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san

오늘은 반가운 손님이 너무 많이 와주셔서 너무나 힘이 나는 하루였다. 맨 뒤에서 가는 바람에 내가 아버지들보다도 먼저 문규현 신부님을 뵐 수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안아주시며 울어주셨다.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하시면서 아버지들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싶다고 하시며 아버지들의 십자가를 매주셨다. 잘 모르고 처음 봬서 인상 좋고 정 많은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를 안아주실 때의 그 따뜻함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느낀다. 나의 죄가 깊다는 것을... 아무리 걸어도 용서받을 수 없겠지만 나는 오늘도 뻔뻔하게 웅기와 승현이, 아이들에게 기도한다. 용서해달라고 그 위에서 우리 좀 지켜달라고 이 여정이 무사히 끝날 수 있게 잘 좀 봐달라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그 아이들에게 매일매일 기도한다.
드디어 전라도에 들어왔지만 아직도 진도는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편하려고 시작한 여정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이따금씩 너무나 힘들기도 하다. 오히려 걷는 것 자체보다는 다른 것들이 때로는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든다.
두 아버지와 나, 어찌보면 무식하게 셋만 믿고 시작한 이 여정에 너무나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계시고 이제는 헤어짐이 먹먹한 인연마저 생겼다.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동행했던 정기자님께 정말 많이 의지했다. 그냥 우리와 같이 걷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느껴졌다. 그뿐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아버지들도 마친가지라고 생각한다. 이 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아버지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하염없이 걷기만 하는 반복되는 일상이라 지치기도 하지만 벌써 열흘째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힘을 내본다. 아버지들이 때로는 너무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내가 왜 여기에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여정을 마치고 나면 뭔가 다른 깨달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날을 기다려본다.
십자가에 나무를 덧대고 페인트를 칠하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과정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진정 이번 순례의 목적은 무엇인지 끝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대전까지 가서 완주를 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당장 내일 아버지들이 힘드시다고 집에 가자고 하시면 뒤돌아 보지 않고 자랑스런 마음으로 집에 갈 수 있다. 물론 어떠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아버지들께서는 힘을 내시려고 하시겠지만 그만큼 지금 내게는 이 순례 자체가 목적이고 이미 충분히 아버지들이 자랑스럽다.
사람 수만 좀 많아지면 따라붙는 경찰(사복경찰) 때문에 굉장히 불쾌한 하루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들이 어느 때보다도 가볍게 걸으신 날이고... 경찰이 미행한 건 사과도 하고, 기사도 나가고 내일 직접 찾아와서 사과를 한다 했으니 조금 더 지켜보려고 한다. 승현이를 생각하며 살다보니 여기저기 다니기도 하고 지금은 도보순례를 하고 있다. 승현이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진도까지 걸어가는 게 아니라 기어간다 한들 우리 승현이는 다신 돌아올 수 없지만 나중에 다시 승현이를 만났을 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용서 받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두 아버지들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후원을 제가 대신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러분들이 혹시 차를 타고 지나 가시다가 땡볕에 하염없이 걷고 있는 두 아버지들을 보신다면 창문을 내리고 말씀해주세요. 힘내시라고 잊지 않겠다고 큰소리로 말씀해주세요. 조금 더 사치스러운 후원을 바란다면 아버지들이 목말라 하실 때 시원하게 드실 수 있는 생수 한 병이면 족해요. 두 병도 아닌 단 한 병이면 족해요. 가장 아버지들께서 고마워 하시고 위안 받으신 분들이 어떤 분인지 여러분들은 아시나요? 눈물을 글썽이시며 얼음물을 주시고는 성함도 말씀해 주시지 않고 도망치듯 가버리신 어느 아저씨세요.
이 거지 같은 나라에서 선물 받은 관때기에 우리 금쪽 같은 막내 승현이를 넣어주고 관 위에 나는 글을 썼다. 너무 일찍 하늘의 별이 된 우리 사랑하는 막내 이승현, 다음 세상에서는 이 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나 더 오래 오래 행복하자고. 사랑하고 미안하고 승현이와 함께 한 시간은 18년이 채 되지 않지만 너무나 행복했다. 두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 눈물이 난다. 이 아버지들의 죄가 있다면 그건 단 하나. 이 진주 같은 아이들을 이 나라 이 땅, 대한민국에 낳아 열심히 키우신 것 이 뿐일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나 자신과 이 나라를 용서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유일한 방법은 우리 아이들, 우리 승현이가 살아서 돌아오는 것. 나는 평생 나 자신과 이 나라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안산 분향소 추모객들 발길 이어져…닷새 만에 16만명 다녀가 “이 많은 아이들의 영정을 가까이서 보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아 27일 오후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