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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2일 12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02일 14시 12분 KST

죽음에 관하여 | 한 담도암 환자의 최후

1.

"한 달 남았습니다.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는 담도암 말기였다.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경과는 대체로 두 가지로 갈린다. 전자는 멀쩡히 삶을 영위하다가 갑자기 진행된 암이 발견되어 급하고 격한 투병 후에 죽어가는 경우다. 후자는 적당한 초기에 발견되어 몇 년간 배를 열고 닫으며 그 때마다 혹여나 하는 희망과 역시나 하는 좌절을 겪으며 도로 꿰매어진 배를 바라보고, 바뀌어가는 항암제와, 항구토제와, 기타 먹어야 하는 역한 약을 밥보다도 더 많이 삼키다가 결국 병원과 진행된 암에 시들어져 버리는 부류다.

그는 완벽한 후자였다. 투병만으로 몇 년을 살아남아 결국 칠십대를 맞이한 그의 경과는 배에 길게 나 있는 아문 칼자국과 삐쩍 말라붙어 골격뿐인 몸, 몇 년은 손질하지 않아 덥수룩하고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칼과, 노랗게 떠 있는 전신의 피부가 직접 말해주고 있었다.

암은 자르고 잘라도 계속 자라났다. 항암제는 몇 년을 맞아도 적응되는 법 없이 역하기만 했고, 맞고 돌아오는 날이면 구토하느라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다. 구토가 좀 멎으면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기분에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들었을 때 그의 여생이 정해졌다. '이젠 자를 것도 남지 않았고, 잘라낼 방법도 남지 않았습니다. 육 개월만 더 살아 봅시다.'

그는 육 개월을 쥐어 트는 배를 부여잡고 인생 후반기의 동반자였던 항암제와 보냈고, 생명을 장악하기 위해 퍼지는 암으로 인한 통증에는 이골이 난 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목표였던 육 개월을 다 살아냈다. 그래서 그가 얻은 것은 배뿐만 아닌 전신에 통증이 오는 인생이었고, 그뿐이었다. 이 시간이라도 얻어낸 것이니, 그 통증이 축복인지, 아니면 또 다른 불행인지는 아무도 이야기해줄 수 없었다.

투병 동안 주변 모든 사람들은 다 떠났고, 그의 부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혼자였다. 통증과 암 덩어리만이 그의 동반자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전신을 죄어드는 통증으로 내 앞에 온 그는 그런 고민조차 얼마 남지 않은 몸이었다. 사람을 곧 죽게 만들 고통은 어떤 것일지, 나는 짐작하지도 못한 채 반복해 말했다. 곧 다가올, 고통이 끝나버릴 시간을.

"한 달 남았습니다."

그는 무감동한 표정으로, 정말 아무런 실망의 기색도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도 알고 있소. 육 개월이면 나도 쉽게 죽어버릴 줄 알았소. 이제부턴 정말로 얻은 삶이지, 하지만 여태도 지옥 같았지만 얻은 삶이라고 생각했소. 의사양반. 한 달이라면 당신도 모른다는 뜻 아니겠소. 나는 내일이라도 죽을 것 같소. 너무 아프거든. 당신이 나에게 해줄 것이 없는 것도 잘 알고 있소. 백이면 백 그렇게 이야기 했었거든. 실은, 해줄게 많다고 할 때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오. 하지만, 막상, 해줄 게 없다니 그것도 기분이 좋지 않구려. 어쨌든, 아픈데 내가 어찌할 도리가 있겠소, 죽을 것 같은데. 나는 가족도 없고, 암 외에는 가진 것도 없다오. 병원에 오는 것 외에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오."

"... 환자분의 통증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것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수 밖에요. 대신, 육 개월을 다 살아내셨으니, 지옥을 보는 대신 당신의 일상이 하늘에서 떨어진 축복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 통증까지도 느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그들이 바랐던 것은 아이러니하게 당신 같은 삶이었겠지요. 그냥 평범하게 살아보세요. 제가 해드릴 말은 이런 것들밖에 없습니다. 혹여 너무 외롭고 힘드시면, 입원을 시켜 드리지요."

"입원은 안 하겠소. 나는 원래 혼자 싸웠다오. 한 번 일상이 뭔지 다시 보겠소. 정말 죽을 것 같으면 다시 오겠소. 또 봅시다."

