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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6일 06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26일 14시 12분 KST

[공짜 영어 스쿨] 어느 아드레날린 정키의 삶

[공짜 영어 스쿨] 14. 어느 아드레날린 정키의 삶

어제는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출발지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오기 위해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국경을 넘었다. 농산물 수출국인 칠레는 야채나 과일의 국경 내 반입을 엄격히 제한한다. 그래서 입국 심사를 위해 버스가 정차한 동안 탐지견이 승객들의 짐을 뒤진다. 샌드위치 속 양상추 한 장이라도 걸리면 낭패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배낭 속의 건포도를 허겁지겁 입에 털어넣었다.

공항에서 일하는 마약 탐지견을 훈련시키는 방법은 미량의 마약에 조금씩 맛을 들이는 것이다. 개가 코카인이나 마리화나을 맛보면 또다시 마약을 찾아헤맨다. 공항 검색대에서 가방을 킁킁거리다 마약 냄새를 맡으면 미친듯이 흥분한다. "여깄다!" "찾았다!" 그렇게 마약탐지견을 훈련시킨다.

전세계 국경수비대 소속 개들이 회합을 한다면 이런 대화가 오고 가겠지. "넌 요즘 뭐 하냐?" "난 얼마 전에 코카인 시작했는데, 완전 죽이더라." "야, 부럽다. 아직 마리화나밖에 못 해봤는데." 한구석에 칠레에서 온 탐지견이 앉아있다. "넌 뭐 전문이니?" "나?...... 난 야채 중독견이야. 야채 냄새를 맡으면 환장하지."

ㅋㅋㅋㅋㅋ

다른 개들은 마약중독자인데, 혼자 야채중독자인 칠레 국경 수비대 탐지견 이야기.

나는 무엇에 중독되었을까? 술 담배 커피를 하지 않으니, 그쪽이랑은 거리가 멀다. 소심하고 겁이 많지만, 실은 나는 아드레날린 정키다. 목숨 걸고 무언가를 할 때 짜릿한 흥분을 즐긴다. 나도 내가 이런 사람인줄 몰랐다. 어려서는 늘 집에서 기죽어 지냈고,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는 소심한 책벌레였다.

여러 의미에서 내 인생이 바뀐 기점이 대학교 1학년 때 싸이클 전국일주할 때다. 그때 한계령을 자전거로 올랐는데, 내려올 때, 속도가 좀 나더라. 설악산 하강 라이딩, 죽인다. 스피드도 코너링도. 왼쪽엔 달리는 트럭, 오른쪽엔 낭떠러지 계곡, 아차 하고 핸들을 놓치면 천국이 바로 앞이다. 그렇게 위험한데 기분은 죽이게 좋았다. '나이 스물에 이렇게 신나게 달리다 죽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가파른 내리막을 앞두고 겁이 날 때면 소리를 질렀다. "죽어도 좋아, 씨발!" 그 날 이후로 내 속의 무언가가 변했다.

첫 직장을 다니면서 직속 상사와 성격이 맞지 않아 많이 힘들었다. 돌쇠형인 상사는 죽어라 열심히 일만하는 일중독자였고, 나는 업무시간 끝나면 칼퇴근하고 놀러다니는 날라리 신입사원이었다. 결국 다혈질인 상사가 폭발하더라. "옥상으로 올라 와, 넥타이 풀고 사나이 답게 주먹으로 한판 붙게." 그 얘기에 조용히 사직서를 던졌다. 돈 벌려고 뭘 그렇게까지... 그때 그 상사가 나를 쳐다보던 눈길을 잊지 못한다. '나는 너 일 잘하는 영업맨 만들려고 한 건데, 그걸 이해 못하니? 너 그렇게 철 없이 어떻게 살래?' 모든 사람이 말렸다. 첫 직장 때려치우면 한국에서 조직 부적응자로 찍혀서 굶어 죽기 십상이라고. 난 속으로 외쳤다. '죽어도 좋아, 씨발! 난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즐겁게 살다가 갈래.'

직장 그만 두면 굶어죽을 것 같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내게는 사직서를 던진 후, 진짜 즐거운 인생이 펼쳐졌다. 회사 그만 두고 다시 도서관을 다니며 통역대학원 입시를 준비했다. 그러다 학교 도서관 게시판에 붙은 안내문을 봤다. 호주대사관에서 영어 경시대회를 한다는 안내였다. 94년 당시 호주에는 PSAT라는 국가 공식 영어 인증 시험이 있었는데, (지금은 IELTS로 바뀐듯) 토플이나 토익에 비해 알려지지 않아 홍보 차원에서 경시대회를 열었다. 1등 상품은 호주 왕복 항공권에 3주간 체류비. 응시했는데, 만점이 나왔다. 생전 처음 본 시험에서.

