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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팬들의 '편지 떼창'을 기억하는 김광진은 무대 위에서 노래로 답했다

16일 생애 첫 앙코르 공연

가수 김광진(좌), 지난 3월 가수 김광진이 6년 만의 단독 공연을 펼치고 있다(우). ⓒ비전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 김광진(좌), 지난 3월 가수 김광진이 6년 만의 단독 공연을 펼치고 있다(우). ⓒ비전엔터테인먼트 제공

공연장 로비에서 팬사인회를 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헌정 연주’를 하겠다고 했다. 그가 로비 한켠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자 이내 익숙한 선율이 흘렀다. 순간 사인을 받으려고 줄서있던 팬들이 하나 둘 피아노에 맞춰 노래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자신의 노래 ‘편지’를 부르는 팬들을 보며 김광진은 울컥했다.

“그 순간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지난 6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광진이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꼬불꼬불한 머리칼이 어깨까지 늘어져 있었다. 그는 “머리를 처음 길러봤는데 팬들이 되게 좋아하시더라. 이전의 단정한 머리가 직장인 같았다면, 이제는 음악 하는 사람 같아졌다”며 웃었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잔뜩 의기소침해 있었다. 한때 스스로 재능 있는 음악가라고 여긴 믿음은 옅어진 지 오래고, 공연도 6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곡도 잘 안 써지고, 창작 의욕 자체가 사라졌다. ‘이렇게 찌그러져 있다가 세상 떠나는 건가’ 하며 우울해하던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공연 한번 해볼래요?”

지난 3월 가수 김광진이 6년 만의 단독 공연을 펼치고 있다. ⓒ비전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3월 가수 김광진이 6년 만의 단독 공연을 펼치고 있다. ⓒ비전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3월24~25일 서울 대학로 더굿씨어터에서 6년 만에 펼친 단독 공연은 그의 음악 인생에 아주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1990년대 ‘더 클래식’ 노래와 솔로 앨범 노래를 부른 건 여느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틀 내내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들의 반응이 유독 뜨거웠음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공연 뒤 팬사인회 때 갑자기 펼쳐진 ‘편지 떼창’도 예상치 못한 큰 선물이었다.

“저를 지지해주는 팬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지난 공연에서 제게도 그런 팬들이 있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더 클래식 1·2집 ‘서툰 이별’과 ‘용서해’는 거의 30년 전 노래인데도 눈물 펑펑 흘리며 좋아해주시고, 공연이 정말 좋았다는 후기를 여기저기 많이 올려주셨어요. 그걸 보며 잃어버렸던 자부심과 자존감을 되찾게 됐죠.”

그는 지금 오히려 노래를 더 잘하게 됐다고 했다. 고음은 예전처럼 올라가면서 저음이 더 강해졌단다. 지난 공연을 본 어느 관객은 “1994년 더 클래식 첫 공연을 보고 이번에 다시 봤는데, 노래 실력이 30배는 는 거 같다”는 댓글을 남겼다.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동료 가수 김현철은 “슬픔을 머금은, 음정 정확한 초등학교 5학년 목소리”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요즘 매일 노래 연습을 한다. “나태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많이 걸어요. 밤에 1시간 이상 사람들 없는 곳을 걸으며 노래 연습을 해요. 흔들리는 상황에서 노래하는 연습을 하면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그 효과 덕인지, 지난 공연 ‘동경소녀’ 라이브 실황을 다시 들어보니, 이 노래 발표한 게 2002년인데 이제야 제대로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예전엔 박자 맞춰서 겨우 따라갔다면, 이젠 여유롭게 노래를 주도하며 끌고 가는 느낌이랄까요.”

지난 3월 가수 김광진이 6년 만의 단독 공연을 펼치고 있다. ⓒ비전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3월 가수 김광진이 6년 만의 단독 공연을 펼치고 있다. ⓒ비전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공연의 감흥을 잊지 못하는 팬들과 공연을 못 봤다며 또 해달라는 이들을 위해 김광진은 생애 첫 앙코르 공연을 하기로 했다. 오는 16일 저녁 7시30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신한 플레이 스퀘어 라이브홀’에서다. 지난 공연에서 한 노래들에다 새로운 노래 2곡을 추가할 예정이다. 무슨 노래인지는 비밀이란다. 그는 한동안 그만뒀던 에스엔에스(SNS)도 다시 시작해 공연 홍보 활동도 열심이다.

지난 공연 이후 창작 의욕도 샘솟기 시작했다. 새로운 곡을 만들고 싶어진 것이다. “제 노래에 이별 노래가 많잖아요. 이제는 흥겹고 기분을 업시켜주는 노래를 만들어볼까 해요. 가뜩이나 팍팍한 세상에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어서요. 요즘 왬 같은 80년대 신나는 팝이 좋더라고요. 그 비슷한 노래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 신곡도 발표하고, 공연도 더 자주 하고, 팬들과 더 자주 만나는 자리를 만들 테니 기대해주세요.”

한겨레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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