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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 27일 14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9월 28일 14시 12분 KST

故 백남기 씨 '사망진단서'가 의미하는 것

이 사람이 왜 병원까지 와서 누워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되었는지도 사회가 밝힐 일이지 의사가 밝힐 일이 아니다. 의사는 이 사람을 받아 치료해서 317일을 살렸고, 자신의 소견을 밝혔을 뿐이다. 여기서 과학적인 이분법을 정치적 논란에 끌어들이는 것은, 결국 과학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고, 다른 논쟁이나 쟁점을 부러 만들거나 사실을 호도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그가 죽은 2016년 9월 25일보다는 그가 쓰러져 영영 의식을 잃은 2015년 11월 14일을 쟁점으로 삼아야 한다. 모든 일은 그날 벌어졌으며, 그 여파로 그가 이제 사망했던 것이다. 우리는 서류보다는 우리에게 벌어진 객관적인 사실만을 보고 믿으며, 그에 대해 증명해야 한다.

연합뉴스

백남기씨가 그제 사망했다. 그를 진료해온 의료진의 사망진단서는 이렇게 기술한다. 사망의 종류는 '병사', 직접 사인은 '심폐정지', 선행 원인은 '급성신부전', 이를 기인하게 한 원인은 '급성경막하출혈'이다.

이 진단서를 두고 대단히 말이 많다. 마치 사망진단서 한 장이 그의 사망의 원인을 밝혀내는 판결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분명히 정치적 프레임이 가미되어 있는 이 죽음과 논란에 대해서, 나는 수백 장의 사망진단서를 써온 의사로서 소견을 밝힌다.

사망진단서에 기술할 수 있는 사망의 종류는 '병사', '외인사', '기타 및 불상' 세 가지밖에 없다. '기타 및 불상'은 그야말로 모르겠다는 뜻이고, '병사'는 병으로 인한 사망. '외인사'는 외상으로 인한 사망을 뜻한다. 백남기씨는 근 1년간 병원에 입원했으므로 의료진이 그의 병이나 상태를 모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병사'와 '외인사' 중 하나이다.

이 경계는 조금 애매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외상성 뇌출혈로 입원해서 일주일 만에 죽었다면 명백한 '외인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외상성 뇌출혈로 입원한 후 10년을 살다가 급성신부전이 생겨 죽었다면 기인한 원인은 '뇌출혈'일 수 있겠지만, 직접 사인은 '급성신부전'이다. 뇌출혈을 겪었어도 10년을 살았으므로 향후 더 살 수 있었다고 보고, 직접 사망은 내과적인 이유로 간주하기 때문에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1년이나 2년 정도면 어떻게 될까? 이 상황에선 의료진의 판단으로, 환자가 투병한 시기와 기왕력, 그리고 내과적인 상태까지 고려해서 사망진단서를 작성하게 된다.

백남기씨는 뇌출혈 이후 317일을 더 살았다. 나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았으므로, 어떤 상태에서 어떻게 투병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진단서에는 '병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의료진이 환자가 뇌출혈에도 불구하고 317일을 살았고, 그보다 더 오래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기치 못한 각종 합병증이 발생했으며, 사건 발행 후 충분한 시간이 지났으니 사망의 연유는 '병사'에 가깝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사망 진단서를 직접 기록해본 사람으로서, 언론의 주목으로 이 서류 작성의 과정이 몹시 고뇌스러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직접 사인이 '심폐정지'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이 사망 직전에는 '심폐정지'를 겪기 때문에 사망진단서에는 이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서울대학교 의료진이 이를 분명 알았을 테지만 직접 사인에 기록한 것은, 직접 사인이 '급성신부전'으로 기록되어 뻔히 예견될 수 있는 정치적 논란을 막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선행 원인은 '급성경막하출혈'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그를 진료한 의사는 이러한 인과 관계를 파악했고, 더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를 둘러싼 갈등도 판단했고, 결국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나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았으므로 여기서 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서류에는 분명한 인과 관계가 적혀 있고, 나는 이 판단을 존중할 수 있다.

이 사망을 두고 벌어진 부검 논란에 대해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도저히 상식 밖의 이야기이다. 부검은 사인이 불분명할 때 행한다. 317일 전에 촬영한 CT에는 외상성 뇌출혈과 다발성 안면 골절이 관찰되고, 그 후 그는 의식을 한 번도 차리지 못 했다. 그리고 317일간 이어진 일련의 각종 검사에서 그의 내과적인 상태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부검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머리를 열어 뇌를 조각조각 자르고, 배를 열어 장기를 하나하나 꺼내 검사한다. 이것이 필요하다면 해야겠지만, 선후 인과관계가 명확한 죽음에서, 게다가 1년 가까이 입원해 의료진이 속속들이 파악한 환자에서 부검을 행하는 일을 거의 본 적이 없다. 1년은 뇌출혈마저 말라서 흔적만 남을 시간이고, 이 사람을 부검해 더 밝혀낼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죽음은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로 충분하며, 부검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다.

이 글의 요는 '병사'의 논란이 맞다, 틀리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료진이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요약해 기록한 서류였을 뿐이다. 이 논란을 계속하는 것은 '사망진단서'라는 서류 한 장으로 사실을 흐릴 뿐, 지금껏 벌어진 일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해주는 게 아니다. 팩트는 2015년 11월 14일 외상을 입은 백남기씨가 병원에서 시행한 검사 결과가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이었고, 그것이 의식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심한 외상이었으며, 그 뒤 그가 투병하다 317일 후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 팩트에서 '병사'라고 쓰인 종이 한 장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또,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그 팩트밖에 없다.

이 외상이 왜 일어났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발생했는지는 CCTV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밝힐 일이지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밝힐 일이 아니며, 이 사람이 왜 병원까지 와서 누워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되었는지도 사회가 밝힐 일이지 의사가 밝힐 일이 아니다. 의사는 이 사람을 받아 치료해서 317일을 살렸고, 자신의 소견을 밝혔을 뿐이다. 여기서 과학적인 이분법을 정치적 논란에 끌어들이는 것은, 결국 과학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고, 다른 논쟁이나 쟁점을 부러 만들거나 사실을 호도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그가 죽은 2016년 9월 25일보다는 그가 쓰러져 영영 의식을 잃은 2015년 11월 14일을 쟁점으로 삼아야 한다. 모든 일은 그날 벌어졌으며, 그 여파로 그가 이제 사망했던 것이다. 우리는 서류보다는 우리에게 벌어진 객관적인 사실만을 보고 믿으며, 그에 대해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영면하게 할 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