가끔 토익이나 토플 고득점 요령을 알려달라는 분들이 있다. 영어 시험은 말 그대로 영어 사용 능력을 보는 것이다. 회화나 독해 실력을 키우면 절로 고득점이 나온다. 만약 회화나 독해의 달인인데 성적이 안 나오면 그건 시험 설계가 잘 못된 거고, 회화나 독해는 못 해도 좋으니 토익 성적만 잘 나오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나중에 실전에 가서 헤맨다. 기왕에 에너지를 들인다면 시험 보는 요령을 공부하지 말고, 언어 그 자체를 공부하시기를.

경시대회에서 만점자가 두 명이 나와 면접으로 최종 결선을 치렀다. 94년 가을에 광화문에 있는 호주 대사관에 가서 영어 면접을 봤는데, 다른 동점자는 미국 유학생이라더라. 경시대회 응시 이유를 묻기에, 영어를 혼자 독학으로 공부했는데, 이 기회에 영어 사용 국가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가 먹힌 덕인지, 내가 최종 1등상을 탔다. 다행히 그 다음달에 본 외대 통역대학원 입시에서도 합격해서 다음해 봄에 입학할 수 있었다. 상품으로 탄 항공권에다 퇴직금 남은 돈을 경비로 보태어 겨울 방학 한 달 반 동안 호주 배낭여행을 했다.

94년 당시 호주 여행자들 사이에는 번지 점프가 화제였다. (한국에는 아직 들어오기 전이었다.) AJ Hacket이라는 뉴질랜드 사람이 1984년 처음 레저 상품으로 개발한지라 남반구에서 인기를 먼저 끌었다. 2001년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의 엔딩도 뉴질랜드에서 찍었다. 호주 골드코스트 해변에서 번지 점프를 했다. 50미터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보니 쫄리더라. 그때 마음속으로 또 구호를 외쳤다. '죽어도 좋아, 씨발!' 그리고 뛰어내렸다.

상스럽게 '씨발'을 붙이는 게 불편하다면 마음속으로 그냥 '죽어도 좋아' 해보시라. 나직이 속삭이는 톤이 되면서 오히려 쫄린다. "죽어도 좋아, 씨발!" 하고 후렴구를 붙여야 깡다구가 치밀고 용기가 샘솟는다. 그때 허공에서 떨어지는데 기분이 죽이더라. 아, 난 확실히 아드레날린 정키다.

세계 각국을 여행할 때도 아드레날린 정키의 삶에 충실히 산다. 스위스 인터라켄에 가서 탠덤 패러글라이딩을 했더니 재밌더라. 알프스 융프라우를 보며 브리엔츠 호수변으로 날아간다. 몇년 전에는 큰 딸 민지랑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가서는 포카라에서 또 패러글라이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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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에 이과수 폭포에 왔다가 숙소에서 이런 광고를 봤다. 이과수 상공에서 스카이다이빙을! 아드레날린 정키로서 내 궁극의 버킷 리스트가 바로 스카이다이빙이다. 그래서 달려갔다. 마님에겐 말도 안 하고. 이런 건 사전 승인 사항이 아니다. 사후 보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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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하네스 차고 하늘을 나는 요령에 대해 배운다. 물론 영어로 가르친다. 리스닝이 안되면 많이 후달린다. 아, 영어 배워두길 정말 잘했다. ^^ 막상 비행기 탈 때가 되니 쫄리는지 오줌이 마렵더라. 그래서 화장실에 갔더니, 표지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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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더 쫄린다. 괜찮다. 나에게는 필살의 주문이 있다. '죽어도 좋아, 씨발!' 이 마법의 주문만 외우면 비행기에서도 뛰어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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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마법의 주문을 외울 수 없었다.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뜨지도 못했다. 이과수 폭포가 있는 브라질 국경은 열대우림 지역이라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갑자기 열대성 폭우가 미친듯이 쏟아져 결국 20만원 전액 환불 받고 돌아왔다. 다음날 엘 칼라파테 가는 항공권만 사두지 않았어도 다시 도전하는 건데. 할 수 없지, 오늘만 날이 아니니.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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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 씨발!' 하면서, 겁 없이 막 즐기고 살면 일찍 죽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오래 살게 되더라. 아니 이제는 오래 사는 게 은근 기대된다. 죽어도 좋아! 하면 오히려 사는 게 무척 즐거워진다. 사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데 죽기는 왜 죽어? 매년 배낭여행을 다니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들이대며 살 것이다. 나이 60에 자전거로 유럽 일주를 하고, 70에 캐나다 로키에서 스노우보딩을 하고, 80에 호주 케언즈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게 내 꿈이다.

언젠가 다시 이과수 폭포 상공에서 스카이다이빙 할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일단은 즐겁게 살고 볼 일이다.

(그런데 아드레날린 정키와 공짜 영어 스쿨은 무슨 관계인가요? 라고 하신다면, 내일의 포스팅을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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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