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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9일 13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9일 14시 12분 KST

이스라엘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이거다

ASSOCIATED PRESS

*이 글은 미아 과니에리의 허핑턴포스트 블로그를 번역한 것입니다.

텔 아비브 - 수요일 밤이다. 나는 하브톰 자훔의 추도식에서 막 나왔다. 자훔은 에리트리아 출신의 망명 신청자로, 베르셰바 버스 정류장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 범인으로 오인받아, 보안요원의 총에 맞았고 이스라엘 군중에게 '린치' 당했다. 그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자훔에게 욕하고 침을 뱉으며 머리를 걷어찼다.

텔 아비브 중앙 버스 정류장 근처의 텔 아비브 공원에서 자훔을 기리는 모임이 열렸다. 나는 집에 오려고 셰루트(미니밴 합승 택시)를 탄다.

두 할머니가 셰루트에 앉아 있다. 그들은 미즈라치, 즉 아랍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이다. 억양을 들으면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그들 옆을 지나며 복도를 거의 메우고 있는 큰 수트케이스 옆을 지난다.

"이거 당신 건가요?" 할머니 한 명이 묻는다.

나는 혀를 끌끌 찼다. 이스라엘에서는 아니라고 대답할 때 보통 이렇게 한다.

내 뒤로 한 젊은 남자가 들어온다.

"이거 당신 수트케이스에요?" 할머니들이 자리에 앉는 그에게 묻는다. 외국인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키파(동그란 작은 모자)를 쓴 그는 미소를 짓는다.

"켄." 그가 대답한다. 히브리어로 '예스'란 뜻이다.

"치워요." 할머니 한 명이 말한다.

할머니들은 그가 '프랑스인'이라고 이미 결론 내렸다. 그는 가만히 있는다. 나는 그가 히브리어를 할 줄 모른다는 걸 눈치챈다.

"얼른 치워요! 내 옆에서 폭발하면 어떡해." 그녀가 소리지른다.

할머니는 우리 주위 사람들이 분명 생각하고 있었을 말을 한 것이다. 이게 누구 수트케이스지? 뭐가 들었지? 우리는 이런 걸 '헤페츠 하슈드'라고 부른다. 의심스러운 물건이란 뜻이다.

"확인해 봐야 되는 것 아닐까? 저 사람 거야? 프랑스인 거야?" 셰루트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옆에 있던 할머니가 말한다.

할머니들은 영어를 몰라서 계속 그에게 히브리어로 소리지른다. 그 수트케이스가 정말 그의 것이 맞는지,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확인하려 한다.

"이게 당신 수트케이스인가요?" 내가 그 젊은이에게 할머니들의 말을 통역해 준다.

"네, 제 거예요." 그는 강한 미국 억양으로 대답한다.

"할머니들이 이걸 치워 달라시네요."

그는 수트케이스를 자기 쪽으로 끌어 당긴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진정하지 않는다. 몇 블록 지나 기사가 승객을 태우려고 속력을 늦추자 할머니 하나가 외친다. "태우지 말아요, 의심스러워 보여."

기사는 그 말을 무시하고 차를 세우고, 남자가 차에 탄다.

그가 복도를 걷는 동안 차 안은 조용하고, 할머니의 말이 아직 우리의 귀에 울리고 있다. 우리는 그를 살핀다. 그가 앉는다. 승객들의 얼굴은 그를 향하고, 우리의 시선은 그의 옷, 머리카락, 피부, 표정, 움직임을 읽으려 한다. 그가 불안해 보이나? 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하나?

그는 뒷줄에 있는 하나 남은 자리에 앉는다. 미국인('프랑스인')과 키파를 쓴 에티오피아 유대인 사이의 자리다. 그 유대인이 자훔이 죽기 전인 일주일 전에도 키파를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 테러리스트로 오인 받지 않으려고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셰루트가 달려가고, 불편한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애쉬켈론에 사는데 텔 아비브에 잠깐 온 거라고 말하는 할머니들이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여기는 안전한지 묻는다.

"물론이죠. 여긴 텔 아비브에요. 테러리스트가 우리에게 뭘 원하겠어요? 우린 다 좌파고, 비건인데. 전부 다!"

