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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0일 09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10일 14시 12분 KST

12층에서 응급실로 온 청년



0.

누군가에게 자유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유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1.

모두가 행복한 주말 밤이었다. 머리를 짧게 깎은 이십대 초반 청년이 실려와 소생실에 누웠다. 그는 주말 밤의 많은 환자 틈바구니에 섞여 조용히 중환자 구역으로 들어왔다. 평상복 차림의 건장한 체격이었다. 겉으로는 피를 흘리거나 벌어진 상처 하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편히 누운 자세조차 고통스러운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대원에게 물었다.

"이 정신 없는 주말 밤에 설명도 없이 이 환자가 갑자기 중환자구역으로 들어온 이유가 뭐지요?"

"12층 추락입니다. 땅바닥에서도 이렇게 몸부림치며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2.

10층 높이 이상에서 떨어진 사람은 어떻게든 죽는다.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곳에 기적적으로 추락한 것이 아니라면, 인체 어느 부위부터 떨어지더라도 그 중력 에너지를 견뎌낼 수가 없다. 처음 닿는 부위가 머리라면 즉시 터져버릴 것이고, 목이라면 접혀 부러질 것이고, 팔과 다리라면 으깨질 것이다. 그와 거의 동시에 인체의 다른 부분이 땅에 닿으면, 그것들도 비슷하게 비틀어지거나 깨져버린다. 이런 식으로, 인체가 견뎌낼 수 있는 충격 에너지의 한계점은 명백한 공식처럼 정해져 있다. 어떤 숫자와 어떤 숫자와 어떤 숫자를 더 하면 항상 일정치가 넘어가는 공식. 추락하는 비행기에 있던 사람이나, 불이 난 빌딩에서 몸을 던진 사람 중에서 생존했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해진 높이 이상에서 뛰어내리는 인간의 운명은, 그 두 발이 아무 것도 디디지 않는 순간 확실히 정해진다. 고로, 그의 몸 어딘가에도 한계점을 넘는 충격이 이미 와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그 훼손의 실체를 확인하고, 공식과 운명을 이기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넘기 힘든 벽이 내 앞에 와 있었다.



3.

어디가 아프냐는 물음에 그는 어느 한 곳을 짚어낼 수 없이 전신이 끊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나는 단서가 될 수 있어 재차 조심스레 물었다. "왜 떨어진 거예요. 죽으려고 했었나요?" "으아. 으흐. 아아아..." 그것은 해석할 수 없는 새된 비명이었다. 자살을 부인하고 있지도, 긍정하고 있지도 않았다. 이미 추락한 그에게는, 실은 긍정도 부정도 무의미했다. 대부분의 죽음을 앞둔 자살 시도자들이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죽음의 예감으로 진지해졌다. 나는 그의 손을 붙들고 말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든 살려 볼게. 널 꼭 살려볼거야. 알았지? 알았다고 답해."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극심한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그도 죽음의 예감을 느꼈던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는 이어서 황급히 그의 전신을 더듬었다. 그가 떠안았던 충격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골반뼈가 다 뭉개져 흐물거렸다. 그것은 책처럼 접었다가 펼칠 수 있을 정도였다. 갈비뼈는 가벼운 압박에도 심하게 우드득거리며 뼈가 엇갈리는 파열음을 냈다. 분명히, 열두 쌍의 갈비뼈는 셀 수 없는 조각으로 나뉘어 있었다. 주요 장기를 보호하는 두 군데의 뼈가 완전히 박살난 것이다. 이 정도의 에너지라면 뼈를 부수고 들어가 그의 장기까지도 으깨고도 남았다. 겉으로는 별 상처가 보이지 않았어도, 그는 믿을 수 없게 심한 중환이었다.

나는 즉시 병원이 준비할 수 있는 만큼의 피와 수액을 준비하고, 명멸하는 실체를 눈 앞에서 보기 위해 그를 CT실로 보냈다. 그는 몸부림치며 CT실로 미끄러져 갔다.



ambulance



4.

나는 CT 결과가 나올 동안 주말 밤에 쌓인 다른 환자를 보러 나갔다. 그들은 약간 불쾌하거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응급실에 제각기 흩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과 관련이 없을 그 불쾌한 표정들이 오히려 행복한 표정으로 보였다. 그중에서 나는 나란히 서 있는 아까 그 환자의 보호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부모는, 맨 처음으로 길바닥에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119에 같이 그의 손을 잡고 실려왔다고 했다. 그 눈빛들은 조금 이상했다. 보통 자식을 잃은 사람의 눈빛처럼 먹먹하고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그와는 또 다른 안색이었다. 분명히 슬픔이 있지만, 그것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다는, 아니면 그것을 아직은 전혀 믿을 수가 없다는 눈빛이었다.



5.

