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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을 울린 음악은 무엇인가 : 100명 넘는 이들의 '인생곡' 담은 음반책이 나왔다

“이 책은 음반이다. 아니다. 이 음반은 책이다.”

이종민 전북대 명예교수는 지난 2월 정년퇴임한 뒤 천년전주사랑모임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종민 전북대 명예교수는 지난 2월 정년퇴임한 뒤 천년전주사랑모임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겨레

 

“이 책은 음반이다. 아니다. 이 음반은 책이다.” 지난 1일 하기정(필명) 시인은 전북대 이종민(65·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가 펴낸 책을 접한 뒤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 교수가 최근 펴낸 음악에세이 <우리가 하려고 했던 그 거창한 일들: 내 인생의 음악편지>는 글 꼭지마다 큐아르(QR)코드가 찍혀 있어 스마트폰을 가져다 대면 바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음악감상이 가능한 책인 셈이다.

지난 14일 이 교수가 상임이사로 있는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천년전주사랑모임 사무실을 찾아 이런 특이한 책을 낸 이유를 물었다.


“음악의 힘 빌어 글쓰기 시도한 셈”  

이종민 교수가 엮어낸 음반책 <우리가 하려고 했던 그 거창한 일들: 내 인생의 음악편지> 겉표지.(왼쪽) 음악편지마다 큐아르(QR)코드를 휴대전화로 찍으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오른쪽)
이종민 교수가 엮어낸 음반책 <우리가 하려고 했던 그 거창한 일들: 내 인생의 음악편지> 겉표지.(왼쪽) 음악편지마다 큐아르(QR)코드를 휴대전화로 찍으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오른쪽) ⓒ한겨레

 

“존경받는 선배 교수들이 정년퇴임할 때는 후배들이 책 또는 논문을 내주기도 하는데, 저는 그렇게 훌륭하게 살지 못했으니 누가 나서서 해주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고, 20년 넘게 해오던 ‘이종민의 음악편지’를 활용하기로 했지요.”

 

겸손한 답을 내놓은 이 교수는 2000~20년 사이 지인 2천여명에게 ‘이종민의 음악편지’ 300여편을 보내며 소통해왔다. 전자우편이 막 대중화하던 때 약간의 사연을 음악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햇수로 21년이나 이어졌다. 처음에는 쑥스러워서 주춤했지만,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지속하게 됐단다.

“문학전공자이기에 글을 쓰고 싶은데 시나 소설을 쓸 만큼 문재(글재주)가 있지는 않아 음악의 힘을 빌려 글쓰기를 시도한 것이죠.”

 

116명 ‘내 인생의 음악편지’ 보내와…추억, 번민 등 다채로운 삶의 순간들 

그는 내친 김에 평소 소통하는 지인들한테서 받은 사연을 모아서 책을 내기로 기획했다. ‘인생에서 마음을 울렸던 음악이 누구에게나 한두 곡쯤 있지 않겠는가. 그 음악을 왜, 어떻게 좋아했게 됐는지 사연을 수필 형태로 써서 모으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실제 원고를 받아보니 글 하나하나가 소중한 사연들을 담고 있었다. 음악을 담아 책으로 내면 선물용으로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1983년 9월 전북대에 임용돼 지난 2월 정년퇴임하기까지 75학기를 강단에 선 그는 애초 75명에게서 원고를 받으려 했단다. 하지만 하나둘씩 늘더니 116명(글 115명, 그림 1명)이 참여했고, 200여곡을 책에 담게 됐다. 저마다 삶의 감동적인 장면과 ‘나의 노래’를 담담하게 풀어낸 글들은 ‘추억·사랑·소회’ ‘번민·시대’ ‘인생·성찰·사색’ ‘위로·그리움’ ‘인연’ 등 다섯가지 주제별로 분류해 편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 노래를 처음 들었는데 사람은 천천히 조금씩 변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데, 이 노래를 듣고 나서 내가 그랬다. 인생을 다 알아 버린 기분이었고, 이 쓸쓸한 세상에 오직 나홀로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으며, 앞으로 내내 인생이 그러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윤정하의 <찬비>·김선경·전주시 공무원)

 

안도현 시인은 서평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이종민이 평생 몸담았던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앞두고 펴내는 기념문집이기를 거부한다. 끝이 아니라고, 이렇게 물러나지는 않겠다고,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조근조근 우리를 부추기는 책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이사업회 이사장이기도 한 이 교수는 20년 넘게 음악편지를 보내며 모금운동을 전개해 장학금을 모아 어려운 학생들을 격려하는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북한어린이돕기 모금운동은 기억에 많이 남는단다. 2002년 동짓날 시작해 2020년까지 이어진 이 동지 모금운동을 통해 1억7천여만원을 모았고, 이렇게 모은 돈으로 북한 어린이들에게 콩우유 원료를 제공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훈훈해진다는 그가 소박한 바람을 얘기했다.

“이 책이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의 시기에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를 계기로 내 인생의 음악은 물론, 내 인생의 미술·시·영화·책·여행·스승 등을 상기하며 우리 삶을 차분하게 뒤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에 삽입된 큐아르코드를 통해 소중한 음악을 감상하면서….”

 

한겨레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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