텔아비브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부아(비눗방울)로 통한다. 이스라엘 다른 지역과는 아주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의 우리들은 분쟁과는 격리되어 있다고들 생각한다. 여기 사람들은 전부 진보적인 것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좌파들은 인간을 사랑해요." 기사가 덧붙인다.

할머니들은 방어적이 된다. "우린 우파에요. 우파들도 인간을 사랑해요."

"하지만 당신 비건은 아니죠?" 기사가 묻는다.

"뭐라고요? 당신 미쳤어요?" 한 할머니가 대답한다.

기사는 연설을 늘어놓는다. 여러 번 했던 연설이 분명하다. 그들의 대화는 카쉬루트, 즉 음식에 있어 코셔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한 말싸움이 된다.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마소라티(전통적)라고 한다. 미즈라히 유대인들 다수가 그렇듯이, 그들은 세속적이지도 종교적이지도 않다는 의미다. 이 말로 기사는 당연히 그들의 가문에 대해 묻는다. 할머니들의 부모는 예멘과 모로코 출신이다.

"그럼 당신들 아랍인이군요." 기사는 이렇게 말하며 자기 가족도 예멘 출신 유대인이라고 한다.

"역겨워. 우린 아랍인이 아니에요." 할머니들이 외친다.

"당신들 억양이 그렇잖아요. 당신들은 아랍인이에요. 괜찮아요. 우린 다 아랍인인걸."

할머니들은 요란하게 항의하고, 한 명은 아랍인들은 살인자고 테러리스트이며 자기는 유대인이라고 말한다. 유대인은 사람을 죽이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몇 주 동안 팔레스타인인 수십 명이 이스라엘 군의 총을 맞고 죽은 일이 없었다는 듯이.

그녀가 단 한 마디로 팔레스타인인들과 유대인들을 비인간화 했다는 걸 나는 깨닫는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괴물'들이다. 유대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인 군대'에 들어가는 성인들이다. 팔레스타인인과 결혼한 미국 출신 유대인 이스라엘인인 나는 두 배로 모욕을 당했다.

나는 그들에게 아랍인인 동시에 유대인이 될 수 있다는 말도 해주고 싶다. 내 뱃속의 딸 - 우리의 첫 아이 - 가 살아있는 증거다.

하지만 그들은 둘이고 나는 하나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셰루트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반응할지도 알 수 없다.

다른 할머니는 친구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다. 기사에게 민족은 언어와 문화와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자기가 억양을 쓴다는 건 인정하고, 문화도 조금은 지녔을지 모른다고 한다. "물론 그쪽 음식도 좀 만들어요." 그러나 그녀의 생각으로는 비슷한 점은 거기까지다.

"난 아랍인이 아니라 유대인이에요." 그녀가 말한다.

기사는 이스라엘 유대인 중에선 드물게 자신의 아랍계 뿌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는 사람이다. 그는 포기하고 더 안전한 영역으로 대화를 끌고 간다.

"달걀 드세요?" 그가 묻는다.

할머니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어떻게 달걀을 먹을 수가 있어요? 그 불쌍한 닭들이 사는 우리를 본 적 있나요?"

그는 할머니들이 아랍적인 면을 포용하게 만들 수 없다면 훌륭한 비건으로라도 만들려고 하고 있다.

***

israel

마리브(주:이스라엘 신문 이름. 원래는 유대교 저녁 예배라는 뜻)에 실린 사진. 사진:미야 과르니에리

지난 주말에 텔 아비브에서 일을 보느라 돌아다니던 나는 가판대 앞을 지났다. 히브리 주류 일간지인 마리브가 내 시선을 끌었다.

"66%: 동예루살렘 아랍인 거주 구역 분리를 원한다"가 헤드라인이었다.

지난 주에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구역에 시멘트 블록들을 갖다 놓았다.

아주 흥미로웠다. 이스라엘이 '영원한, 나뉘지 않은 수도'라고 주장하는 예루살렘의 절반을 포기한다는 건 보통 '좌파'(이스라엘의 좌파를 지칭하는 넓은 의미로 하는 말이다. 여기에 진짜 좌파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최근 몇 번 선거에서는 여론이 우파로 기울었다는 게 드러났다.

