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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02일 10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04일 14시 12분 KST

깊게 생각하지 말고 '한번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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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선배 H로부터 전화가 왔다. "별 일 없으면 나올래?" 늘 그렇듯 저녁 먹고 잡무를 처리하고 있던 터였다. '어라??? 지금 무슨 상황이지?'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그가 왜 나를 부르는지, 누구랑 있는지 따윈 중요하진 않았다. 설사 별 일이 있어도 나갔을 것이다.

H는 다큐의 거장이다. 그의 대표작 <문자>와 <마이크로의 세계>를 보고 충격 받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아, 우리나라도 BBC 수준의 다큐를 만들 수 있구나.' H는 매 작품마다 굵직한 상을 싹쓸이 했고, 30대 중반에 이미 국내 정상에 섰다. 그는 현재 방송 피디를 넘어 영화감독으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데뷔작 <점박이(2012)>는 100만 관객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역대 한국 애니메이션으로는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두 번째, 3D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최초다. 이런 인물이 EBS PD라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선배가 나에게 먼저 연락한 것이다. '이게 뭔 자존감 떨어지는 소리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H의 입장에서 보면 후배가 한둘도 아니고, 나의 경우 내세울 만한 프로그램도 없었기 때문이다.

"너에게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 J는 편집회사의 대표 겸 감독이었다. 2006년만 해도 편집 전문가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피디는 소수에 불과했다. J는 현재 제작사 대표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막을 내린 어린이 뮤지컬 <지파이터스>가 그의 첫 작품이다.

어쨌든 그날의 만남은 그저 '벙개'였고, 깊이 있는 얘기보다는 가볍게 마시고 웃고 떠들다 헤어졌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날은 내 피디 생활의 가장 큰 전환 '점'이었다.

점의 연결

1년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3대 협회(피디, 작가, 촬영감독) '2007년 대상'으로 선정된 것이다. 누가 봐도 놀랄 만한 일이다. 나 역시 꿈만 같았다. <시대의 초상>이라는 인터뷰 다큐멘터리로, 거인들의 자전적 육성을 통해 한국을 조명해보고자 기획되었다. 피디가 8명이나 투입될 정도로 편성에서도 미는 프로그램이었다. 재밌는 것은 기획자는 H였고, 1번 타자는 나였다는 사실이다.

경력이 가장 떨어지는 내가 1번이 된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당시는 불운하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엄청난 행운이었다. 온갖 특권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H는 숨은 연출자처럼 나를 도와줬다. 작가와 카메라 감독도 최고의 선수들이 붙었다. 게다가 편집감독은 H의 영원한 파트너 J였다. 눈물 날 정도로 나를 도와줬다. 불쌍하고! 기특하고! 첫 편이라는 이유로! (제작이 완료될 때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뭘 한 걸까?')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난 또 다른 선배에게 끌려(?)갔고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5부작 다큐멘터리를 공동 연출하게 됐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그 해 최다 수상을 기록했으며 관련 책은 30만부나 팔렸다. H에서 시작된 행운의 '점'이 다른 점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 다음 '점'으로의 '연결'은 기획의 대가 K를 만난 것이다. K는 한국을 인문학 열풍에 빠지게 한 도올의 <노자와 21세기>, EBS를 다큐의 명가로 만든 <다큐프라임>의 기획자이면서 편성기획부장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H가 나를 강력 추천했다고 한다.

2년 동안 K의 부서원으로 있으면서 기획에 대한 심층 수업을 받았다. 마치 과외를 받는 기분이었다. 김위찬 교수의 블루오션 전략 실천편이랄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점을 발견하는 안목, 팀플레이를 통해 교정하는 과정(수다를 매우 잘 활용한다), 밀고 나가는 용기. 이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들여다봤다.

'한번 했다'

이 모든 연결의 시작은 '한 번의 부탁'이었다. "선배님, 술 사주세요." 난 H에게 이 말을 했고, H가 기억했다가 나를 부른 것이다. 물론 다른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난 팬을 자처했고 볼 때마다 뭔가를 물어봤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부탁을 '한번 했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그날 만남은 존재할 수도 없다.

되돌아보면 후배가 선배에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약간의 용기는 필요했다. 친밀하지 않은 선배한테 뭘 사달라고 하는 게 아주 쉬운 일은 아니다. 먼저 선배의 심리는 어떤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를 심리학에선 '마음읽기' 능력이라고 한다. 대인관계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 다음 대화 도중 뜬금없이 무언가를 요구할 수는 없는 법.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야 한다.

내가 H에게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뭐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조금 더 친해지고 나서 시도했을까. 아니 조금 더 친해질 수는 있었을까. 너무 많은 것들이 가정으로 남는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오래된 명언이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광고기획자 박웅현의 시작도 '한번 하기'였다. 1986년, 친구 한 명이 술값 좀 벌어보자고 광고 공모전을 제안했고 박웅현은 큰 고민 없이 팀에 합류했다. 대학생 대상 조선일보 공모전이었는데 그 때 우수상을 받고 '이게 내 길인가'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한다. 이듬해는 적극적으로 공모에 임했고 대상을 받았다. 평생의 길이 된 것이다.