CT는 참혹했다. 성한 부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엉덩이로 처음 지면에 닿았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여기서 살아 누워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첫 충격은 골반뼈를 우그러뜨리고 관통해 골반 안에 들어있는 모든 장기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엉덩이가 땅에 닿음과 거의 동시에 그는 뒤로 넘어졌다. 등이 땅에 닿는 순간 등판에 있는 갈비뼈가 전부 부서졌고, 역시 흉강 안에 있는 모든 장기도 곤죽이 되었다. 전신 CT를 위아래로 한 컷 한 컷 되짚자 그 외상의 메커니즘, 그리고 그 부서지는 순간이 읽혔다. 12층에서 그가 고요하게 자유낙하해서, 땅에 닿는 순간 짓이겨지는 인체가, 순서대로 비틀어지고 휘어지는 인간의 몸이 눈에 선했다.



6.

상황은 예측한 대로 악화 일변도였다. 양쪽 가슴에 엄지손가락만한 흉관이 꽂혔다. 관을 타고 쉴 새 없이 피가 나와 신발과 바닥을 젹셨다. 복부는 으깨진 장기에서 나오는 피로 점점 부풀었다. 처음에는 조금씩 높이가 올라가다가, 나중에는 바늘로 찌르면 배가 빵 하고 터져버릴 것처럼 동그랗게 부풀어 버렸다. 병원에 있는 보유 혈액이 거의 전부 내 앞에 왔다. 그걸 무조건적으로 환자에게 쏟아부으라고 나는 소리질렀다. 관으로 혈액이 쉴 틈 없이 낙하했다. 하지만, 혈압은 급강하했다. 의식, 의식을 확인해야했다.

"내가 살려준다고 했잖아. 넌 그걸 들었잖아. 살 거지? 살아날 거지? 빨리 살아난다고 말해! "

"짜... 짜장면, 수학, 수학을 제가 좋아했어요."

환각. 씨발, 죽음을 앞둔 환각. 나는 그의 어처구니 없는 대답에 눈물이 났다.

그 말을 끝으로, 그의 의식도 사라져버렸다.



transfusion



7.

인체의 혈액은 체중의 5%이다. 70kg 남성의 경우 혈액은 대략 3.5L다. 그의 출혈량은 이미 3.5L를 훌쩍 넘겼고, 수혈량도 3.5L에 육박하고 있었다. 계산상으로 그의 피가 한 바퀴 돌았다. 우리는 이 상태를 자기 피를 전부 쏟아붓고 남의 피로만 살아 있는 상태라고 부른다. 수혈이 없었으면 그는 껍데기만 남았을 것이다. 3.5L의 피가 의료진의 가운과 소생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피해서 발을 디딜 정신도 없었다. 피범벅인 나에게 간호사가 밖에서 다급하게 외쳤다. "선생님, 보호자들이 떼거지로 와서 꼭 선생님을 봬야겠다고 해요. 만나보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이런 상황에 무슨 보호자가 떼거지로... 알았어요." 나는 피로 철벅거리는 발걸음으로 소생실 문 밖을 나섰다. 놀랍게도 같은 까까머리의 이십대 청년들이었다. 스무 명도 넘을 것 같았다.

"저희는 환자의 군대 동기입니다. 친구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어간다고 해서 전부 달려왔습니다. 저희는 보다시피 군인이고 건강하고, 수혈도 하던 사람들이에요. 누구 피를 얼마나 뽑아도 상관 없으니, 제발 저희 피를 써주세요. 친구가 죽는 데 아무 것도 못하고... 으흑... 그걸 견딜 수 없어서 전부 달려 왔어요. 선생님 제발요."

"..."

나는 목이 메었다. 그리고, 말을 간신히 이어갔다.

"... 마음은 알겠어요. 저도 살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대신 제가 무엇이든 할게요. 하지만, 지금 당장 피를 뽑아서 저 환자에게 수혈할 수는 없어요. 피는 병원에도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기도해주세요.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깊은 기도를 해 주세요."



8.

피가 한 바퀴 반에서 두 바퀴째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다시 남의 피도 한번 더 쏟아붓고, 다른 남의 피로 순환중이었다. 복강이든 흉강이든, 수술방에서 그의 내부를 열면 피가 폭탄처럼 뿜어지고, 다시 출혈이 가속되어 그는 즉사할 것이었다. 수술은 불가능했고, 나에게도 방법은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생실은 점점 전쟁이 벌어진 자리 같이 얼룩져 갔다. 바깥이 다시 시끄러웠다. "선생님, 무슨 관계자라는 분들이 왔는데요?" 나는 이번에도 철벅거리는 발걸음으로 문 밖을 나섰다. 이번에는 경찰인지, 군인지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저, 선생님, 환자 상태가 어떻습니다. 죽을 것 같습니까? 죽으면 곤란한데... 살아야 합니다."

