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내가 본 가장 친절했던 죽음은…” : 2009년부터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온 의사가 말하는 ‘좋은 죽음’의 의미

박중철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인터뷰.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의 저자 박중철교수가 13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에 있는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의 저자 박중철교수가 13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에 있는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자연사가 사라졌다.”

2009년부터 호스피스 완화의료기관에서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온 박중철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저자)는 병원에서 죽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장례식장에 가려면 사망진단서가 필요하고, 사망진단서에 기록되는 죽음의 종류는 병사·외인사·불상밖에 없다. 병원에서 죽음을 허락받으려면 병사가 돼야 하는데, 병원 입장에서 병은 치료해야 하는 것이기에 임종 전까지 환자들은 수많은 검사를 하게 된다. 죽음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니 자연사는 도태되고 없다.”

의학적으론 의식과 기력이 떨어져 음식을 섭취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지면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탈수가 발생하고 피가 산성화하면서 고통 대신 행복감을 느낀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평화주의자 스콧 니어링이 존엄한 죽음을 위해 곡기를 끊은 대표적 사례다. 박 교수는 “스스로 음식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물과 영양 공급을 하는 건 자연스럽게 평온해지는 시간을 방해하는 것”이라며 “논의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사전에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표시하더라도 물과 영양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박 교수는 과거 요양원에서 6년간 촉탁의를 하던 시절을 예로 들었다. 고목나무에 물 주듯이 의미 없는 의료행위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돌보던 시절이었다. “매일 요양원에 방문해서 말기 치매환자, 파킨슨 환자 등을 진료하는데 괴로웠다. 억제대에 묶여 있는 환자에게 콧줄 넣고 인공 영양제를 강제로 투여했다. (환자에게 고통을 주지만) 생명을 지키는 거니까 윤리적이라고 여긴다. 정말 그것이 환자를 위한 것인가.”

병원에서 숱하게 비참한 죽음이 이뤄지는 동안 박 교수가 10여년간 본 이 중 가장 친절한 죽음을 맞은 환자는 2012년에 만난 ㄱ씨다. ㄱ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가출한 뒤 비혼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됐다. 임신을 확인하는 과정에선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암세포는 퍼졌고, ㄱ씨의 애인마저 연락을 끊었다. 8개월에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온 아이는 외국으로 입양됐다. 설상가상 대학병원에선 더 이상 치료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퇴원을 요구했고, 흘러 흘러 박 교수가 근무하던 병원으로 전원됐다.

ㄱ씨는 모든 대화를 차단했다. 하지만 간병인은 엄마 역할을 하며 ㄱ씨를 품었고, 간호사는 ㄱ씨의 통증을 살폈다. 박 교수는 ㄱ씨에게 카메라를 선물하고 사진 찍는 법을 알려주며 라포르(신뢰관계)를 쌓고, 통증을 조절했다. “ㄱ씨는 간병인에게 엄마라고 부르고, 주변 사람들을 사진 찍어 선물하기도 했다. 우리와 44일 동안 함께하며 기계호흡장치도, 승압제도, 투석도 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 내가 본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죽음이었다”고 박 교수가 말했다.

“좋은 죽음은 결국 두려움이나 공포에 몸부림치지 않으면서 마지막까지 자신의 일상을 사는 거다. 일상이라는 건 자신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고. 누군가는 엄마로서, 누군가는 종교인으로서 마지막을 살 수 있다. 최근 임종하신 이어령 작가님은 자신의 임종 장소를 서재로 잡은 것처럼 말이다.”

호스피스에서 많은 환자를 보는 그도 부모님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쉽지 않다. “최근 죽음에 관해 다룬 일본의 한 다큐멘터리를 부모님과 함께 보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조금씩 이야기를 나눠보시라.”

마지막으로 환자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은 “환자의 얘기를 들어달라”다. 환자가 고독에 빠진 순간 옆에서 지지해주는 이가 있다면 자신의 삶이 행복했다고 여길 것이기에.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회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박중철 교수 #좋은 죽음 #존엄한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