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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0일 07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0일 14시 12분 KST

[공짜 영어 스쿨] 그 여름, 그 혹독했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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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 2. 그 여름, 그 혹독했던 계절

아버지를 모시고 매년 추석마다 해외여행을 다닌다고 하면 다들 날더러 "효자시네요."한다. 난 효자가 아니다.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무서워하는데. ^^

아버지가 가장 무서웠던 시절은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방학이 시작되자 아버지는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를 가져오셨다. 그러고는 ABC도 모르는 내게, 영어 교과서를 외우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영어 교수법은 정말 간단했다. 문법 이해, 필요 없다. 유창한 발음, 필요 없다. 그냥 문장을 외워라.

영어 교과서 1과는 이랬다.

I am Tom. I am a student. You are Jane. You are a student, too.

더듬거리면서 외웠다. 1과를 다 외우니까, 다음날엔 2과를 외우라고 하셨다. 하기 싫다고 하면 혼났다. 다 못 외우면 매를 맞았다. 많이 못 외우면, 심하게 맞았다. 학창 시절, 내가 집에서 맞고 학교가면 아이들이 내 몸에 든 멍을 보고 놀란다.

"이게 뭐냐?"

"울 아버지한테 맞았다."

"니 아버지 뭐하시는데?"

"울 아버지는 돈 받고 애 패는 게 직업이다."

아버지는 울산 공고 훈육주임이셨다. 학생 체벌이 가능하던 시기였다. 체벌에 있어 명성이 자자하셨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방학 때 울산에 내려갔다가 버스에 탔다. 공고생 셋이 차에 올라서는 내 앞에 섰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육두문자와 함께 아버지 함자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더라.

"오늘 동편 변소 뒤에서 담배피다가 하필 ***한테 걸려가지고, *바."

"빠따, 많이 맞았나?"

"야, 똥꼬가 헐어서 의자에 앉지도 못하겠다. 하여튼 *** 승질은 알아줘야해."

순간 나는 웃음을 팍 터뜨렸다.

공고생들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보소, 지금 내 얘기 듣고 웃었능교?"

위기의 순간. 어떻게 해야하나? 정직이 최선이다.

"그 ***선생님이 우리 아버지인데........

어려서 나도 많이 맞았어요, 집에서......

아버지는 아직도 여전하시구나 싶어서......."

그 친구들, 생긴 건 우락부락했는데 속은 순했다.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더라. 내릴 때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눈빛에서 내가 읽은 건, 연민이었을까?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방학 때, 정말 많이 맞았다. 영어를 한번도 배운 적이 없는 초등학교 6학년에게 중학교 1학년 교과서를 주고 무조건 외우라니, 이게 가능해? 답이 없었다. 맞기 싫으면 외울 수 밖에. 첫날에는 1과를 외웠다. 아직 할 만했다. 둘째날에는 2과를 외웠다. 그러고는 검사 받을 때는1과와 2과를 동시에 외워야했다. 셋째날에는 1과와 2과와 3과를 외우고. 진도가 나갈 때마다 점점 더 어렵고 힘들어졌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맞기 싫으면 외워야했다. 그리고 방학 마지막날...

마루 대청에 아버지와 나는 드러누웠다. 천장을 바라보고 나는 1과부터 줄줄 외워나가기 시작했다. 1과부터 끝까지 암송하는데 1시간 반이 걸렸다. 다 끝나자 옆에 앉아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시던 어머니가 수박을 내어왔다. 그게 나의 첫 책거리였다.

영어 교과서를 외우는 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농땡이를 부리다 맞는 게 더 힘들었다. 나중에 체념하고 그냥 하루에 한 과씩 외웠다. 1시간 정도만 공부하면 한 과는 충분히 외울 수 있었다. 그게 매일매일 계속되니까 결국 방학 끝에는 교과서 전체를 외우게 되더라.

중학교 들어가서 영어는 무조건 100점이었다. 따로 공부할 필요도 없었다. 첫 시험부터 내리 100점을 맞았다. 수업시간에 읽기를 시키면 당시 울산 시골에서는 드물게 발음이 좋다는 얘기도 들었다. 당연하지. 보면서 더듬더듬 읽는 게 아니라, 외운 걸 자동으로 암송하니 유창하게 들렸을 것이다.

10대 때, 나는 아버지에 대한 무서움으로 살았다.

아버지는 나를 의사로 키우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수학도 못하고, 적성도 안 맞는데 억지로 이과를 선택하게 했다. 중고교 시절 내내 괴로웠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가, 심지어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수학인 내가 이과라니. 문과로 옮겨달라 떼쓰다 혼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수학이 젬병이라 시험을 보면 또 맞았다. 이 점수로 의대 가겠냐고. 나는 의대 가기 싫다니까요. ㅠㅠ 그런데 암만 맞아도 수학은 안 되더라. 단순 암기 과목이 아니라서 그런가? 이과를 다닌 고교 시절 내 성적은 반에서 중간이었다. 내신으로 15등급에 7등급. 그 성적으로 의대는 말도 안되고, 어쩔 수 없이 공대에 갔다.

