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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07일 09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08일 14시 12분 KST

이정현 대표와 '근본 없는 사람'

연합뉴스

이정현 씨는 지난 8월 새누리당 대표로 뽑혔을 때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등 뒤에서 저를 비웃을 때도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준 박근혜 대통령께 감사하다" 말했다.

이정현 대표는 주지하다시피 호남 출신이다. 영남을 세력기반으로 삼고 있는 새누리당에서 과거 그의 위상은 어떠했는지는 불문가지다. 그는 찬란한 학벌을 가진 것도 아니고, 고시에 합격했던 검사 출신도 아니다. 돈 많은 지역 토호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얼굴이 말쑥한 미남도 아니다. 사무처의 말단 당직자로 정계에 입문한, 지극히 범상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런 그가 새누리당 대표가 되었으니, 근본 없는 자신을 알아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쏟고, 지금까지 호위무사를 자처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결사 옹위하는 것은 나름 이해가 된다. 그래, 자신을 알아준 분이 위기에 빠졌을 때 외면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이정현 대표의 말과 행동에는 나름 진정성이 있다고 하겠다.

'근본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섬겨야

다만 나는 그가 내뱉은 '근본 없는 놈'이란 한 마디가 마음에 걸린다. '근본이 없는 놈'이란 말은 '근본이 있는 사람'이 따로 있음을 전제한다. 근본의 유무를 따지는 것은 신분으로 사람을 차별하던 전근대의 발상이다. 겉으로는 예의를 따지지만 안으로는 교만이 속속들이 배여 있는, 다시 말해 누구에게도 점잖게(사실은 모질게) '갑질'을 할 수 있는 양반귀족이라야 '근본 있는 사람'인 것이다.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수많은 노비를 거느렸던 것도 당연히 이들이다.

요컨대 '근본'은 사람을 태생적으로 차별했던, 전근대의 불평등한 신분제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말이다. 따라서 근본이 없다는 말은 '네 놈은 아무리 날뛰어도 천한 상것'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정말이지 인간의 차별을 전제한 '근본' 따위의 말은 입에 올리기도 싫은 그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 세상의 대부분은, 찬란한 학벌도 없고, 고시 출신도 아니고, 재산가도 아니고, 미남 미녀도 아닌 범상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정말 입에 올리기 싫지만 다시 이정현 대표의 말을 빌자면 '근본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좀 더 가까운 예를 들자면, 최근 광화문과 지방 곳곳에서 촛불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라 하겠다.

이정현 대표는 정치인이다. 이정현 대표가 자신을 '근본 없는 놈'이라고 자각했다면, 곧 근본 있는 자들이 자신에게 가했던 차별을 인식했다면, 그의 정치는 근본의 유무를 따지는 세상을 없애는 데로 향해야 마땅할 터이다. 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그 공화국의 모든 권력은 그 근본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곧 근본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주인인 것이다. 그러니 이정현 대표가 섬겨야 할 주인은, 근본 없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갑남을녀인 것이다.

근본 유무를 따지는 발상을 버려야

그런데 어떤가. 이정현 씨는 엉뚱하게도 '근본 있는' 박근혜 씨만을 섬기고 그를 결사 옹위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차별 받는 노비가 노비-주인의 불평등한 관계를 몰각하고, 주인이 던져준 찬밥 한 덩어리에 감읍한 나머지 충성을 다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정현 대표가 지키려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신의는, 조폭의 똘마니가 자신을 조직원으로 발탁해준 보스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디 이정현 대표만 그럴까? 지금도 망언을 태연하게 내뱉는 '친박'이나 '진박'의 행각 역시 꼭 같은 것이다. 이것이 정치를 수단으로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자들의 민낯이다.

이정현 대표와 친박 혹은 진박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이내 거대한 역사의 쓰나미에 쓸려나갈 것이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모를 뿐이다. 이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근본의 유무를 따지는 생각 자체를 나의 대뇌에서, 이 사회에서 지우고 몰아내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근본 있는' 지역도, 가문도, 개인도 없어야 마땅하다.

* 이 글은 다산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