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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16일 06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5월 16일 14시 12분 KST

진짜 코끼리를 만난 적이 있나요?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 앞에서 코끼리의 뒤뚱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밧줄과 사슬, 흔히 말하는 조련도구인 '불혹' 등이라든지, 항상 곁을 지키고 있는 주인 혹은 조련사의 감시와 보호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코끼리를 본 적이 있던가? 어릴 때부터 책으로, 동물원에서, 혹은 각종 방송과 영화를 통해 보았던 코끼리의 이미지들은 전부 다 사람의 손에서 길들여진 것들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는 그야말로 야생 그대로의 코끼리는 만나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 뒤로 몇 개월을 아시아 지역에서 떠돌다가, 마침내 나는 태국에서 '진짜' 코끼리를 만났다.

Rui Almeida Fotografia

힌두교에는 '가네샤'라는 신이 있다. 가네샤는 인도의 최고 신 중 하나인 '시바'의 아들로, 모종의 사건에 의해 사람 형상의 얼굴 대신 코끼리 형상의 얼굴을 가지게 되었고, 그 덕분에 인도의 수많은 코끼리들은 '가네샤'의 이름 아래 보호받게 되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사실 여기까지는 관광용으로 포장된 신화의 일부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인도에서는 코끼리는 신성시되는 동시에 인간의 다양한 물적 자원으로 유용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특히 관광객의 교류가 거의 없는 수도권 외 지방에서 코끼리는 '있으면 매우 편한' 중요 재산으로 취급되고 있다. 타지마할이나 레드포트의 건설 등에 투입된 코끼리 수만 보아도 인도에서 코끼리와 인간의 유대 관계는 얼마나 밀접하게 맞붙어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의 북부보다는 남부에서 마을 주민들과 코끼리의 유대가 더욱 강렬하게 얽혀져 있고, 실제로 남쪽 인도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면서 여러 가지 일에 동원되거나 주인의 지도 하에 자유롭게 산책을 하는 코끼리들을 매우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주인이 들고 있는 조련도구와 발에 자그마한 사슬을 달고 있었으나 주인과의 유대관계는 제법 끈끈해 보였다. 그곳에서 매일같이 만난 코끼리들은, 주인뿐만 아니라 그 마을의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제법 든든한 토템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 앞에서 코끼리의 뒤뚱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밧줄과 사슬, 흔히 말하는 조련도구인 '불혹' 등이라든지, 항상 곁을 지키고 있는 주인 혹은 조련사의 감시와 보호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코끼리를 본 적이 있던가? 어릴 때부터 책으로, 동물원에서, 혹은 각종 방송과 영화를 통해 보았던 코끼리의 이미지들은 전부 다 사람의 손에서 길들여진 것들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는 그야말로 야생 그대로의 코끼리는 만나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생겼다.

막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코끼리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단 한 번도 '진짜' 코끼리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나는 굉장한 당혹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인도를 떠날 때까지 관광용이나 산업용으로 포장된 코끼리가 아닌 야생의 코끼리, 혹은 야생에서 도태된 코끼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도 내의 야생동물 중 코끼리 보호구역은 타인, 특히 외국인에게 철저하게 가려져 있었고, 이에 관한 봉사를 하고 싶다면 몇 달 전부터 미리 신청을 해야만 했었다. 굳이 야생의 코끼리를 만나보고 말겠다는 집착 따위가 있던 것은 아니었으나,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무심하게 지나갔던 '진짜' 코끼리의 모습은 정말 궁금했었다.

