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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5일 10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25일 14시 12분 KST

나는 PD가 아니다

고등학교 진로특강에 가면 아이들이 꼭 묻는 질문이 있다.

"PD님은 언제부터 PD가 꿈이었나요?"

참 답변하기 난감하다. 난 PD가 꿈이었던 적이 없다.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나왔지만, 엔지니어가 되기 싫어 한국 3M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러다 회사 다니기 싫어 2년 만에 그만 뒀다. 직장 생활이 적성에 안 맞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 프리랜서로 살면 된다. 영어 통역사가 되기 위해 나는 외대 통역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남의 말을 옮기는 게 지겨워졌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직업은 없을까? 그걸 고민하다 MBC에 PD로 입사했다.

싫증을 쉽게 내는 내게, MBC 예능국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조연출 시절, 6개월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에 배정되었는데, 그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가요 쇼를 할 때는 가수,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할 때는 탤런트와 영화배우, 코미디를 할 때는 코미디언 등등. 우리 시대 가장 예쁜 여자, 가장 노래 잘 하는 사람, 가장 잘 웃기는 사람, 이런 이들을 만나는 직업.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꿈의 직업이 아닌가.

청춘 시트콤 '뉴 논스톱'으로 연출 데뷔하고, 제목 그대로 논스톱으로 2년 반 동안 계속 일일 시트콤을 만들었다. 방송 편수로 시트콤을 700편 넘게 만든 어느 날, 그 재미도 시들해지더라. 새로운 게 뭐 없을까 고민하다 사내공모를 통해 드라마국으로 옮겼다. 나이 마흔에 드라마 PD로 전직하고 이듬해 '내조의 여왕'을 만들었다.

예능이면 예능, 드라마면 드라마, 매번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기회를 주는 회사,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조직이 다 있나, 하던 참에 어느 날 노조 집행부에서 편성제작부문 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나 같은 날라리 딴따라에게 그런 제안이 온다는 게 좀 이상했지만, 고마운 조직을 위해 그 정도 봉사는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덥석 맡았다.

집행부로 일하던 2012년 1월, MBC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고, 편성 제작부문 부위원장이라는 이유로 나는 집회 프로그램의 연출 기획을 맡았다. 'MBC 프리덤'이라는 뮤직 비디오를 만들고, 팟캐스트를 만들어 사장님의 업적을 칭송했다. 170일 동안 싸우면서 온갖 다양한 포맷의 집회 시위를 기획한 결과, 회사와 나라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아 정직 6개월, 대기발령, 교육 발령, 구속영장 2회 청구, 징역2년 형 구형으로 이어지는 과분한 배려를 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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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파업을 이끈 MBC노조 집행부였던 김민식 PD.

유치장에 들어가서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은 별로 괴롭지 않았다. 지난 3년간 가장 괴로웠던 것은 더 이상 연출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술 담배 커피 골프를 하지 않는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방송 연출이 이미 최고의 취미생활인데, 더 이상 어떤 즐거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방송을 만드는 게 삶의 낙이었던 내게, 회사는 더 이상 일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지금 내가 괴로운 것은 나의 나라 사랑, 회사 사랑이 지나친 탓이구나. PD라는 일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컸기 때문이구나."

회사에서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이 내게 괴로움이 되는 이유는,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 큰 탓이다.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면, 괴로울 일이 없다. 오히려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이용하여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행을 다니며 자기계발에 힘쓰면 될 일을.

그래서 다시 마음먹었다.

'나는 PD가 아니다.'

어려서 피디를 꿈꾼 적이 없다. 그냥 살다보니 피디가 된 것 뿐이다. 그러므로 피디로 살지 못한다고 괴로울 일도 없다.

96년 MBC 공채 면접을 볼 때, 심사위원들이 물었다.

"김민식 씨는 전공도 다르고, 관련 분야에서 일한 적도 없는 데 왜 PD에 지원했습니까?"

"저는 세 사람을 만나면 셋을 웃기고, 열 명이 모이면 열을 웃기는 낙으로 삽니다. 제게 만약 기회를 주신다면 4천만 시청자를 웃겨보고 싶습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김민식 씨를 안 뽑을 건데요?"

"그렇다면 그냥 제 주위 친구들이나 가족을 웃기며 살겠습니다."

파업이 끝나고 정직 6개월을 받고, 대기발령에 교육발령으로 일이 없던 시절,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낙으로 살았다. 그래, 연출을 하지 못한다고, 내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카메라와 편집기가 없어도 글은 쓸 수 있는 것을.

나는 PD가 아니다. 나는 이야기꾼이다. 글이든 말이든 영상이든 언제나 즐거운 소통을 꿈꾸며 산다.

라고, 글을 맺고 싶다. 쿨하고 멋지게.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쿨하지 못함을. 아마 난 앞으로도 PD로 일하고 싶은 마음과 씨름하며 살 것이다. 야외 연출이든, B팀 감독이든, 조연출이든, 받아만 준다면 어떤 프로그램에 가서든 일하고 싶다. 이 마음을 들키면, 일에 대한 내 사랑이 볼모가 되고, 징벌이 될 것이다. 그래서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재미난 일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랑하는 그 마음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PD이고 싶다. 제대로 된 피디 노릇을 하고 살기에 너무나 힘든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더욱 격렬하게 피디이고 싶다.

아이들 진로 특강에서 한 대답으로 글을 마무리하련다.

"전 PD를 꿈꾼 적이 없어요. 그냥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 그것만 생각하고 그 순간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가장 열심히 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PD가 되어 있더라고요. 꿈이란 걸 미리 정해두지 마세요. 하루하루 즐겁게, 열심히 사세요. 그러다보면 어느 날 무언가 되어있을 거예요. 그러면 그때 가서 우기세요. 처음부터 그게 꿈이었다고."

PD 글쓰기 캠프에 왔다.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은 게 꿈이라서?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읽고 싶은 책이 내 곁에 있고, 만나고 싶었던 작가가 내 눈 앞에 있고, 글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내 속에 있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즐거운데 무엇이 되고 아니고 뭐 그리 중요하랴.

지난 3박4일, 즐거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이 글은 한국PD교육원에서 진행한 PD대상 '글쓰기 특강'에 참석 후기로 PD저널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