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퍼붓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마음을 파괴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우리도 역시 누군가를 혐오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들은 인식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펜의 힘"을 믿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알리는 것이며 우리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야할 것이다.
저 같은 경우는 그 시청에서 농성했을 때, 게이 레즈 바이 모두가 같이 있던 공간에서 뭔가 큰 감동을 받고 마음을 크게 열었는데 다가온 게 너무 큰 상처여서요. 그리고 쉽게쉽게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들도 워낙 많아서, '그럼 너 여자 좋아하지 왜?'라든지, '넌 그럼 결국 결혼 할 거지?'라는 등 온갖 질문들이 있었어요. 아직까지도 저에게 친구사이 몇몇 사람들은 바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근데 저도 이제 처음에 게이라고 생각을 했다가, 바이라고 생각을 했다가. 군대 갔다오고 이거저거 생활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너무 많이 한 거예요.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거리공연 'Unjustifiable'을 선보이는 제 모습입니다. 귀여운 동물인형들과 제가 들어있는 각각의 박스에는, 그들이 버려진 이유가 쓰여있습니다. 주인님 가족에게 아기가 생겨서, 이미 많은 반려동물이 있어서, 혹은 장애가 있어서 버려지는 반려동물들이 있듯이 성소수자라서 버려지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되, 너무 자극적이지 않고 친근하게 표현하고 싶어 선택한 방법입니다. 제가 앉아있는 박스에는 '게이 자식은 필요없대요 (Because I'm Gay)'라고 쓰여있습니다.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6살을 넘길 무렵이었다. 난 머릿속이 멍한 상태가 되어 한참 동안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곧 아들을 설득하려는 마음으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네가 성인이 되어도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생각한다면 엄마가 인정해줄게" 당시 난 아이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들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엄마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더니 잘못 알았다"고 했다.
우리의 결혼으로 세상이 당장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결혼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각을 조금은 바꾸었다. 이성애자들에겐 '한국에서도 동성 결혼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동성애자들에겐 '우리도 결혼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동성 결혼은 이제 남의 나라 이야기 혹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게다가 우리의 결혼으로 대한민국이 조금 더 로맨틱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는 학교 다닐 때 성소수자 인권동아리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저도 용어나 다양한 정체성에 대해 공부하면서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계속 '나는 뭐지?' 이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어요. 그래서 더 오히려 청소년기에는 동성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이제 '그럼 나는 트랜스젠더인가'라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거든요 잘 모르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거치면서, 나중에 그런 활동을 더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이들은 흔히 "자식이 성소수자면 부모들은 얼마나 괴롭겠는가"라고 공격하곤 한다. 하지만 엄마는 처음 참여한 부모모임에서 "우리 아이가 성소수자라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겪을 사회적인 차별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울면서 말했다. 세상에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면 어떤 부모님도 자녀가 성소수자라서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양성애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종류의 성기에만 충성을 맹세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보고 선택한다는 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어처구니 없는 똑같은 질문들에 끝없이 계속 답해야 한다. 바이 인식의 날(BiVisibility Day)을 맞아 나는 이번 기회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14개에 대한 나의 답을 하고 싶다. 무지한 사람들이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