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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21일 04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22일 14시 12분 KST

그들은 '이슈'가 아니라 '인간'이다 | 안희정 충남지사의 인터뷰를 읽고

김민수

1.

안희정 충남지사가 한 어느 인터뷰에서 동성애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질문에 "그 주제는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성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논쟁'할 가치가 없다. (...) 그 어떤 논리로도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정체성과 그들의 개성에 대해서 재단을 하거나 뭐라고 할 권리가 없"다고 답했다.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자신은 '동성애 옹호론자가 아니다'라고 한 발언과는 대조적인 안 지사의 인터뷰 기사는, 한국 정치인의 제대로 된 발언을 담고 있어서 오랜만에 한국기사를 읽으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 기사를 읽어가는데, 나의 학생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2.

내가 일하는 대학교에서 교수들에게 주어진 강의 의무(teaching load)는 석사/박사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할 경우 한 학기에 두 과목을 가르치는 것인데, 내가 첫 강의시간에 언제나 학생들과 함께 하는 '소개 예식'이 있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 하는 시간에 학생들에게 '특별한 주문'을 한다. '나'의 '외부성(exteriority)'과 '내부성(interiority)'을 소개하라는 것이다. '나'의 외부성이란 예를 들어서 이름, 학위과정, 하는 일등 객관적 측면들을 의미하는데, 내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학생들 개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내부성' 을 그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내부성을 소개하는 한 방식으로 예를 드는 것은, 자신이 늘 마음에 담고 있는 개념, 씨름하고 있는 물음 등으로부터 소개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이번 봄학기 강의를 시작했는데, 두 과목에 신기하게도 각기 12명의 학생이 들어왔다. 그 12명의 학생이 담아내는 자신들의 '내부성,' 그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들은 사실상 이 세계의 작은 축소판이다. 그런데 다양한 인종, 젠더, 경제적 지위, 교육 배경, 생김새의 차이, 그리고 성적 정체성의 차이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자신이 고민하고 씨름하는 문제들을 나누는 학생들이 내게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 있다. 대학은 이 세계의 다양한 지식의 생산, 확산, 보존의 중심지이다. 따라서 교수란 이 대학이라는 '지식권력의 제도적 공간' 속에서 가르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는 '공적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러한 제도적 위치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교수로서의 나는, 이 세계에 개입하는 영역들을 보다 확장하고 복합화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나의 학생들은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특히 성 정체성(sexual identity)에 대한 편협하고 왜곡된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입장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존재 방식'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침해하는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하여 그러한 폭력과 인권 억압의 문제에 다층적 방식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것이 공적 지식인으로서의 나의 절실한 책임적 과제라는 것을 학생들과의 '소개예식'을 하면서 다시 확인하게 된다.


4.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정치와 종교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러한 성 정체성(sexual identity)의 이슈이다. 내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종종 받는 질문 중의 하나는 '동성애를 옹호하는가 반대하는가'이다. 그런데 이 질문 자체의 방향을 조금만 돌려보아도, 이 질문이 근원적으로 잘못 구성된 것임을 알게 된다. 질문에 다시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누구도 '당신은 이성애를 옹호하는가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이성애'가 바로 자연적인 '규범적 성 정체성'이라고 대부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반기문 전 UN 총장의 '동성애 옹호론자'라는 표현은 그 인식 자체의 지독한 한계성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현대의 다양한 연구결과들은 한 사람의 성정체성이 '선택(choice)'이 아닌 '지향(orientation)'이라는 것, 그렇기에 '옹호' 또는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지 오래다. 그런데 어떤 이론적 분석을 제쳐 놓고라도, 나의 학생들은 이 다양한 '성 정체성'이란 한 사람의 절절한 '존재 방식'임을 내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내가 연구하고 공부한 그 어떤 이론보다 나의 인식을 깨는 것은, 바로 내 학생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평생 겪어온 아픔과 고통의 이야기들이며, 그들 한명 한명의 생생한 '얼굴'들이다.


5.

출석부에는 남자 이름인데, 실제로는 긴 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 학생 - 그/녀는 트랜스젠더로서 현재 법적 개명과정에 있다. 또한, 이성애는 물론, 양성애, 동성애, 트랜스 젠더 등 그 12명의 학생은 이렇게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그러한 문제들과 씨름하면서 살아가는 자신의 내면적 아픔을 이 '소개 예식'에서 담담하게 나누고 있었다. 이번 봄학기의 첫 강의시간에 이렇게 나의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근거에서도 이들에게 한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재 방식을 부정할 위치에 있지 않음을 다시 확인한다.

그 어떤 성 정체성을 지니든, 또한 그 성 정체성이 '선택'이든 '지향'이든, 그들은 '이슈'가 아니라 '인간'이다. 그들이 존엄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 - 그 단순하고 엄중한 사실에 선행하는 진실은 없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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