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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8일 07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18일 14시 12분 KST

[공짜 영어 스쿨] 영어에 투자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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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 26. 영어에 투자하지마라

고등학교 진로특강에 가면 아이들이 물어본다. PD가 된 비결이 뭐냐고. 그럼 나는 책을 많이 읽었다고 말해준다. MBC 신입 면접에서 심사위원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게 매년 책을 200권 넘게 읽는다는 얘기였다. 지금도 나는 1년에 100권 이상 책을 읽는다. 그러면 아이들이 다시 묻는다. 1년에 200권씩 책을 읽으면 다 PD가 되냐고. 그럼 다시 진지하게 대답한다.

"저는 PD가 되려고 책을 읽은 게 아닙니다. 그냥 어려서부터 책이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책을 많이 읽다보니 어느 순간 PD가 되어 있더라고요. PD야말로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거든요. PD 시험은 경쟁률이 높습니다. 1년에 한 번 뽑는데, 경쟁률이 1200대 1이에요.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PD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읽었는데 떨어지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억지로 재미없는 책을 읽은 시간이 다 허송세월이 되잖아요. 그냥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미친 듯이 하다보면 꿈을 이룰 수도 있고, 또 못 이룰 수도 있어요. 꿈을 못 이뤄도,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했으니 된 거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지 마세요. 꿈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최근에 읽은 책이 '성장에 익숙한 삶과 결별하라'(우경임, 이경주 지음/ 아날로그)이다. 1980년 한국인 1인당 GDP는 1688달러였지만 2014년에는 2만 8338달러다. 고작 30여 년 동안 약 17배로 늘었다. 고도 성장기에는 어떤 투자든 실효를 거둔다. 집값이 미친 듯이 솟던 시기에는 빚을 내어 집을 사면, 빚을 갚고도 남을 만큼 집값이 올라서 이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저성장 시대다. 고도성장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후진국이 선진국으로 갈 때는 워낙 바닥에서 시작한 것이라 조금만 열심히 해도 성과가 나온다. 일단 선진국에 진입하면 사회 발전 속도가 더뎌지거나, 이웃나라 일본처럼 거품 경제의 버블이 터지면서 후퇴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제 저성장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고도 성장기에는 빚을 내어 투자를 하는 것이 남는 장사였다. 아파트를 사면 무조건 올랐고, 대출 받아 비싼 등록금을 내면 취업 후 갚을 수 있는 시대였다. 저성장 시대는 그렇지 않다. 빚을 내어 집을 사면 빚더미에 올라앉기 딱 좋고, 대출을 받아 유학을 보내면 빚만 잔뜩 진 고학력 백수 만들기 딱 좋다. 인간은 기억의 포로다. 이미 세상은 바뀌었는데, 과거 30년간 고도 성장기의 기억, 그 시절의 성공방식을 여전히 재현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 그 결과, 모두가 열심히 사는데,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 저성장 시대의 역설이 드러난다.

영어 공부가 투자로서 남는 장사였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수출입국을 내걸고 국제 무역에 박차를 가하던 고도 성장기에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취업이나 승진에 유리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좋은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시대다. 영어에 들인 돈을 회수하기가 어려운 시대가 온다. 책을 보니 대한민국에 기러기 아빠만 50만 명이란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온 가족이 현재를, 가족간의 사랑을, 미래 노후 대비 자금을 희생시키며 산다. 외국에서 조기유학한 아이들이 돌아올 때쯤에는 한국 경제는 이미 노후해져서 그 아이들에게 투자한 만큼 뽑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외국어는 자녀가 철들어서 직접 필요성을 느낄 때, 그때 해도 늦지 않고,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국내에서 자신의 노력만으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재능이다. 부디 고도성장기의 철지난 성공방식을 저성장 시대에도 이어가서 가족의 해체나 노후 자금 부족이라는 불행을 겪지는 마시길 빈다.

이제 영어에 투자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투자란 보상을 바라고 하는 행위다. 보상은 없다. 영어 공부, 그 자체가 보상이어야 한다. 영어로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자기계발을 위한 취미 활동, 두뇌 인지력을 키우는 바둑이나 장기 같은 게임처럼 영어 공부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저성장 시대, 소비보다 경험이 더 중요한 시대다. 명품 백이나 외제 승용차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일은 구시대의 산물이다. 앞으로는 그렇게 살다 빚더미 올라앉기 딱 좋다. 오랜 세월 수입 없이 살거나, 취업 자체가 힘든 시절이 오고 있다. 그러한 시대에는 돈 들이지 않고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활동이 각광을 받을 것이다.

저성장 시대에 외국어 공부는 투자이기보다, 현재를 즐기는 취미 활동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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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