그는 놀랍도록 말라, 도저히 일으킬 수도 없을 것 같은 몸을 일으켜 섰다. 침대에서 내려와 서는 데에만 수 분이 걸렸다. 그리곤,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비적거리며 걸어 나갔다. 뼈다귀가 걸어 응급실 밖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응급실 문이 열려 역광이 비쳐 그 뼈다귀의 경계가 빛으로 허물어지고, 잔향이 눈가에 어른거렸다. 그 모습은 흡사, 죽음의 모형이 제자리로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2.

다음 날, 말이 없는 교통사고 환자를 하나 받았다. 아직 젊은 오 십대의 여성이었다.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고, 멀리서부터 주황색 옷을 입은 119 대원들이 붙어 요란스럽게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소생실로 들어왔다. 의식도, 호흡도 없는 그녀를 소생실 한 복판에 눕혀 놓고, 나는 초점 없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어느 때와 같은 다짐을 했다. 내가 지체하고, 주저하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단호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의 실수도 없어야 한다.

소형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차와 부딪혔다고 했다. 그리고 가드레일에 이중 추돌했다. 겉으로 열린 상처는 없었다. 심폐소생술을 지시하고 눌러 본 흉부가 우지끈거리며 무너져 내렸다. 갈비뼈가 한 개도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머리도 앞쪽으로 심하게 부어있었고, 그나마 사지는 멀쩡했다. 할 일은 명확했다. 기도를 확보할 것. 심폐소생술을 유지할 것. 흉관을 삽입할 것. 그리고 환자가 깨어나길 기도할 것.

이어진 의료진의 익숙하고 신속한 처치에도 그 여환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심장은 누르는 대로 눌리기만 할 뿐, 자발적으로 돌아올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양쪽 폐는 혈흉으로 가득 찼고, 굵은 흉관에서는 고인지 얼마 안된 것 같은 피가 끊임없이 꿀렁거리며 흘렀다. 심폐소생술의 압력으로 핏덩이가 번져 나는 온통 피를 뒤집어써야 했다. 핏덩이는 의료진의 옷가지와 신발을 적시고 끝내 바닥에까지 고여갔다. 갈비뼈가 부서졌고, 폐가 부서졌고, 심장이 부서졌고, 결국 그녀는 통째로 부서져 버렸다. 완벽하고 압도적인 급사였다. 도저히 손 쓸 수도 없는 외상으로, 그렇게, 그녀는 한숨에 죽어 버렸다.

그녀를 포기하고 돌아서려 할 때, 소생실 건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환자를 살리는데 온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내가 동시에 보고 있는 환자는 스무 명이 넘었다. 파악해야 했다. '거기 무슨 일이에요!' '선생님 지금 그 소생실 환자와 맞은편에서 추돌한 환자가 도착했어요.'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제길. 이 정도의 손상을 입은 환자가 또 도착한다면 응급실은 곧 마비된다. 모든 사람이 위험해질 수 있다. 빨리, 직접 그 사람을 파악해야 한다. 나는 소생실의 뒤처리를 맡겨놓고 웅성이는 사람들을 밀치고 뛰었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gettyimagesbank


그 사람이었다.

어제 내가 제 발로 걸어 보냈던 담도암 말기.

그는 집에서 확연한 죽음을 느꼈다. 마지막을 각인시키는 것처럼, 온 몸이 부서지는 통증이 왔다. 그것을 축복받은 일상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지독했다. 간신히 하루를 뜬눈으로 버티고 나자, 살아있는 것이 저주인 것처럼, 그리고 그 저주가 곧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는 햇살이 비추는 좁은 집을 비틀거리며 느리게 배회해보았다. 마지막일 것인 집과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내가 앓던 집이여 안녕, 나는 병원에서 죽어야겠어.' 그는 끝내 다시 못 돌아올 집과 작별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마지막 남은 재산인 낡은 소형차에 시동을 걸었다. 운전을 하는 일상은 인생에서 딱 한번 남은 것이었다. 그 정도의 욕심은 가능하지 싶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머지 않았으나, 통증은 잠시도 가라앉지 않았다.

