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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보다 높은 관리비?: 건물주들의 말도 안 되는 월세 요구가 가능한 건 빈틈 많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때문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더니.."

현행 상가임대차법에는 별도의 관리비 규정이 없어 건물주들이 관리비를 올려받는 것을 제한할 근거가 없다.
현행 상가임대차법에는 별도의 관리비 규정이 없어 건물주들이 관리비를 올려받는 것을 제한할 근거가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강남구에서 음식점을 하는 고아무개(48)씨는 상가 재계약을 앞두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사태가 잦아들면서 장사가 좀 되나 싶었는데, 갑자기 건물주가 임대료를 한꺼번에 120만원이나 올려달라고 나선 것이다. 고씨가 조심스럽게 상가 임대료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이야기를 하자 건물주는 기분 나빠하며 “그럼 임대료는 5% 이하로 올릴 테니 원래 10만원이었던 관리비를 90만원 더 내라”고 요구했다.

고씨는 <한겨레>에 “임대료만 제한하는 법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건물주가 임대료 대신 관리비를 대폭 올리는 꼼수를 쓰니 법에도 호소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고씨는 “주인에게 통 사정을 하니 강남 일대는 다 이렇게 하는데, 남의 건물에서 거저 장사를 하려 드느냐고 되레 큰소리를 치더라”며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더니, 이건 임대료 위에 관리비가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강남과 여의도 등 주요 상권을 중심으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구멍을 이용해 관리비를 올리는 건물주들의 꼼수가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밀가루·식용유 등 식자재 가격 상승의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들이 이번에는 ‘관리비 폭탄’에 시름하고 있다.

관리비 시름은 고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고씨와 비슷한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강남에서 배달 음식점을 한다는 한 자영업자는 “원래 월세 120만원에 관리비 5만원으로 계약을 했는데, 갱신 시점이 다가오자 주인이 월세 160만원에 관리비 30만원을 요구했다”며 “법정 인상률 5%를 얘기하자 월세 120만원에 관리비 70만원을 달라는데, 방법이 없겠느냐”고 호소했다. 앞서도 대구의 한 스포츠센터 건물주가 300만원의 관리비를 요구해 임대료(280만원)보다 관리비가 더 높은 상황이 벌어지자 임차인 4명이 법정 소송에 나선 사례도 있었다.

2020년 3월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청 광장에서 중소상인·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로 중소상인·자영업자·상가임차인들의 매출이 급감하면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에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상가 임대료 조정, 임차인 지원 대책을 적극 추진할 것을 촉구한 다음 큰절을 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20년 3월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청 광장에서 중소상인·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로 중소상인·자영업자·상가임차인들의 매출이 급감하면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에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상가 임대료 조정, 임차인 지원 대책을 적극 추진할 것을 촉구한 다음 큰절을 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겨레

정부가 2020년 9월부터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로 상가 임대료 인상 상한률을 연 5%로 낮추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코로나19 불황 탓에 2년 넘게 임대료 인상을 하지 못했던 건물주들이 일상회복이 되자마자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하고 나서는 것이다. 자영업자 쪽에선 임대료 대신 관리비가 오르니 ‘부담’이 늘어나기는 마찬가지다. 현행 상가임대차법에는 별도의 관리비 규정이 없어 건물주들이 관리비를 올려받는 것을 제한할 근거가 없다.

이같은 사례가 빈발하면서 자영업자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지난 23일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신 의원은 “임대인이 차임 또는 보증금 외에 청소비·관리비 등의 명목으로 비용을 청구하는 경우, 임대차 계약 시 그 용도와 금액을 명시하도록 하고,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그 세부내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아 임차인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심지어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피해 사례를 모을 때에도 임대료 대신 관리비 명목으로 과도한 요구를 하는 건물주 사례가 있었는데, 코로나19 대유행 사태가 소강 국면에 접어들자 법을 우회하는 꼼수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중소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기도 전에 관리비 인상에 고통받지 않도록 국회 차원에서 빠른 법안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김 처장은 이어 “신동근 의원의 법안이 관련 논의의 물꼬를 튼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실제로 관리비 세부내역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관리비 인상을 방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관련 피해 사례를 모아 임대료 뿐 아니라 관리비까지 포함한 총액 인상을 제한할 수 있는 개정안이 하반기 국회에서 다뤄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겨레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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