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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불멸이 행복한 거냐" 이준익 감독이 오랫동안 다져온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욘더)

"인간의 이기심이 불멸을 꿈꾸게 하고, 그것이 곧 불행으로 이어진다"

이준익 감독 ⓒ뉴스1
이준익 감독 ⓒ뉴스1

“불멸은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꿈. 죽음과 디지털의 만남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 묻게 된다.”

<동주> <자산어보>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 이준익이 인간의 죽음과 기억을 소재로 한 미래 배경의 에스에프(SF) <욘더>로 돌아왔다. 지난 14일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된 <욘더>는 아내를 잃은 남자 재현(신하균)이 죽은 아내 이후(한지민)의 기억이 담긴 저장소 ‘욘더’ 속으로 들어가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욘더>의 시간 배경은 2032년. 안락사법이 합법화된 미래이며, ‘죽음’이라는 다소 관념적인 테마가 작품의 주요 소재다.

'욘더' 포스터 ⓒTVING
'욘더' 포스터 ⓒTVING

<욘더>는 이준익 감독이 극장이 아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통해 대중과 만나는 첫 작품이다. 글로벌 공개도 곧 앞두고 있는 이준익 감독을 지난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과연 이 작품을 어떻게 봐 줄지, 대중의 반응에 대한 걱정은 있었다. 글로벌 공개를 염두에 두고 만든 건 전혀 아니었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간다고 새지 않는 것도 아니고.(웃음) 망신만 당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기다리는 중이다”라며 심경을 밝힌 그는 “영화라는 매체를 우리가 사실 서양에서 빌려 오긴 했지만 그릇에 담긴 내용물은 온전히 우리 거니까, 에스에프라는 장르를 바라보는 개인차, 취향차를 고려하면서, 배운다는 심정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욘더' 스틸컷 ⓒTVING
'욘더' 스틸컷 ⓒTVING

앞서 소개한 <욘더>의 주인공 재현과 이후의 이름에서 눈치챘듯, 남자의 이름은 삶을 뜻하는 현재를 가리키고 여자의 이름은 죽음 이후를 뜻한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는 이준익 감독은 11년 전 원작 소설 <굿바이, 욘더>(김장환 작가의 판타지소설)를 읽고 난 뒤로 꾸준하게 삶과 죽음, 유한함과 불멸의 속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져 나갔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불멸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인간의 이기심이 불멸을 꿈꾸게 하고, 그것이 곧 불행으로 이어진다. 이를 끝낼 유일한 방법은 유한성에 기대는 것이다. <욘더>에서는 이런 저의 생각을 담아 봤다.”

<욘더>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가상현실, 나아가 개개인의 가상현실이 만나는 거대한 메타버스의 세계를 연상케 하는 설정이 등장한다. 죽은 아내 이후의 기억을 계약한 ‘바이앤바이’라는 기업이 등장하고, 이 기업은 사람들의 기억을 데이터화해서 욘더라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곳에서 재현은 죽은 아내 이후와 재회하게 된다.

“수많은 에스에프 블록버스터 영화에 익숙해 있는 관객들이 과연 <욘더>의 테마와 배경을 얼마나 이해해줄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준익 감독은 “현실과 메타버스에 속하는 욘더의 세계를 이질적으로 차별화하지 않으려고 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위해 세트도 현실과 다르지 않게 구현했다”면서 인물의 감정 묘사에 치중하는 에스에프임을 강조했다.

'욘더' 스틸컷 ⓒTVING
'욘더' 스틸컷 ⓒTVING

“컴퓨터그래픽(CG)의 활용 방향도 인물의 감정선을 방해할 정도로 과하게 쓰지 않는 쪽으로 했고,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스펙터클한 화면에서 느껴지는 피로감과 충격보다는 나의 생각, 나의 내면과 관객이 스스로 만나는 시간을 전달해주고 싶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안락사 이슈가 당장 내 고민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욘더>의 복잡하고 난해한 세계관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살고 있는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어쩌면 <욘더>는 에스에프가 아니라 현실 그대로를 담아낸 작품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베트남 참전 시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통해서 다양한 시대상과 인물 군상을 다뤄왔던 이준익 감독의 관심사는 언제나 ‘지금 여기의 현실’이란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김현수 전 <씨네21> 기자 겸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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