주소가 공개되자 시위자들은 직접 '살인마'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병원 앞으로 몰려들었다. 이 치과의사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분노와 협박성 메시지가 가득했다. 파머가 밀려드는 항의에 페이스북 계정을 없애자 이를 패러디한 페이스북 페이지가 만들어져 파머를 비난하는 댓글이 잇따랐다.

파머의 집 앞에 모인 사람들과, 이들이 놓고 간 동물 인형과 메시지들

야생 동물 관련 유명 영화 '더 코브'의 감독인 루이 시호요스와 미국 해양보존협회는 뉴욕 맨해튼의 상징인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전면에 멸종동물 보존을 위한 대형 동영상을 상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짐바브웨 대통령에게 세실의 죽음을 철저히 조사할 것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이에 짐바브웨 당국은 파머를 도와 세실 사냥에 나섰던 전문 사냥꾼 테오 브론코르스트와 농장주 어니스트 은들로부 등 현지인 2명을 세실의 죽음을 방조한 혐의로 정식 기소했다.

한편 1조 원대 자산가인 미국 기업인 톰 캐플런과 대프니 캐플런 부부는 세실의 이동 경로를 연구해 온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에 10만 달러(약 1억1천700만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세실 연구팀에 9년간 몸담은 브렌트 스태플캠프 연구가는 "사자가 불법으로 살해된 것은 세실이 처음이 아니다"며 "최근 몇 년 간 수십 마리의 사자가 불법 사냥에 죽어가고 있지만 처벌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트로피 사냥을 중지하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피켓을 든 시민들

'제2의 세실 막자' 야생동물 보호 강화 움직임

야생동물 관련 범죄에 관해 포괄적인 내용의 단독 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처음이다. 세실의 죽음이 일으킨 파장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의안은 야생 동·식물의 불법거래를 예방하고 근절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확실한 조치에 나설 것을 회원국에 촉구했다. 또 보호 대상인 동·식물을 범죄조직이 밀매하는 것을 '중대범죄'로 규정하는 한편, 각국에도 예방·수사·기소 강화를 위한 관련법 개정을 주문했다. 아프리카코끼리의 상아, 코뿔소의 뿔의 불법거래가 막대한 이윤을 내며 테러조직의 자금원이 되고 있다는 우려도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하는데 한몫했다.

미국에서도 세실의 죽음을 계기로 야생동물 보호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로버트 메넨데스(민주·뉴저지) 상원의원은 지난달 31일 멸종위기종 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는 1973년 도입된 멸종위기종 보호법의 수출입 제한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뿐만 아니라 멸종위기 목록에 올라야 한다고 제안된 동물들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