조앤 롤링은 맨체스터에 갔다가 런던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마법사 소년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해리포터가 잉태되는 순간이다. 그녀는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생각나는 대로 '한번' 썼다. 그러면서 공책은 채워지기 시작했다. 다음 날은 마법의 규칙에 대해 썼고, 그 다음 날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썼다. 비록 생계 문제가 발목을 잡아 출판까지 7년이나 걸렸지만 그녀는 매일 무언가를 써 나갔고 눈으로 확인했다. 무엇이었을까. 바로 작은 성공 경험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평소 "모든 위대한 일은 작은 실천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작은 실천의 시작은 바로 '한번 하기'다.

'내가 해냈다'

무언가를 '해낸' 기억은 오래간다. 처음으로 해낸 것, 크게 해낸 것은 평생을 가도 잊히지 않는다. 이 '맛'은 세상 어느 음식보다 달콤하다.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말한 대로 인간은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최저생계비 같은 생존문제)를 해결하면 심리적 욕구를 추구하게 되어 있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원하는 것을 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이를 욕구5단계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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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슬로 욕구5단계, 자기결정성이론, 자존감은 사실 한 몸통이다]

에드워드 데시는 매슬로의 이론을 동기(motivation)에 접목시켜 1969년 그 유명한 자기결정성이론을 탄생시킨다. '자기가 결정한 것'이 어떤 동기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 이론의 세 가지 키워드는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이다. 자율성과 유능성을 묶어 우리말로 풀면 '내가 해냈다' 한자어로는 '성공 경험'. 자존감 훈련의 핵심이기도 하다.

동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해냈다'라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한번 하기'가 중요하다. 작은 거라도 실천해서 '해내면' 그 맛을 못 잊고 더 큰 걸 시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게임 끝이다. 이는 선 동기부여, 후 실천과 정반대 순서의 전략으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효과는 강력하다. 그리고 수많은 행운을 발생시킨다.

'한번 하기'

그렇다면 어떤 것을 한번 하면 좋을까. 약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해낼 수' 있는 것이 좋다. 만약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두 가지 측면에서 실행해 볼 수 있다. 먼저 작은 '습관' 들이기인데 한 줄 일기 쓰기(3년 됐다)나 좋아하는 글 필사하기(1년 됐다)를 추천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록은 남고 그만큼 뿌듯함도 커진다.

두 번째는 내가 H선배에게 술 사달라고 부탁한 것과 같은 간단한 '행동'이다. 습관보다는 일회적이지만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는 거다. 만나는 순간 엄청나게 많은 '점'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욕망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의 조언이 더 깊숙이 들어온다. 실용적인 면도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직업적 단점들도 알게 된다.

나 역시 대학생들을 만나면 "현업인을 만나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한 번이라도 직접 연락해서 만나보면 더 좋다. 대학생활에서 가장 후회되는 점이기도 하다. '직업'을 찾는 과정은 '배우자' 찾기만큼이나 중요하다. 책이나 TV에서 슬쩍 보고 결정할 일이 아닌데 비슷한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다 교육의 문제다.

난 8년 동안 기자를 준비했고 한 신문사에 들어가 두 달 만에 나왔다. 어처구니없게도 기자가 그렇게 힘든 직업인 줄 몰랐다. 기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긴 시간 동안 기자 준비를 한 것이다. 그래서 난 단언한다. 현업인을 만나 보지도 않고 직업을 정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대게의 반응은 대략난감이다. '과연 상대가 만나 줄까.' '불쾌해 하지는 않을까.' '어떻게 연락해야 하지.' '소개해 줄 사람 없을까.' 불안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걱정할 필요 없다. 과제가 어려우면 과제의 수준을 '해낼 수' 있는 정도로 끌어내리면 된다.

재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매년 1회 진로지도의 날을 지정해서 현업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해주고 있다. 강의 말미에 언제나 하는 말을 했다. "피디가 되고 싶으면 피디를 만나라" 30명이 내 명함을 받아갔고 한 명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예능 피디 좀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이미 알고 있는 지인을 활용하는 것도 전략이다. 부탁하는 것도 나름 용기가 필요했을 터다. 내가 아는 가장 유명한 예능 피디 3명의 이메일과 휴대폰번호를 알려줬다. 그리고 결과를 꼭 알려달라고 했다.

한 달 후, 답장이 왔다. 그 중 한 명의 피디한테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괜히 했다는 듯이 시큰둥한 뉘앙스였다. (이런 반응이 나오면 나도 괜히 했나 싶기도 하다) 이번엔 내가 질문을 했다. 3명의 피디한테 연락을 했으면 어땠을까? (열 명 중에 한 명 답장 오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진심을 담아 메일을 썼던 걸까? 문자를 같이 보냈다면 어땠을까? 마지막 질문. 정말 실패한 걸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아이는 30명 중에 유일하게 나에게 연락했다. 작지만 해낸 거다. 피디에게 메일을 보낸 것 자체가 해낸 거다. 더구나 그 피디들은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사람들이다.

3년 전엔 한 중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1학년인 그 아이는 사장의 트위터를 타고 자기의 소망을 몇 줄 적었다. "전 다큐프라임 피디가 되고 싶어요!" 사장은 다큐 부장한테 리트위트 했고, 부장은 다시 나를 연결해줬다. 그리고 난 중학생을 만났다. 대화 장면을 녹화하겠다며 캠코더를 들고 아버지와 함께 회사로 찾아 온 그 아이가 잊히지 않는다.

난 그 아이에게 한 가지 조언을 했다. "피디가 되려면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아버지가 상당히 뿌듯해 하는 눈치였다. 그 아이는 그 날 '무슨' 일을 했을까.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전혀 아는 바 없다. 하지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