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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티머시 코디네이터'란? 나는 노출 및 섹스 장면을 촬영하는 배우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을 한다 (인터뷰)

″작품은 평생 남는다. 배우가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우려가 있다면 우리가 협상에 나선다."

모모코 니시야마
모모코 니시야마 ⓒ모모코 니시야마

촬영 시, 배우들의 불쾌함이나 성희롱 등 범죄를 방지한다

영화의 성지 할리우드에서 남성 제작자 성폭행을 고발하는 #MeToo(미투) 운동이 일어난 지 약 3년, 영화나 드라마 촬영 현장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기용이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배우가 신체적 접촉이나 노출 등의 장면을 촬영할 때 촬영 환경이나 배우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지원하는 일을 한다. 촬영 시 생길 수 있는 배우들의 불쾌함이나 성희롱 등 범죄를 방지한다.

섹스 장면이나 누드 장면 키스 신 등 신체 노출, 접촉이 있는 장면을 영어권에서 ‘인티머시 장면 (친밀한 장면)’이라고 불린다. 미투 운동 이후, 많은 배우가 그런 장면을 강요받거나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노출 및 섹스 장면을 촬영하는 배우를 신체적 · 정신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이다. 아직 아시아권에서 활동하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소수다. 그중 일본에서 활동하고 할리우드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모모코 니시야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니시야마가 소속된 ‘인티머시 프로페셔널 연합‘(IPA)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점으로 전문 교육을 받은 약 40명이 소속되어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캐나다 등에서도 주로 이 코디네이터들이 활약하고 있다. 일본은 2명이 활동하고 있고, 한국인은 아직 없다. 미국에서는 ‘섹스 앤 더 시티‘나 ‘왕좌의 게임‘등을 방영하는 케이블 방송국 HBO가 2018년부터 제작하는 드라마 · 영화의 전 작품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기용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넷플릭스는 ‘오티스의 비밀상담소‘나 ‘브리저튼’ 등 일부 작품에 이들을 기용하고 있다.

 

ⓒ모모코 니시야마

배우가 자유롭게 ‘싫다’는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

미국 배우 조합(SAG - AFTRA)은 누드 장면이나 섹스 장면 촬영의 지침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신체의 노출이나 접촉의 범위는 사전에 계약을 맺고 촬영은 필요 최소한의 인원으로 진행하도록 규칙으로 지정됐다. 

니시야마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일에서 중요한 것은 ”배우마다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파악하고 촬영 전 동의를 구하는 거다. 그리고 배우가 하기 싫은 장면이 있다면 자유롭게 ‘싫다’는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다”라고 말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촬영 전, 어떤 상황과 분위기에서 키스하는가, 키스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혀를 넣는가, 신체 접촉 및 피부 노출은 어느 정도인가, 카메라의 앵글은 어디를 잡는가 등을 확인한다. 감독의 의사와 배우의 의지가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의논한다. 

″작품은 평생 남는다. 배우가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우려가 있다면 우리가 협상에 나선다. 계획을 변경하거나 다시 조정할 수 있다. 또 심리 안정을 위한 조언도 한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배우가 동의할 때까지 협상하고 합의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배우가 합의서에 서명한 경우에도 촬영 전까지 마음이 바뀌면 다시 논의하고 합의서 내용을 변경할 수 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인지도는 미국에서 높아지고 있는 반면, 제작에까지 개입하는 것이 아닐까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예산 부족으로 기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ponsulak via Getty Images / iStockphoto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감독과 배우를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 낸다

″인티머시의 역할은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고 배우를 설득하고 적절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오히려 제작에 도움을 주는 일이다. 이 장면은 괜찮다거나 다른 건 안된다고 제작을 통제하거나 관리하는 역할이 아니다.” 니시야마의 말이다. 

사전에 감독의 목표를 배우에게 전달하고 합의를 얻어 안전하게 촬영을 진행한다. 배우들도 할 일이 뭔지 명확하게 알 수 있고 연기에 집중할 수 있다. 니시야마는 ”실제 현장에서 노출 장면이나 섹스 장면을 촬영할 때 배우뿐만 아니라 감독 및 모든 직원들이 긴장하고 부담감을 느낀다. 이런 장면이 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이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필수다”라고 말했다.

많은 배우들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배우 엘 패닝은 드라마 ‘더그레이트’의 섹스 장면 중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있어서 ”훨씬 안심하고 촬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HBO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하기 전, ‘왕자의 게임’에 출연한 에밀리아 클라크는 시리즈 초기에 ”누드 장면이 너무 많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걸 거부할 권리가 없었고 이후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당시 클라크는 20대 초반이었고 신인이어서 발언권이 없었다. 

″경험 상 촬영장에서 제작자의 힘이 더 크다.” 니시야마의 말이다. ”젊고 신인인 배우는 더욱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혹시 찍혀서 다음 작품에 출현할 기회를 잃을까 봐 두려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액션 연기의 경우 전문가의 지도를 받을 수 있지만, 섹스 연기의 경우에는 개인의 역량에 맞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섹스 장면도 섬세하고 민감한 장면이기에 배우에게 전적으로 맡기기 보다 좀 더 세심한 설정이 사전에 필요하다. 

아직 일본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기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촬영현장에서 갑자기 노출 장면이 들어가거나, 키스신의 강도가 변경되는 등의 사례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큰 과제다. 

영화 '그녀'의 한 장면 
영화 '그녀'의 한 장면  ⓒAiko Nakano/NETFLIX © 2021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아직도 무조건 배우에게 ‘프로답게 근성을 보여라’라며 억지 촬영을 강요한다

넷플릭스 재팬은 이례적으로 미즈하라 키코와 사토 호나미가 동성 커플을 연기하는 영화 ‘그녀‘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기용했다. 하지만 니시야마는 ”솔직히 일본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중요도를 설명하는 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에는 미국처럼 배우를 보호하는 노동 조합도 없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남성 중심 사회다. 아직도 무조건 배우에게 ‘프로답게 근성을 보여라’라는 말을 하곤 한다. 또 성차별에 관한 인식도 낮은 편이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안전한 촬영 환경을 위해 꼭 필요하다. 앞으로도 계속 촬영 현장에서 ‘동의’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

 

 

 

*허프포스트 일본판 기사를 번역,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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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일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