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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21일 13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22일 14시 12분 KST

잊을 수 없는 김기춘의 또 다른 악행

뉴스1

바라던 대로 김기춘이 구속되었다. 그의 구속 소식을 접한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강기훈씨였다. 1991년 이른바 '유서 대필 사건'으로 3년의 징역을 살았던 그 사람. 분신자살한 친구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해 줬다는, 다시 말하면 유서를 대필하면서까지 친구의 분신자살을 교사 내지 방조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썼던 사람. 감옥에 있던 시간은 3년이지만 재심 끝에 2015년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기까지 무려 24년 동안을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 이제는 침묵 속에서 간암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

당시 법무부장관이 김기춘이었다. 그는 이번에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지휘 혐의로 구속이 되었지만, 그리고 유신시대인 1977년에는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지금은 조작사건임이 판명되어 모든 관련자가 무죄판결을 받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날조하여 유학생 10명을 포함한 30여 명에게 사형, 무기 등 실형을 받게 한 주범이었지만, 나는 이 '유서대필 사건'을 그가 저지른 최고의 악행으로 생각한다.

강기훈이라는 선한 얼굴의 잘생기고 똑바른 한 청년에게 그나마 '양심범'이라는 이름조차 박탈하고 패륜의 굴레를 씌워 그 일생을 완전히 파괴해버린 것을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무죄가 확정되었다 한들 그에겐 무엇이 남겠는가. 그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일 뿐인 24년의 삶을 제하고 나면 무엇으로 그는 남은 삶을 지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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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4월20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강기훈씨가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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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3일 강기훈씨가 서울고법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걸어나오고 있다. © 한겨레

뿐만이 아니다. 강기훈 개인을 떠나 '역사적'으로는 그 사건을 조작하여 기정사실화함으로써 1991년 위장한 군부세력인 노태우정권과 결전을 벌이던 '민주변혁세력' 전체를 '혁명을 위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 위험한 패륜집단'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여버린 것은 아마도 한국현대사 최악의 상징조작 범죄로 그 죄과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는 한 사람의 양심을 농단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수만인의 양심을 동시에 희롱하고 더러운 시궁창으로 내팽개쳐 버렸던 것이다.

그 무렵은 김지하가 거의 연일 계속되는 분신과 자결의 행렬에 대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조선일보에 썼고, 서강대 총장 박홍이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떠들던 때였다. 당시 국과수에서 유서의 필적과 강기훈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판정이 나왔을 때, 부끄럽게도 내 마음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작게나마 의심의 파문이 일어났었다. 그리고 그 의심의 작은 파문 때문에 나는 김지하를 끝까지 비난하지 못했고, 이런 일종의 '허무주의에 가까운 옥쇄투쟁'을 낳는 흐름에는 어떤 식으로든 쇄신 혹은 '청산'이 필요하다는 생각까지도 했었음을 고백한다.

1990년대 초반의 변혁운동 주체들의 역사적 한계에 대한 엄정한 판정과는 무관하게, 나는 내가 '우리'로부터 분리되어 나오게 된 환멸의 큰 부피 중에 공안세력의 조작에 의한 거짓 증빙이 단 1%라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그래서 내가 어쩌면 거기에 얼마간이라도 의존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지금까지도 견딜 수가 없다.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은, 언젠가는 꼭 다시 죄과를 물어야 할 그의 막중한 전비에 비하면 '한강 인도교의 좀벌레'에 불과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다 늙어 돌아와 주군의 딸에 대한 대를 이은 시대착오적 충성이 만들어낸 '희극으로 반복된 비극'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옥을 향하는 김기춘의 뒷모습과 함께 한 시대의 어두운 장막 한 귀퉁이가 말려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마치 사기꾼을 잡아 감옥에는 보냈으되 사기당한 돈은 한푼도 되돌려받지 못한 사람처럼 종내 섭섭함을 금할 수가 없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관련 동영상] 강기훈과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