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나만 빼고 다 주식하는 것 같다": 주식 광풍에 박탈감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산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Insung Jeon via Getty Images

대학원생 박형근(27)씨는 ‘요즘 나 빼고 모든 사람이 주식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 연구실 동료 할 것 없이 주변 지인들 대다수가 주식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다. 특히 주식에 문외한이었던 어머니와 동생까지 최근 유튜브를 보고 서로 종목을 공유하더니 큰 수익을 올렸다. 형근씨도 지난해 잠깐 주식을 했지만 그만둔 상태다. “거품이 곧 꺼질 거라 생각해서 돈을 뺐는데 아쉽긴 해요. 주가가 좀 내리는 시기를 기다려야죠.”

거침없는 주가 오름세에 전 국민이 ‘주식 열병’을 앓고 있다. ‘두 사람만 모이면 주식 이야기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들의 소식이 자주 들려오지만, 다른 한편에선 투자 실패로 감당하지 못할 빚을 지거나 여윳돈이 없어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주식투자자 김민규(34)씨는 연봉 6천만원이 넘는 고소득자지만 지난해 주식투자를 위해 은행 대출을 받았다. 지금처럼 장이 좋을 때 투자금을 늘려야 수익이 커진다고 봐서다. 그는 월급을 학자금 대출 상환에 쓰는 대신 주식에 투자해 이자의 5배가량 수익을 냈다. 김씨는 유튜브와 인터넷을 통해 수시로 주식 공부를 한다. 주식투자를 하다 2008년 금융위기로 큰돈을 잃었던 아버지도 은퇴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다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sureeporn via Getty Images

9급 공무원 김태영(29)씨도 지난해 은행에 3천만원 한도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했다.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월급만 가지곤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돈과 자신의 돈 3천만원에 매달 250만원씩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더해 투자금을 불려갈 계획이다.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채권, 달러 등 안전 자산에 함께 투자하는 법도 공부했다.
두 사람은 주식투자를 통해 원하는 것을 하면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 “경기도에 조그만 집도 마련하고 돈 걱정 없이 살고 싶어요.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보단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대로 살고 싶어요.” “오랫동안 공무원 준비했는데 월급은 큰 보상이 안 되더라고요. 이제는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쉬고 싶어요.”

주식투자자들이 모두 꼼꼼히 공부하고 투자에 뛰어드는 건 아니다. 지인 추천만 듣고 주식을 사거나 급등주에 재미 삼아 투자하는 이른바 ‘묻지마 투자’도 상당하다. 직장인 윤아무개(27)씨는 지난달 친구들이 산다는 급등주를 덩달아 샀다가 20% 넘는 수익을 올렸다. 이런 투자방식은 일반적으로 손실 위험이 크지만 최근 급등장 와중에 윤씨처럼 돈을 버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주식은 투자자들에게 수익만 안겨줬을까.

“지난해 주식으로 9천만원 빚이 생겨 사랑하는 사람과 결별했습니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주말에도 회사 나가는데 너무 힘듭니다.” “올해 주식으로 큰 빚이 생겼어요. 집값 대출만 갚는 삶이 너무 뻔하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을 빌려서 (주식투자를 했는데) 이렇게 실패할 줄이야…. 개인회생으로 어떻게 안 될까요?”

ⓒma-no via Getty Images

네이버 개인채무회생 관련 카페 ‘로우미’에 올라온 글이다. 카페를 운영하는 김기창 법무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비트코인과 주식 등으로 돈을 날린 이들이 고객 중 상당수 있고, 현실 도피성 투자로 신용대출을 끌어와 투자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미 대출이 있는데도 투자를 시작한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주식은 손실이 나면 끊기도 어렵다. 손실을 메우려고 다시 투자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50대 주부 우아무개씨는 1년 전 주식투자로 5천만원이 넘는 손실을 본 뒤 잠시 주식을 접었다가 올해 다시 시작했다. 주식을 내다 판 지난해 3월 이후 주가가 급등하는 걸 지켜봤기 때문이다. 우씨는 요즘 ‘하루 3만원만 벌자’는 마음으로 매일 투자하고 있다.

여윳돈이 없는 사람들도 주식 열풍에 마음이 쓰리긴 마찬가지다. 직장인 최수진(30)씨는 “돈이 생겨도 늘 집세와 보증금으로 빼놓아야 해 종잣돈이 없고, 이미 은행 대출이 있는 상태에서 주식투자로 또 대출을 일으키기는 두렵다”며 “가끔 ‘적금 깨서 셀트리온에 투자할 걸 그랬나’ 싶다가도 그 돈마저 잃으면 삶의 기반이 흔들릴 것 같아서 못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외주 일이 끊겨 매출이 크게 줄어든 자영업자 진아무개(30)씨는 “요즘 주식으로 다들 돈 번다는데 나만 이렇게 아등바등 사나 허탈감이 느껴진다. 주가가 오를 걸 알아도 생활비랑 임차료 내면 돈이 오히려 모자라는데 무슨 수로 투자를 하냐”고 하소연했다.

주식 광풍은 2000년 벤처투자 열풍, 2007년 펀드 유행, 2009년 금융위기 회복 뒤 상승기 등 몇년에 한 번씩 나타나고 있다. 그때마다 유행하던 ‘나 빼고 다 부자 됐다’라는 농담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심리에 시달리다 투자에 뛰어드는 이른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부동산, 비트코인, 주식 등 자산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으로 평범한 사람이 스스로를 ‘벼락거지’(벼락부자의 반대말)라고 부르는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정환 한양대 교수(경제금융학)는 “어떤 종목에 투자했느냐에 따라 개인차가 있겠으나 전반적인 지수 상승 폭만 놓고 보면 주식 가치가 크게 올라 자산 양극화를 심화시킨 효과가 있다”며 “특히 지난해는 주식시장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기회였고, 그 기회를 잡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차이가 커졌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경제 #뉴스 #재테크 #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