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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11일 07시 25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11일 14시 12분 KST

[공짜 영어 스쿨] 나의 사부님을 소개합니다

선생은 그저 우직하게, 성실하게 열심히 공부할 것만을 주문했다. 요즘 토익 출제 경향을 쪽집게 도사처럼 알려준다는 강사들이 뜨는데, 선생은 단기간에 시험 성적을 올려주는 요령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험만 잘 봐서, 통역사가 되면 뭐하나요. 실력이 없으면, 먹고 살 수가 없는데.' 이게 선생님의 지론이었다. 그러니 단기 속성으로 시험 잘보는 요령을 배우려는 학생은 금세 떨어져 나갔다. 더 많은 학생을 받으려면 요령도 좀 가르쳐주시면 좋으련만, 선생님은 공부도 강의도 요령을 피우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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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 33. 나의 사부님을 소개합니다

재미난 소설을 한 권 읽고 있다.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 그 중, 과외 교사 김승필이 지환이 엄마 박수정에게, 아이가 영어에 흥미를 갖는 법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이 있다. 영어 스쿨에서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라 옮겨본다.

아이들은, 아니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겠죠, 사람은 일단 재미있다고 느끼면 그다음부터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지환이와 수업할 때 지환이가 '공부한다'고 느끼기보다는 저와 '논다'고 느끼게 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한국말로 뜻을 설명하라? 그런 거 안 시킵니다. 단어 외워라? 그런 것도 안 시키죠. 오로지 듣고 따라 하기만, 그것도 게임을 하면서 저절로 하게 합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섀도잉, 그러니까 들으면서 동시에 따라 하기를 시키죠. 그렇게 하다 보면 해석이랑 스피킹은 저절로 다 해결됩니다.

잘 쓴 소설은 이렇게 사람을 감탄하게 한다. 과외 교사가 아이 엄마에게 점수 따려고 하는 말인데 영어 학습법의 이치로 보아도 딱딱 들어맞는다. '소설가가 어떻게 이렇게 영어 학습법에 대해 잘 알지?' 신기해서 작가의 프로필을 봤더니 영어영문과 나와서 외국계 회사에서 통번역 일을 했다. 어쩐지... ^^ (참고로 경향신문 2015 올해의 책에 선정된 걸 보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정말 재미있다, 강추! 요즘은 영어 잘 하는 사람이 소설도 잘 쓰는 세상... 참. ^^)

나 역시 외국어 학습법 중에서 섀도잉을 자주 활용한다. 발음 때문에 애를 먹었던 중국어 공부 당시 섀도잉을 자주 했다. MP3 파일을 틀어놓고 주야장천 따라하기만 해도 발음이 무척 좋아진다. 섀도잉이 반복되면 암송으로 이어진다. 문장 암기가 힘들다면 섀도잉이라도 해보자.

섀도잉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운전할 때다. 예전에 분당에서 일산으로 출퇴근할 때, (가혹한 통근...ㅠㅠ) 매일 3,4시간을 길에 버리는 게 너무 아까웠다. 그러다 차가 막히기라도 하면! 그래서 운전할 때, 영어 팟캐스트나 오디오북을 들었다. 그것도 지겨우면 새로운 언어를 공부한다. 책을 보고 암송한 기초 회화 mp3를 틀어놓고 큰 소리로 따라하는 거다. 차 안에서 섀도잉을 하면, 주위 사람 눈치 안 보고 마음껏 회화를 연습할 수 있다.

요즘은 더 이상 운전을 하지 않는다. 전철에서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여전히 왕복 3시간이 넘는 가혹한 통근... ㅠㅠ) 하루 3시간씩 전철을 타면, 출퇴근 시간만 읽어도 이틀이면 책 한 권을 읽는다. 전철역에 내려 회사까지 거리가 상당하다. 6호선 디지털 미디어 시티 역에 디지털 미디어 시티가 없다. 내려서 버스로 3정거장 가야 DMC가 나온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DMC역에는 DMC가 없고, 국민행복시대에는..... 쿨럭!) 나는 역에 내리면 운동 삼아 걸어서 회사로 오는데, 그럴 때도 섀도잉을 연습한다. 블루투스를 귀에 꽂고 중국인 바이어와 통화하는 척 큰 소리로 떠들면서 온다. '책상 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무슨 책입니까?' '영어책입니다.' 중국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듣고, 웬 미친 사람이? 할 거다. ^^

