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짜증 내지 마세요

ⓒFree art director via Getty Images
ⓒhuffpost

짜증 내지 마세요. 오랜만에 큰마음 먹고 오페라를 보러 갔더니 앞줄에 발달장애인이 다소 소음을 내더라도 말입니다. 연인과 차려입고 레스토랑에 들어가자 시각장애인이 보조견이라고 큰 개를 한 마리 데리고 와 있더라도요. 회사에 지각하기 직전 4차로를 막은 택시에서 나이 많은 어르신이 느릿느릿 나오느라 1분이 지체되었더라도요. 하필 업무를 보려는 그때 건물 뒤뜰 응급구조헬기가 소음을 내고 잔디를 짓밟으며 착륙하더니 어디서 많이 본 피곤한 얼굴의 의사가 급히 뛰어나오더라도 말입니다.

배려를 강요하면 되겠냐고 항변할지 모릅니다. 일 년에 한 번 오페라를 보러 간 날 얼마간 소음을 일으키는 장애인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괴로운 일이 아니겠느냐고요. 왜 다른 관객에게 소음을 참는 배려를 강요하냐고요. 응급헬기는 사정이야 이해해도 정해진 착륙장을 국가가 많이 마련해야지, 사유지에서 피해를 감수하라기에는 좀 심하지 않냐고 말입니다.

저라도 짜증이 날 겁니다만, 그래도 내지 마세요. 왜냐고요? 그 이유를 설명하는 가장 쉬운 길은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당신도 나이가 들어 30년 후에 택시에서 꾸물꾸물 내려야 할 수도 있어요.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나 손자를 둘 수도 있지요. 교통사고를 당해 이국종 교수와 함께 헬기를 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겠지요.

그런데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라는 이유로 설득하는 일은 (진실을 품고 있음에도)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는 사실 우리를 조금 모욕하지 않나요? 휠체어가 버스에 타는데 짜증 내지 않고 2분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고작 당신도 ‘예비 노인/장애인’이기 때문이라면, 이건 그저 처할 위험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 일과 다를 바 없잖아요.

게다가 이런 이유는 향후 경험할 가능성이 매우 적은 삶의 조건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여성을 배우자나 딸로 둘 가능성이 거의 없는 비혼주의자 남성은 여성의 밤길에 대한 공포와 생리와 임신, 출산 같은 과정을 고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국종 교수의 응급헬기를 탈 가능성이, 솔직히 얼마나 있을까요.

짜증을 내지 않을 이유에는 복잡한 정치철학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그거 공부하자면 또 짜증 낼 거잖아요. 저상버스를 돈 들여 도입했더니 장애인들이 잘 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왜 안 탈까요? 탑승객들이 짜증을 내기 때문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는 10년 만에 처음 오페라를 보러 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선과 감정이 어딘가에 감옥을 설계하는 셈입니다.

당신이 개를 싫어하는데 레스토랑에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들어오면 마음속에 짜증이 일어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짜증을 표현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우리는 이익이 되는 어떤 이유가 있어야 짜증 내기를 멈출 수 있는 존재인 걸까요?

참기 어려울 정도의 개 알레르기가 있다면 말하십시오. “이 강아지가 당신의 안내견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아주 심한 알레르기가 있어서 지금도 콧물이 주룩주룩 나와요. 오늘 저의 두번째 데이트입니다. 제가 먼저 음식을 먹던 중이니 개를 다른 곳에 맡기기가 어렵다면 잠시 뒤에 와주시면 안 될까요?”

그 보조견의 주인은 이렇게 답할지도 모릅니다. “그러시군요. 그러면 제 보조견을 연인분이 잠시 맡아주실 동안 우리 둘이 먼저 밥을 먹을까요? 당신의 배려심, 그리고 개와 함께 보낸 시간. 사랑에 마음이 열리기 최적의 조건 같은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요? 미안합니다. 글을 쓰다 짜증이 좀 나서 그만….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장애인 #시각장애인 #안내견 #응급구조헬기 #저상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