사진을 들여다 보며, 나는 폭력이 조금 늘어나서 이스라엘인들은 점령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진에서 나오듯, 다른 민족을 계속 좁아지는 공간에 몰아넣고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며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마침내 깨닫고 있는 걸까.

나는 낚시에 걸려 신문을 샀다. 평소보다는 조금 조용했지만 그래도 붐비는 시장에서 장을 좀 본 다음 집에 가서 여론 조사 관련 기사를 읽었다.

나는 실망했다.

헤드라인은 "원칙은 분리이다"였다.

여론 조사 결과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구역을 떠나야 한다고 응답했지만(이 글을 쓴 벤 캐스핏은 이것이 '좌익'이라고 했다), 한편 58%는 '서안 지구 아랍인들'(즉, 팔레스타인인)들의 '자발적 이주'(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를 지지했다.

그들은 대체 어디로 가란 말일까, 싶었다.

캐스핏은 이것이 '우익'의 정서라고 정확히 지적했다. "현실적으로는 같은 결과다. 우리는 아랍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우리를 떠나든, 우리가 그들을 떠나든, 원칙은 분리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오슬로 협정에 의해 공식화된 분리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분리가 우리의 현실을 초래했다. 분리는 두 민족이 서로 상대를 얼굴 없는 적으로 여기는 현재의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 집단 처벌의 문제도 있다. 조사 대상이 된 이스라엘 유대인의 61%는 "'테러의 급증' 이후 아랍계 이스라엘들에 대한 경제적 보이콧을 지지'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88%는 "테러리스트들의 가족들에 대한 응징"을 지지했다.

가족들에 대한 응징은 집을 파괴한다는 의미다.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유대인을 죽이면, 이스라엘은 범인의 가족의 집을 부순다. 용의자 본인이 죽었거나 감옥에 갇혀 있다 해도 말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언제 끝날까?

그리고 내가 잠깐 가졌던, 최근의 일들 때문에 이스라엘인들이 점령을 포기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좌파'가 되어야 한다고 이해했다는 희망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반대였다. 이번 조사에 의하면 '테러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유대인의 64%는 정치 성향을 바꾸지 않았다. 기사에 의하면 '3%만이 좌파 쪽으로 변했다고 대답했다'. 30%는 더욱 우파로 갔다.

그 30%를 염두에 두고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라. 이스라엘인 67%는 '테러의 급증'에 대한 네타냐후의 대응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 정부는 현 정부보다도 더 우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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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trean israel

에리트리아에서 온 망명 신청자 하브톰 자훔 추도식이 텔 아비브에서 열렸다. 이스라엘의 에리트리아 지역 사회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내 지인 중 우익인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 여기는 정치적 의견이 다양하고,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끼리 모인다 - 그들의 대화는 버스, 카페, 레스토랑,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신문 기사들보다도 더욱 실망스럽다.

수요일에 자훔의 추도식에 가던 길에 나는 아주 작은 페르시아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중년 남자 세 명과 젊은 군인 하나가 내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 중 하나가 평소에는 점심 시간에 이곳이 붐비는데 오늘은 텅 비어 있다고 말했다.

"다들 어디 갔지? 마트사브(상황) 때문인가 보네." 그가 말했다.

'상황'은 이스라엘인들이 분쟁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그들은 최근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명은 테러리스트들의 집을 부수기만 할 게 아니라 가족들도 추방해야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그게 분쟁의 해결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 추방하고 국경에 전부 벽을 둘러야지." 그는 한 입 베어물고 씹었다. "어쩌겠어? 우린 지금도 게토에 살고 있잖아."

서안 지구에 대한 짧은 논쟁이 이어졌다. 한 명은 서안 지구를 합병하면 "아랍 사람들이 다 들어올 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철수하면 거기도 가자가 될 거야. 할 수 있는 게 없어." 다른 사람이 잘라 말했다. 분리와 점령 모두 계속되어야 한다.

군인은 자기 상관이 약간 좌파이며 "팔레스타인인들과 평화 협정을 원한다."고 불평했다. 그는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가 그들과 평화 협정을 맺으면 그들은 '발라간'을 일으킬 거야." 엉망진창이란 뜻이다.