20대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살았다.

공대에 들어가니 공업수학이라는 과목이 있더라. 매 학기마다 점점 더 어려워지는 공업수학. 매번마다 F였다. 한번은 교수님을 찾아가기도 했다. '재수강한다고 성적이 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냥 D로 처리해주시면 안될까요?' 수학은 정말 싫었다. 성적표를 받아보면 바닥에서 맴돌았다.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 때문에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그러던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지금 상태로 가다가는 평생 아버지만 원망하고 살겠구나. 내 인생이 불행해지면, 다 어린 시절 나의 진로를 억지로 바꾼 아버지 탓을 하겠구나. 나이 스물에 내 인생이 불행한 건 아버지 탓인데, 나이 마흔에도 불행하면 그게 과연 아버지 책임일까? 나이 스물인 지금 이 순간, 내가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은? 순간 영어가 떠올랐다. 중학교 때 나름 100점도 받고 그랬던 영어.

얼른 수학을 포기하고, 전공도 포기했다. 공대를 나왔다고 반드시 엔지니어가 되란 법 있나? 딴 걸로 먹고 살거야. 영어만 잘해도 취직은 된다는데.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을까? 중학교 때 나름 영어는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다 교과서를 외운 덕이었지. 그럼 이번에는 영어 회화 책을 한번 외워볼까? 그래서 당시 시사영어사에서 나온 Michigan Action English라는 회화 책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려서 맞으면서 공부할 때는 괴로웠는데, 어른이 되어 내 인생을 바꾸겠다는 각오로 공부하니 괴롭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공업수학의 미적분 문제 풀기보다는 영어 문장 외우기가 훨씬 더 쉽고 즐거웠다.

기초 회화 책 한 권을 통째 외우면 언제 어디서든 영어로 말문이 트인다. 기초 회화는 수준이 낮은 문장이 아니라, 가장 사용빈도가 높은 문장들이다. 자기 소개, 인사말, 날씨 묻기 등등. 이걸 공부하고 외우는 게 쪽팔린다고 다들 대학교 때 VOCA 22000 들고 다니고, Time지 영문 사설 읽고 그런다. 다 소용없다. 기초회화 책 한 권 외우는 게 최고다. 책 한 권을 머리에 집어넣어두니까 회화 할 때 막힐 일이 별로 없더라. 그리고 토익이나 토플은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절로 고득점을 받았다.

그렇게 공부한 영어 덕에 취업에 성공했다. 전공을 포기하고도 말이다. 졸업 후 미국계 기업인 한국 3M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입사 경쟁률이 100 대 1이었는데, 토익으로 본 필기 전형에서 내가 1등이었다더라. 아마 980점인가 나왔을 거다. 영어 잘하는 신입사원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미국 본사에서 누가 출장 오면 자주 불려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에서 온 손님이 물었다.

"넌 미국 어디 출신이니?"

"난 미국에 가 본 적이 없는데?"

한국에서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했다고 하면, 다들 혀를 내둘렀다. 그중 재니스라는 3M 호주 지사 직원이 그랬다.

"독학을 해서 이 정도라면, 너는 언어에 소질이 있는 거야. 정식 교육을 받아볼 생각은 없니?"

영어로 된 정식 교육? 그렇다면 외대 통역대학원에 한번 가볼까?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다. 아, 물론 그 시절에 직속 상사가 나를 좀 괴롭히기도 했다. 울고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지 뭐야. ^^ 지금 생각하면 그 상사가 내 인생의 은인이다. 사람이 회사를 다니는 건 셋 중 하나가 좋아서다. 돈이 좋거나, 일이 좋거나, 사람이 좋거나.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는 하나란다. 사람이 싫어서. ㅋㅋㅋ

통역대학원에 입학한 후, 미친듯이 공부했다. 문과 공부에 대한 평생의 갈증을 그제야 푼 것이다. 공업수학 F를 맞던 내가, 통역대학원에서는 영어 A를 맞았다. 장학금도 받았다. 통역대학원에서 성적 상위권 10%에게만 주는 그 장학금! 국내에서 독학한 영어로 이것도 되는구나! 완전 자신감 만땅이었다. 이런 기세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때 문득 TV에서 MBC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봤다. PD라... 좋겠다. 예쁜 여자도 마음껏 보고........ 잠깐만... 저기 한번 지원해볼까?

재미삼아 지원했다. MBC 딱 한 군데에. 그랬는데 한번에 합격. 와, 거짓말.

영어 덕분에 세상을 사는 게 이렇게 즐거워졌다.

이게 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에게 배운 영어 덕이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열심히 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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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뉴욕 록펠러 전망대에서 아버지와 나. 탑 오브 록. Top of Rock. 맨하탄 전망을 즐기기에 최고의 장소다.

자,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영어 학습 비법을, 딸들에게도 물려줘야할텐데, 어떻게 하지?

저 사랑스러운 것들에게 매를 들수는 없고 말이야. ^^

외국어 학습법을 아이에게 물려주기 위한 짠돌이 아빠의 고군분투,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