뼈만 남은, 운전대를 잡은 손아귀가 덜컹거렸다. 정신이 죽음으로 아늑해지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차가 휘청거렸다. '이런 걸 축복이라고 살고 있으니, 참 힘에 부치는군. 하긴, 이것도 마지막이니깐.' 병원으로 절반쯤 왔을 때, 고로 그의 인생에서 한 번 남은 운전이 절반쯤 끝났을 때, 찌르는 듯한 극심한 폐부의 통증이 왔다.

그의 의식이 잠시 빠져나가고, 그의 소형차도 통증을 느낀 듯 몸부림쳤다. 비틀린 그의 차는, 앞서 오던 차를 받아 튕겨나갔고, 그는 정신을 잃었다. 눈 떠보니 낯익은 병원이었다. 새로운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딘가 부서졌다고 해도, 그것이 죽음에 이를 만한 통증이 아닌 이상, 느껴지지도 않았으리라.

"아, 어제 그 의사양반이구만. 저, 그런데, 앞선 차에 탄 사람은 어찌 되었소?"

"죽었습니다. 방금."

나는 그녀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대답했다. 그 대답은 순식간에 그를 살인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응당 보였을 반응처럼, 그의 표정이 구겨지거나, 동공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그는 단순히 회한에 찬 눈동자로 멍한 먼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긴, 곧 죽을 사람에게 더 이상 어떤 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곧 죽어야 할 사람이 무엇이 더 두려울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는, 곧 죽을 사람을 비난하거나, 처벌을 가하지 못한다. 죽음은 그 자체로 완벽한 처벌이자 선고이니까. 거기서 무슨 일이 더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굳은 표정으로 진료에 응했다. 그의 몸은 신기하게도 상처 하나 없었다. 그의 X-ray 필름에서도 골절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필름에선 그의 생명을 불태우고 있는 암 조직들이 가득 찍혀 나왔다. 골절이 있었어도, 그 통증을 느끼고 아물어가기 전에 암 조직이 그의 생명을 파먹어 버렸으리라. 그는 내 말에 따라 묵묵히 입원했다. 그리곤, 이젠 살아서는 내려오지 못할 병실로 죽음을 기다리러 갔다.



3.

그래서 우리는 생명과 우연에 관해서 생각해야 한다.

죽기 전의 마지막 일상을 누리는 것을 비난했어야 하는가. 그가 마지막으로 욕심 내 누린 하루를 비난했어야 하는가. 그에게는 곧 떠나버릴 세상일 뿐이다. 죽음 후의 남겨진 세상에 관해 망자는 관심이 없다. 그 세상이 자신 때문에 몇 명이고 죽어버릴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그에게는 그럴 의도도 없었다. 욕심이 있었을 뿐이다. 자신이 투쟁해서 얻어온 생을 조금이라도 누리고 싶은, 지극히 평범하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상을 살아보고자 하는 욕심. 어차피 그것을 비난한다고 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렇다면 비난은 나의 것인가, 아니, 그건 우연으로 벌어진 일에 가깝다. 헛된 격려가 되었어도, 그것이 다른 죽음까지 초래했어도, 도의적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범위의 우연이다. 하지만, 모든 죽음이 그렇듯 나는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굴레와 속박 속에서 지내야 하므로, 이 일에 관하여 두고두고 생각하여야 한다.

어쨌든 억울한 한 죽음이 있었고, 다른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도저히 어떠한 책망이 불가능한, 하지만 피칠갑한 모습의 잔혹한 죽음이었다.

우리는 이 생명들이 얼기설기 위태롭게 엮인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이해하고서도, 실은 우리는 어떤 죽음에 관해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죽음에 관하여 쉽게 왈가왈부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것이 타인이건, 혹은 본인이건 간에. 아무도 그런 일을 입에 가볍게 올려서는 안 된다. 고뇌와 고통과, 그를 넘어선 우연이 혼재하는 극적이고 거대한 세계. 그 일부만을 핥으며 공감했다거나, 죽음이 응당 왔어야 했다고 지껄이는 짓거리는, 전부, 미친 짓이다. 스물 네 개의 갈비뼈와 폐부가 전부 으스러진 죽음에 관하여, 그리고 전신이 악성 종괴로 죄어드는 죽음에 관해서 우리는, 그 처참한 시체만이 눈 앞에 있을 뿐, 아무 것도 언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아무 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tunnel


아마 그 죽음이 자신에게 올 때까지도.


*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일하며 응급실에서 겪은 일을, 환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사실(fact)에 허구(fiction)를 더한 팩션(faction)형식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