"곤란이라고 했습니까? 저한테 환자가 죽는 것보다 더 곤란한게 뭐가 있죠? 저 사람을 가장 살리고 싶은 사람은 지금 접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사같은 걸 하려면 제발 나중에 하시죠. 부탁입니다."

그들은 피범벅된 손을 허공에 휘젓는 나를 보고는 납득했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나온 김에 멍한 보호자를 불러 잠시 면담했다.

"지금 환자분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상태가 악화 일변도로 향하고 있습니다.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환자분이 견뎌줘야 하지만, 애초에 너무 높은 곳에서 떨어져 심한 외상을 입었습니다. 수혈하는 만큼 피가 계속 쏟아져버리고 있어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가망은 없을 것 같습니다."

"... 아, 네..."

그들은 아직도 일어난 일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초점이 없이 그들은 허공에서 무엇인가 보고 있었다. 눈가에 잔상이 남아, 그것이 그들의 머릿속에 계속 슬라이드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아마, 몇 시간전까지만 해도 같이 웃고 대화하던 아들의 모습일 것이다.



9.

수혈량이 두 바퀴도 훌쩍 넘어, 이제는 세 바퀴째로 가고 있었다. 환자의 피를 갈아대도 아무 부작용이 없으면 이론상으로 환자는 계속 살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혈하면 할수록 혈액 내 응고 인자와 균형이 무참하게 깨져 죽어간다. 이미 환자는 이승의 몰골을 상실했다. 그의 눈은 초점이 없어진 망자의 눈빛이 되었고, 호흡기로만 호흡하고 있었다. 흉관 바깥으로 꿀렁거리며 쏟아지는 피와, 미약한 심전도 그래프만이 그의 생명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출혈량을 재기 위해 옆에 가지런히 놓인 체스트 버틀은 이제 한눈에 셀 수도 없었다. 그 찰랑거리는 양은 비현실적으로 많아서, 오히려 피보다는 진득한 다른 액체가 가득 담겨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소생실 바깥에는 이제 일가 친척들과 각종 기자들이 몰려들어 소생실만큼 난장판이었다. 나는 기자들에게는 할 말이 없으니 꺼져달라고 부탁했고, 일가 친척들에게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죽을 것 같습니다. 죽음만이 남았습니다..."

그 아비규환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계속 발버둥쳤고, 결국 환자는 내 말대로 되었다.

그는 터진 장기와 바닥에 흥건한 혈액만을 남기고 죽어버렸다.

소식을 들은 부모는 즉시 오열하지 않았다. 그들은 눈 앞에 남은 마지막 기억의 편린을 재생하듯이 그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다.



10.

그는 군인이었다고 했다. 그것도 막 훈련소에서 나와 자대 배치를 받았다고 했다. 전경이 되자마자, 그는 꿀 같은 2박 3일 휴가를 받았다. 평범한 아들이, 평범한 훈련소 생활을 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집에 나오자 부모는 기뻐했다. 그는 다른 첫 휴가의 군인처럼, 친구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3일을 보냈다. 3일. 3일은 너무 짧았다. 그 시간은 곧 꿈처럼 지나가버렸다.

자대로 복귀해야 했다. 그의 부모가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는 승낙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차에 오르면 휴가는 끝난다. 자유도 그로 인해 끝난다, 이제부터는 다시 정해진 시간에 눈을 떠, 정해진 밥을 먹고, 통제에 따라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 겹의 모포 위에서 어두운 천장을 보며 잠이 들 것이다. 눈을 떠도 어둡고, 눈을 감아도 어두운 날일 것이다. 이제부터 무한히 펼쳐질 깜깜하고, 또 깜깜한 밤들. 갑자기 숨이 턱 밑에 닿았다. 자유, 자유롭고 싶다, 자유가 가능하게 하고 싶다. 절망적인 밤은 더 이상 하루도 보내기 싫다.

그는 문 밖을 나서기 직전, 부모에게 방에서 가져 올 것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가 방에 들어가고, 부모는 그를 기다린다. 그리고 또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가 방에서 나오지 않자 부모는 그의 방문을 연다. 그리고,

그 좁은 방에 그는 들어있지 않았다.

12층이었다. 창문, 창문만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 창문 바깥, 고개를 내밀어 차마 쳐다 볼 수 없는 그 바깥, 일생 잊을 수 없을 그 깜깜한 바깥.

죽고자 했었냐는 평범하고 가당치 않은 질문에, 새된 비명으로 대답한 것은 과연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롭고자 했다는 그만의 언어였다.

그 세상의 마지막 질문에, 그는 그렇게 큰 소리로 일갈하고 떠났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일하며 응급실에서 겪은 일을, 환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사실(fact)에 허구(fiction)를 더한 팩션(faction)형식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