그 뒤로 몇 개월을 아시아 지역에서 떠돌다가, 마침내 나는 태국에서 '진짜' 코끼리를 만났다. 태국의 유명한 야생코끼리 보호시설인 치앙마이의 '네이쳐파크(Elephant Nature Park)'로 향하던 길에, 타국의 쇼에 팔려가다가 구조된 새끼코끼리들을 보호하고 있는 마을을 만났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던 그 마을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공간과, 코끼리를 위한 넓은 숲으로 구성되어있는 푸른 초원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머무는 짧은 며칠 동안 외부인의 신분으로 코끼리를 직접 만지거나 가까이서 바라볼 수는 없었지만, 매일 새벽과 저녁을 알리는 코끼리의 울음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난생 처음 조련을 통해서가 아닌 자발적 목소리로 감정을 표현하는 코끼리들을 만났고, 솔직히 말해 그 울음소리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특히 밤이슬이 잔뜩 차갑게 내린 한밤 중에 들리는 코끼리들의 웅성거림은 너무나 초현실적이어서, 그 소리를 들으며 그때의 기분을 기록하기 위해 재빨리 펜을 들고 종이를 펼치곤 했지만 번번히 실패할 정도였다. 그 마을에 머무는 내내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 촬영 세트장을 거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위로 내려앉은 코끼리들의 울음소리, '진짜' 코끼리들의 목소리에 나는 종종 충격을 느끼고 감동을 받기를 반복했다.

몇 년 뒤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공원의 동물원에서 잠시 일하며 그곳의 코끼리를 돌봤을 때에도 태국에서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곳에서는 코끼리 담당 사육사의 보조역할로 코끼리들의 분변을 치워주고 먹이를 급여하고 행동풍부화를 도와주는 등의 일을 맡아 했었고, 나와 코끼리의 일과는 아침 7시 무렵 시작되어 정오를 조금 넘기는 시간까지였다. 처음 코끼리사의 내실에 들어가서 아침 일찍 코끼리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때 내실 창살 너머로 나를 바라보던 암컷 코끼리 '사쿠라'의 눈빛은 지금까지 머릿속에 생생하게 기억된다. 사쿠라는 조용히 나를 응시하며 내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늠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내실의 문이 견고하다고 해도 코끼리는 코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동물이기에, 나는 코끼리 코의 사정거리 내에 들지 않도록 조심하며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사쿠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코끼리가 사람의 눈을 정확하게 응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두 번째로 코끼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의 성향을 단시간에, 그것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코끼리를 '동물'의 범주 내에 넣어 생각하기만 했던 나에게, 그때 사쿠라가 보여줬던 행동은 코끼리에 대한 내 알량한 지식을 완벽하게 박살내는 것들이었다. 매일 아침 커다란 몸집으로 숨을 내쉬고,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내며 나를 응시하던 나이 많은 코끼리, 사쿠라. 동물원에서의 일과가 끝나면 그런 사쿠라의 모습이 너무 신기해 종종 멀리서 사쿠라를 바라보기도 했다. 사쿠라와 다른 코끼리들이 움직일 때마다 내 발 밑에서 느껴지는 깊은 진동은, 야생에서 사람과 코끼리로 만났다면 내가 자연스레 그들에게 느꼈을 '공포'와 '경외'의 일부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고, 지난 이십 몇 년 간 내가 알고 지냈던 혹은 알고 있다 자부했던 코끼리의 이미지는 그때 전부 지워지고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태국과 서울대공원을 거쳐 지나온 코끼리에 대한 관심이 제주도의 한 테마파크에 다다랐을 때, 나는 세 번째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제주도의 테마파크를 통해 받았던 충격은 앞서 마주했던 감정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또 그랬기 때문에 그곳이 참 견디기 힘들었다. '코끼리 공원'이라 명명되어있는 테마파크는 제주도에서 인기 높은 관광지 중에 하나였으며, 최근 중국인 관광객들과 효도관광을 오는 단체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는 시설이었다. 하루 네 번, 코끼리 열 마리 정도가 동원되어 약 한 시간 정도 공연을 하고 있었고 공연 시간이 아닐 때에는 공연장 밖에 마련된 간이 트레킹 공간에서 끊임없이 트레킹을 받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수많은 기사와 시민단체들로 인해 논란이 되던 곳이었고, 조금 더 정확하게 알아보고자 테마파크의 문을 두드렸고 결과는 참담했다. 농구, 볼링, 훌라후프, 물구나무서기 등 사람도 하기 힘든 쇼를 조련 하에 시행하고 있는 코끼리들과 그것을 보며 재미있게 손뼉치고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일반적인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기에 큰 동요를 하지 않았지만, 쇼 프로그램 마지막에 다다라 상황극을 위해 공연장 한 가운데 죽은 듯 누워있는 한 코끼리의 눈망울을 보는 순간 이곳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끔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국에서 들었던 코끼리의 높고 낮은 울음과 서울대공원에서 마주했던 사쿠라의 깊은 눈, 그리고 있는 힘껏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제주도에서 하루 종일 쇼와 트레킹에 시달리는 코끼리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방송과 교육을 통해 당연시하게 생각되었던 코끼리의 잘못된 이미지들에서 이제 가까스로 탈피하려는 나를 다시 과거로 역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기운이 도처에 가득한 제주에서, 그곳은 내가 유일하게 피하고 싶었던 곳이었다. 정말 힘든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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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한 코끼리 테마파크 공연 중 사진. 쓰러진 척 연기하고 있는 한 코끼리의 모습이다)

