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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02일 10시 4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02일 14시 12분 KST

뉴욕 대중교통 3대 코스

김민식

올해 75세이자 근검 절약 정신이 온 몸에 배인 아버지를 모시고 뉴욕 여행을 떠났다. 3주간 여행을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입장료를 내는 박물관도 안 되고, 비싼 티켓을 사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는 것도 안 되고, 일일 시내 투어 버스나 유람선도 비싸서 안 되고...... 어떻게 해야 아버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 그래, 아버지 방식대로 다녀보자.

아버지는 '지공선사'이시다. 지하철 공짜로 타는 노인. 한국에서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지하철 타기다. 목욕을 가야지, 하면 1호선 타고 온양온천 가서 온천욕하고 오신다. 점심은 해물 칼국수를 먹어볼까? 하면 4호선 타고 오이도 가서 바다 구경까지 하고 오신다. 닭갈비가 땡기나? 하면 경춘선 전철 타고 춘천까지 가고, 막 그러신다. 지하철은 공짜니까. 어차피 하루하루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가 고민인 은퇴 세대인데, 뭐.

뉴욕에서도 대중교통을 적극 활용했다. 일단 뉴욕의 교통 카드인 메트로 카드 1주일권을 끊는다. 1주일 동안 무제한으로 탈 수 있다. 덕분에 지하철이 공짜인것 같은 착시현상을 준다. 메트로 카드로 공짜로 탈 수 있는 것들에 죄다 도전해보았다. ^^ 그중 추천할 만한 코스 3개를 뽑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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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Q 트레인.

전철 중 지하로만 다니는 노선은 인근 풍광을 볼 수 없어 여행자에게 답답하다. 맨해튼 도심에서 코니 아일랜드 행 Q 트레인을 타면, 일단 맨해튼 브릿지를 지상으로 건넌다. 차창 너머 맨해튼 스카이라인이 멀어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브루클린에서는 지상으로 운행하기에 바깥 구경하기 좋다. 중간에 한글 간판도 종종 눈에 띈다. 외국 나와서 한글을 보면 그렇게 반갑다. 종점까지 가기 전에 브라이튼 비치에서 내려 코니 아일랜드까지는 바닷가 산책로를 이용해 걷는 것도 좋다. 코니 아일랜드, 소설에서만 보던 그 장소. 쇠락한 풍광의 놀이 공원이 있다.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에 비하면 안타까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한때 뉴요커들의 유원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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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

911기념관이나 배터리파크에 가면,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유람선 투어 호객꾼들이 많다. 뉴욕까지 왔으니 자유의 여신상은 봐야지, 싶다면, 그대가 가지고 있는 전철표로 공짜로 탈 수 있는 페리가 있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겠지. 바로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다. 배터리 파크 바로 옆에 선착장이 있다. 섬에서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인지라 꽤 크다. 멀미도 안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배 오른 편에 창밖으로 벤치가 있는데 앉아서 맨해튼의 고층빌딩을 감상하다보면 자유의 여신상 옆을 배가 지나간다. 그녀에겐 마음속으로만 다짐해두시라.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찾아갈게!" 스태튼 아일랜드 내 전철도 뉴욕 메트로 카드를 이용해 무료 이용할 수 있다. 대단한 관광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동네 구경하는 맛이 있다.

맨해튼에 있으면 정작 맨해튼의 고층빌딩들이 그리는 스카이라인을 볼 수 없다. 이렇게 배를 타고 한번 바다로 나와봐야 전경이 보인다.

인생이 힘들 때도 마찬가지다. 바쁜 일상속에 푹 빠져있으면 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럴 때 여행을 떠나 평소 빠져있던 인간관계나 일상의 반복에서 거리를 두고 다시 살펴보면 답이 떠오르기도 한다. 안 떠올라도 할 수 없다. 그 핑계로 여행을 즐기면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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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루즈벨트 아일랜드 트램

뉴욕 메트로 카드가 있으면 공짜로 탈 수 있는 케이블 카도 있다. 바로 루즈벨트 아일랜드 트램. 무려 북아메리카 유일의 통근용 공중 케이블카다. 맨해튼 섬이랑 루즈벨트 섬을 잇는 출퇴근 수단이다. 관광용이 아니라 통근용이라 교통 카드로 공짜다. 낮에는 관광객들이 꽤 탄다. 목적은 하나다. 맨해튼 섬을 하늘에 떠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 때문이다. 루즈벨트 섬은 별로 볼 건 없다. 시간이 없다면 그냥 케이블카만 타보고 왕복으로 다시 돌아와도 된다.


위에서 추천한 탈거리들은 뉴욕에 1주일 이상 머무는 경우, 무제한 이용권을 어차피 구매해야 하는 경우에만 추천한다. 2박3일 와서 있을 때는 그냥 Hop on and off 버스 타고 하루 만에 싹 다 돌아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자유의 여신상 가는 유람선도 타고, 록펠러 전망대도 올라야 한다. 시간이 짧을 때는 돈으로 질러야 관광한 티가 난다. 돈을 들이지 않고 여행하려면 시간이라도 여유로워야한다.

평생 교직생활을 하고 정년퇴직하신 아버지는 장기 여행을 좋아하신다. 방학마다 여행을 다니셨고, 은퇴 후에는 미국 LA에 가셔서 혼자 하숙집에서 지내며 한 달을 놀다오셨다. 아버지의 지론은 어느 곳이든 1주일 이상 머물러봐야 그곳 사람들의 생활상이 눈에 보인다는 거다. 나도 동감이다. 그래서 배낭 여행은 가급적 장기여행이 가능한 20대에 떠나는 게 좋다.

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온 뉴욕, 좋았다. 사실 난 뉴욕 여행이 3번째다. 첫번째는 신혼 여행. 무슨 신혼 여행을 뉴욕으로 가냐고 그러는데, 아내와 나는 통역사 출신이지만 미국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신혼여행 2주 가면서 1주일은 뉴욕, 1주일은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지냈다. 두번째는 회사에서 출장으로 1주일 다녀왔다. 예능 피디로 일할 때인지라, 현존하는 쇼 오락 프로그램 중 최고 히트 상품이라 할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고 그 티켓을 증빙용으로 회사에 제출하는 게 출장 과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회사 분위기가 아름다웠던 시절이다. ^^)

뉴욕은 갈 때마다 보이는 게 다르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고 (뉴욕의 그 후진 지하철...) 변하는 것도 있다. (사라진 무역센터가 그렇고, 새로 생긴 뮤지컬도 그렇다.) 언젠가 또 가고 싶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