***

israeli security

나는 이런 대화와 설문 조사 때문에 슬프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폭력이 증가하면, 즉 팔레스타인인들이 순한 양처럼 불법 점유를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이스라엘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들은 "왜 이 사람들이 화가 났을까?", "그들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우리가 그들을 자극할 일을 했나?"라고 묻지 않는다.

이스라엘인들은 간단한 외부의 대답을 찾는다: 그들은 유대인을 싫어하고, 우리를 증오하고, 우리를 죽이고 싶어하고, 우리를 바다로 몰아넣고 싶어한다.

나는 자기 성찰을 전혀 할 수 없는 이유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게 어디서 온 건지는 안다고 인정한다. 공포다. 나도 공포를 느낀다. 나도 텔 아비브에서 돌아다닐 때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흘끗 살핀다. 인종을 보고 그러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모르는 모든 사람들이 다 두렵다. 나는 다른 사람 옆에 가까이 서 있지 않으려고 애쓴다. 혹시라도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칼을 꺼낼까 봐서다. 군인과 경찰이 테러 대상이 되는 것 같아서, 그들 옆에 너무 가까이 있지 않으려고 한다. 총격전 한 가운데에 있고 싶지 않아서다.

어느 날 오후에 나이 지긋한 남자와 그의 아내가 - 억양이 심한 히브리어를 하는 관광객들 - 나를 멈춰 세우고 길을 물으려 했다. 나는 계속 걸어가며 그들에게 어깨 너머로 소리 질러 길을 알려주었다.

내 생각에는 그게 핵심인 것 같다. 계속 움직인다는 것.

내 생각과 행동이 괴상하고 비이성적이라는 걸 알겠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유대인들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이주하기를 원하는 '서안 지구 아랍인'인 내 남편조차 그는 작년 여름 전쟁 중일 때보다 지금 더 내가 걱정된다고 말한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팔레스타인인이 공격할 수도, 정신 나간 무장한 이스라엘 유대인이 공격할 수도 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나만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심지어 금발인 사람이라도, 누군가 저 사람 테러리스트라고 비명 지르면 그냥 끝장나는 거다." 한 지인이 이스라엘 사회에 퍼지고 있는 히스테리와 패닉에 대해 이야기하다 한 말이다.

***

선한 인도주의자로서, 우리들은 이렇게 말하고 믿으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이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 척하려 한다. 하지만 일요일 밤, 우리는 자훔처럼 우리 중 피부색이 짙은 사람이 오인 받기 가장 쉽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이스라엘 매체들은 보기 드물 정도로 명백하게 보도하며 이 사건을 '린치'라고 불렀다.

수요일에 페르시아 레스토랑을 나와서 나는 내 책과 관련된 인터뷰 몇 건을 진행하고 자훔의 추도식에 가려고 텔 아비브 남부로 갔다. 중앙 버스 정류장 근처를 지날 때, 일주일 전보다도 총들이 많아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경찰과 군인이 늘어난 것만이 아니었다. 시민 몇 명이 - 전부 남성이었다 - 권총을 바지 허리춤에 넣고 있었다.

총이 있어서 내가 더 안전하다고 느낀 건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경찰과 군인들로부터 벗어나려고 - 그들은 타겟이니까 - 길을 건넜지만, 반대편에도 있었다. 그토록 많은 유니폼들을 보니 내가 걱정해야 될 일, 불안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만 같았고, 나는 다시 내 주위 사람들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경찰 한 명 옆을 지났다.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가 나를 살피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가, 모두가 얼마나 과민한지 이해했다. 거리를 걸어가는 임신한 이스라엘 유대인 여성인 나까지도 위협으로 보일 수 있다니 말이다.

'언제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곳의 삶의 모든 면에 침투하기 시작한, 만연한 공포와 불안감이 익숙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내가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살 때, 검문소를 지날 때, 군인들이 우리 집 아래 골목의 집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기분이었다.

이스라엘인들은 점령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서안 지구 아랍인들'과 동예루살렘인들이 매일 느끼는 것을 조금 맛보고 있다. 그들은 불평등, 점령, 분리가 주는 것을 조금 맛보고 있다. 이스라엘인들은 불평등, 점령, 분리가 자신들의 생존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금방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이여, 팔레스타인이 바로 이런 곳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This Is What the Israelis Really Wan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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