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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3일 06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23일 14시 12분 KST

[공짜 영어 스쿨] 영어를 배우는 순서는 진화의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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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 11. 영어를 배우는 순서는 진화의 순서

지난 여름에 제주도에 여행을 갔다. 올레길을 걷는 걸 참 좋아해서 그날도 한창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디서 표지를 놓친 건지 산속에서 길이 끊겼다. 발목까지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에 들어선 것이다. 앞으로 100여미터만 더 가면 다음 이정표가 나올 것 같았다. 이제 조금만 걸어가면 되는데, 발 아래를 보니 풀이 무성해서 땅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나는 두려움에 몸이 얼어붙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조심해 거기 뱀이 있어!"

하고 머리속에서 누가 계속 외치는 것 같았다. 무성한 풀 속에 발을 딛으면 거기 웅크리고 있던 뱀을 밟아 순식간에 물릴 것 같았다. 이 외침은 사실 수십만년 전 내 속의 원시인이 지르는 비명인데.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전중환 교수의 책이 있다. 진화심리학을 소개하는 입문서로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우리의 마음은 수십만년 동안 진화가 만들어온 산물이다. 우리 몸에 뭐가 이익이고 무엇이 더 안전한지를 일일이 따지려면 정신적으로 피로하다. 생존에 유용한 습성을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본성으로 만들면 훨씬 생존이 용이하다.

수십만년 동안 수렵채취민으로 살면서 영양을 보충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장 빠르게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영양소는 당분이다. 그래서 인류가 단맛을 좋아하도록 입맛이 진화된 것이다. 상한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거나 죽는다는 것도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음식이 상한 냄새를 맡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구역질이 나서 먹을 수 없게 만들었다. 다 수십만년간 적응하고 생존해오면서 생긴 진화기제다.

지난 100년 사이 냉장 기술과 농축업이 발달해서 굶어죽을 일은 없다. 단것을 굳이 섭취하지 않아도 영양보충은 충분하지만, 수십만년 동안 설계된 심리적 본성을 이길 수 없어 단것만 보면 구미가 당기고 결국 과다 비만이나 당뇨에 시달리게 된 거다. 이 모든 게 우리 몸이 사회의 발달을 따라잡지 못해 생긴 결과다.

걷기 여행을 즐기는 나로서, 사실 뱀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일 것이다. 뱀에 물려서 죽는 사람의 수보다 차에 치어 죽는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자동차는 생긴지 100년도 안 된다. 자동차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 심리적으로 각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뱀이 무서워 무성한 풀밭을 걷는 건 무서워하면서, 정작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차도를 뛰어서 건너는 것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서는 후자가 훨씬 더 위험한데.

언어의 진화를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소리를 듣고, 말을 하는 것은 아마 수십만년 동안 이어져온 진화의 산물일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고 글자를 해독한 것은 불과 수천년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200년 전만해도 우리 선조 중 문자를 쓰고 읽는 사람은 극소수의 지식층뿐이었다. 말을 하고 듣는 것이 글을 쓰고 읽는 것보다 수십만년은 더 오래된 행위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우리에게 더 쉬운 것은 듣고 말하기이고 훨씬 더 어려운 것이 읽고 쓰기다.

우리 영어 교육은 어떤가? 듣고 말하기보다 읽고 쓰기를 더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심지어 어른이 되고 나서도 각종 시험을 보기 위해서 듣고 말하기보다 읽고 쓰기에 더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한글을 쓰고 읽는 것도 듣고 말하기를 익히고 나서 몇년이 지나서 시작한다. 그런데 외국어 교육은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시험 때문이다. 교육상 그게 용이하니까 그런 거다.

수십만년 된 듣고 말하기와 수백년된 읽고 쓰기, 심리적으로 전자가 훨씬 용이하도록 진화되었는데 우리는 교실이나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니 거꾸로 공부를 하고 있는 거다. 때문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어렵다는 잘못된 선입관이 생긴다. 읽고 쓰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영어 시험을 볼 때마다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내가 영어를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시험 보는 요령은 딸렸다. 좌절하다가 대학에 갔다. 대학에 가보니 애들이 다들 토플이나 토익 시험 준비한다고, 보카22000이나 문법책 보고 타임지를 읽더라. 말은 미국 유치원생 만큼도 못하는 사람들이 미국의 웬만한 지식층들이나 붙잡고 있을 만한 어휘나 글을 읽고 공부하더라.

난 어차피 영어 전공자도 아니고, 유학 갈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재미삼아 영어를 공부했기에 듣고 말하기에 집중했다. 회화를 잘 하는 게 나의 목표였으므로. 회화 테이프를 듣고, 따라하고, 미국 영화나 시트콤을 즐기며 공부했다. 글보다 말을 먼저 공부했더니 영어가 쉽게 늘었다. 말이 트이자 글은 절로 깨치게 되었다. 이게 올바른 언어 학습의 순서였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토탈 10년을 공부했는데, 영어가 잘 되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 없다. 우리가 거꾸로 배워서 그런 거다. 회화공부부터 다시 시작하시라. 훨씬 더 쉽고 즐겁게 영어를 공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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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짤방은 간만에 셀피~^^

여행 나오면 정말 행복해요.

낯선 곳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심리적으로 진화된 보상기제 같아요.

수렵채취민 시절, 동굴속에 틀어박혀 있기보다

나가서 헤매고 다녀야 뭐라도 잡든지 줍든지 했을 테니까요.

본성에 충실하게 살렵니다. 타고난 방랑자로 즐겁게~^^

(아, 멀리서 마님의 분노의 포효가 들려오는듯.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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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