나보다 상태가 더 심각하셨던 분이 계시다. 나의 통역대학원 입시반 스승이신 한민근 선생님이다. 선생은 1970년대 말 영어를 독학으로 공부하셨는데, 당시엔 워크맨이나 MP3플레이어가 나오기 전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생긴 카세트 플레이어를 어깨에 메고 다니며 섀도잉을 연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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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책을 읽을 수 없는 버스 통학 시간이 아까워 그 시간에 섀도잉을 하셨다. 그래서 카세트 플레이어를 어깨에 메고 다니며 걸을 때나 버스를 기다릴 때 회화 테이프를 틀어놓고 중얼중얼 하셨단다. 동네 사람들은 선생님이 공부하다 미친 사람인줄 알았단다. 선생님에 대한 오해가 풀린 건 TV 덕분이다. 1984년 미국 대선에서 레이건과 몬데일이 TV 토론회를 벌였는데, 당시 한국에서 최초로 미 대선 후보 토론회를 생중계했다. 그리고 한민근 선생님이 동시통역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는데, TV에 나온 선생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오해를 풀었다. '저 사람이 미친 사람이 아니라, 동시 통역사라는 사람이었구나.' (동시통역사라는 직업이 최초로 알려진 계기였다.)

선생은 정작 동시통역사 활동을 오래 하시지는 못했다. 귀 가까이에 카세트 스피커를 갖다대고 영어 청취를 훈련하는 바람에 청력이 나빠졌다. 동시통역사에게 청력은 생명과 같은 것이라, 선생은 결국 통역사를 그만두고 학원 입시반 강사가 되셨다. 그 덕에 나도 선생님을 만나 통대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선생님을 만나게 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또. ^^)

나는 지금도 한민근 선생님을 내 인생의 큰 스승으로 생각한다. 사실 선생님은 잘나가는 스타 강사는 아니었다. 선생의 공부가 그러했듯, 학원 강의에도 요령이 없었다. 선생은 그저 우직하게, 성실하게 열심히 공부할 것만을 주문했다. 요즘 토익 출제 경향을 쪽집게 도사처럼 알려준다는 강사들이 뜨는데, 선생은 단기간에 시험 성적을 올려주는 요령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험만 잘 봐서, 통역사가 되면 뭐하나요. 실력이 없으면, 먹고 살 수가 없는데.' 이게 선생님의 지론이었다. 그러니 단기 속성으로 시험 잘보는 요령을 배우려는 학생은 금세 떨어져 나갔다. 더 많은 학생을 받으려면 요령도 좀 가르쳐주시면 좋으련만, 선생님은 공부도 강의도 요령을 피우지 않으셨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아래 기사를 읽어보시라. 고아원에서 생활한 선생님이 26살까지는 영어의 기초도 몰랐다가 오로지 독학으로 통대에 들어간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영어 조기교육이 필요없다고 얘기하는 것도 선생님의 영향이다.

30대 중반에 동시통역 공부 시작해 - 인기 통역강사 된 한민근 씨

*검색해보니 칠순을 바라보시는 선생님은 요즘도 학원에서 강의를 하신다. 방학 동안 빡세게 영어 공부해보실 분은 참고해보시길. (가나다 순인지라 선생님은 제일 끝에 나온다.)

http://www.testwise.co.kr/academy/search_teacher.php

본인의 영어가 수준급이라고 생각한다면, 꼭 한번 수강해보시라. 새로운 영어세계가 열릴 것이다. 직장인이던 내가 선생님을 만나게 된 사연은 다음 시간에...

끝으로 섀도잉이 좋은 이유, 일상의 모든 순간이 즐거운(?) 외국어 학습 시간으로 바뀐다. 나는 등산 갈 때, 사람들이 없는 구간을 만나면 핸드폰을 틀어 섀도잉을 한다. 맑은 공기 맡으며 산 속에서 떠드는 중국어 초급 회화, 재미지다. 집에서 설겆이를 할 때도 자주 섀도잉을 한다. 그릇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음악을 듣기 뭐한데, 그럴 때 섀도잉이라면 문제없다. 이미 수십번을 반복해서 들은 회화문장이라 언뜻언뜻 들려도 다 따라갈 수 있다. 설겆이하면서 하는 섀도잉은 아이들 보라고 하는 일종의 쇼다.^^ '봐라, 아빠는 이렇게 중국어 공부한단다. 니들도 커서 이렇게 공부하면 돼. 괜히 조기 유학 보내 달라고 하지 마.'

내가 세상을 떠나면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해줄까? 드라마 감독으로? 예능 피디로? 그런거 다 필요없다. 나는 민지가 나를 이렇게 기억해주길 바란다.

"우리 아빠요? 세계일주 여행자였어요. 독학으로 5개 외국어를 마스터해서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셨죠. 지금도 설겆이하면서 중국어 회화를 따라하던 아버지 뒷모습이 눈에 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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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