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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30일 05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30일 14시 12분 KST

모르겠거든, 박경림처럼

OSEN

모르겠거든, 박경림처럼

우연히 개그맨 박경림의 강의를 들었다. 듣는 내내 놀라웠다. 그녀는 생각과 실천을 한 몸으로 생각할 정도로 도전정신이 탁월했다. 그 정신이 낳은 '작은 성공의 점', 그 점들이 만들어 가는 '연결'과정이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한번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아가 진로에 갈피를 못 잡는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믿음이 생겨 그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박경림은 1997년 당시 최고의 청취율을 자랑하던 MBC 라디오 '별밤'의 돌발소녀로 데뷔, 불과 4년 만에 연예대상을 받을 만큼 일찌감치 스타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개그맨은 물론 연기자, 진행자로 종횡무진하다 2002년 갑자기 미국 유학을 선언한다. 연예대상을 받은 이듬해, 최고의 전성기였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미국에 한번은 가겠다'는 소녀 박경림과의 약속을 지킬 때가 됐다면서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미국에 간 건 탁월한 결정이었다. 또 다른 꿈을 만나게 됐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던 그녀는 뮤지컬을 실컷 보자는 목표도 세웠는데, 그렇게 본 작품이 뚱뚱한 소녀의 꿈을 그린 '헤어스프레이'였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이야기에 눈물이 너무 나서 객석에 끝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박경림은 틈나는 대로 공연장을 찾아가 무려 열네 번을 더 봤고 마침내 트레이시 연기를 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뮤지컬에 캐스팅되기가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판단, 제작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실제 뮤지컬 제작을 하기 위해 이런 저런 자문을 얻고 공부도 했다. 한국에 돌아갔을 때는 라이선스를 사서 공연을 올리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이미 대형 뮤지컬 회사가 라이선스를 가져간 것이다. 박경림은 대표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고 공연권을 넘겨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생각에 잠긴 대표는 뮤지컬을 올리려면 2년은 걸리니 그 동안 열정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 2년간 박경림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수시로 대표에게 전화를 했고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는 "오디션을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무조건 해야 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다. 현실은 냉정했고, 유명한 연예인이라는 사실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특별 훈련에 돌입한다!' 실력 있는 보컬 트레이너를 구해, 두 달 동안 매일 연습했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선생님이 있는 곳을 찾았다. 트레이너는 끈질긴 박경림을 보며 '이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지독한 열정에 손을 들었다. 3주가 지나자 "경림씨, 우리 한번 해봅시다. 죽기 살기예요." 마침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다시 도전한 오디션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것이다. 그렇게 미국에서 '헤어스프레이'를 본 지 7년 만에 박경림은 꿈에 그리던 트레이가 된다.

'점의 연결'이 만든 길

박경림의 '한번하기' 정신을 알기 위해서는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녀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았다. 출생은 가난한 집안에 원하지 않은 임신의 결과였다. 초등학교 시절 반장이 되어 집에 왔을 때다. 그때 엄마가 했던 말은 가슴 속에 잊혀 지지 않는다고 한다. "반장이 된 것은 자랑스럽지만, 교실에 연필이라도 돌려야 하는데 형편이 어려우니 물렀으면 좋겠다." 그날 모녀는 같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엄마 아빠가 앞으로도 금전적으로는 도움을 못 줄 것 같다. 대신 항상 응원할게. 무엇을 하든지, 너의 길을 열심히 찾아라." 그 말씀은 그녀가 살아가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날의 박경림을 이어준 최초의 '점'을 살펴볼 차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소풍 가던 날이었다. 사회를 보기로 했던 친구가 김밥을 먹다 급체를 했다. 선생님은 반장이었던 박경림을 부르더니 대신 사회를 보라고 했다. 관객은 무려 천 명. 박경림이 손사래를 치고 있을 때, 이미 다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바로 옆 반 반장을 시키겠다고 했다. 무슨 오기였을까? 그 말을 듣자마자, "제가 할게요."라고 말해 버렸다.

박경림은 덜덜 떨면서 무대에 올랐다. "안녕하십니까? 5학년 2반 박경림입니다." 그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가 들렸다. 처음 듣는 함성 덕분이었을까? 고개를 드는데 신기하게도 떨리지 않았다. 행사의 진행은 성공이었다.

기분 좋은 밤이었다. TV를 켜자,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이문세 쇼'가 방송 중이었다. 낮에 있었던 일과 오버랩 됐다. '진행을 하면 매일 저렇게 박수를 받는구나.' 그 순간 박경림은 MC의 꿈을 가슴에 새긴다.

중학생이 된 박경림은 형편 탓에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야 했는데, 레코드숍에서의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가게 주인이 없을 때마다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곤 마치 DJ처럼 진행을 했다. 그렇게 진행자가 되겠다는 꿈은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이때 운명적인 경험을 한다. 친구의 권유로 KBS 라디오 프로그램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에서 개최하는 여름방학 캠프에 응모를 했는데 운 좋게 뽑혔다. 버스에 올라타고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이었다. 노래 한곡을 하고 나서 "제가 진행을 해도 되겠습니까?"라고 일행의 동의를 구했다. 당시는 이미 진행 본능이 충만한 상태였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에서 사회를 봤다.

이를 눈 여겨 보던 피디가 공개방송의 보조 진행을 맡겼다. 그런데 그 방송을 마침 운전하고 가던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작가가 듣게 되면서 특집 방송에 섭외된다. 정식으로 방송에 캐스팅 된 거다. 1997년 고3때, 박경림은 진짜 연예인이 되었다.

한 번의 도전, 우연히 가슴에 새긴 꿈, 꾸준한 연습, 다시 우연한 기회까지 박경림의 데뷔는 극적인 '점'이 연결된 결과다.

박경림은 친구들 앞에서 처음으로 사회를 봤다. 다들 인정하듯,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제 '나라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해보자. 그 상황에서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용기 내어 해 본 일로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은 무엇일까? 흔히 망신이라고 하는 어색하고 창피한 감정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공포에 떨 만큼 대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박경림이 주는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료하다. '큰 열매도 작은 씨앗에서 비롯된다.'

대중 강연가로 명성을 떨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다. "강사의 종류는 2가지다. 떨린다는 사람과 안 떨린다고 거짓말하는 사람이다." 프로페셔널도 두려움을 느낀다는 말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인간에게 정상적인 반응임을 알면 심리적으로 한결 편안해진다. 게다가 모든 일의 시작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의 용기는 필요하지 않을까. 뭐라도 연결되려면 시작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참조 : tvN 스타특강쇼 박경림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