동남아시아를 방문하고 제주도를 여행할 때 코끼리 쇼를 방문한 적이 있는지, 혹은 길거리의 아기코끼리가 귀여워 돈을 쥐어주거나, 코끼리가 코로 그린 그림이 신기해서 사고 싶지는 않았는지. 순간의 쇼를 위해 매일 20시간을 넘게 쇠사슬에 발을 묶여 훈련을 받고 지내며, 훈련을 통해 반복적인 신체의 고통을 받은 그들은 매우 높은 확률로 정형행동을 보이며 정신병에 걸린다. 딱딱한 코끼리의 피부는 보기와 다르게 매우 예민하여 날카로운 조련도구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고, 무리생활이 기본 습성인 코끼리들은 쇼를 위해 사지를 묶이고 송곳으로 찔러가며 어미와 이별하는 처참한 훈련을 받는다. 우리가 아름답고 영롱하게 느끼어 구매하는 작은 상아를 위해 아시아에서는 15분에 1마리의 코끼리가, 아프리카에서는 한 해 4만 마리에 달하는 코끼리가 희생된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치장된 코끼리의 겉모습 안에, 끊임없이 고통 받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코끼리가 무리로 생활해야만 하는 동물이고, 그 어느 동물보다 복잡하고 끈끈한 사회관계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그림책과 교과서, 동물 관련 방송, 영화 등을 통해 학습했다. 종종 이런 매체들에 노출되는 코끼리의 모습-이를 테면 동료간의 죽음을 애도하고 장례의식을 치루는 코끼리들이라든지 죽을 때까지 새끼를 돌보는 어미 코끼리의 모습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현재, 우리 곁에 조금만 발품을 팔고 수고를 들여 만날 수 있는 코끼리들의 모습은 어떤가. 우리가 텍스트를 통해 배워왔던 코끼리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진짜' 코끼리는 무엇일지, 그렇다면 '진짜' 코끼리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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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나는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하곤 한다. 무언가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마주할 때 내가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이 모습이, 그가 가진 진짜 모습일까 그렇지 않을까에 대한 질문을 말이다. 야생동물은 야생에 있어야 가장 아름다운 존재다. 그들이 살아가는 야생의 생태를 지켜주지 못하고 인간의 손에 의해 그 터전이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있기에, 그 원인을 제공한 우리는 일정 부분이라도 그들의 삶을 복원시켜줄 의무를 가지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10년 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물 중에 하나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예측은 곱씹을수록 끔찍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불편하고 비참하더라도, 눈을 돌리거나 피하지 않고 그 심연을 마주하는 자세가 현재의 우리에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제 어딘가에서 커다란 코끼리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치장과 장식들을 내려놓고 그 코끼리의 눈을 깊게 들여다보아주기를 감히 부탁 드린다. 어쩌면 그 눈빛 안에 당신이 몰랐던,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아픔들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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