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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1일 12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01일 14시 12분 KST

할아버지 라이더의 여행 예찬

가평 지나 춘천 가는 길에 앞에 가는 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뒷바퀴에 패니어 가방을 양쪽으로 매고 가는 품이 당일치기 여행이 아니라 텐트랑 캠핑 장비까지 갖춘 자전거 여행자 같았다.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했다. 따라잡고 보니, 외국 사람이었다. 그것도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알고 보니 이 할아버지, 미국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인데, 2달 예정으로 한국과 일본을 돌 계획이란다.

서울에서 출발해 자전거 도로로 춘천까지 가고, 거기서 국도로 양구를 지나 태백산맥을 넘어 고성까지 간다. 고성에서 삼척까지 240킬로 구간은 다시 동해안 자전거 도로 (새로 생겼다는데, 나도 조만간 꼭 달려보고 싶다. 스무살 때 자전거 전국일주할 때 가장 아름다웠던 구간이 동해안 구간이다.)를 타고, 바다를 옆에 끼고 계속 달려 부산까지 간단다. 거기서 배를 타고 일본 규슈로 넘어가는 것. 그게 이 할아버지 여행 일정이다.

나이를 물어보니 69세란다. 이 나이에 지구 반대편,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에 자전거 한 대 들고 와서 노숙하면서 여행 다닌다. 보통은 공원 한 켠 잔디밭에서 텐트 치고 자는데 어제는 자라섬 캠핑장에서 15000원 내고 쉬었다고. 간만에 핫 샤워를 해서 좋았단다. 식사는 어떻게 하냐니까, 한국에는 곳곳에 24시간 편의점이 있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참 좋단다. 별로 가리는 것도 없이 잘 드시네, 했더니, 하루 100 킬로씩 자전거로 달리려면 허기가 져서 무엇이든 잘 먹게된다고.

나도 자전거로 춘천 가는 길인데, 거기 가면 닭갈비라고 유명한 음식이 있는데 그걸 꼭 먹어야 한다. 혼자 가면 안 주는 곳도 있으니, 둘이 가야 한다. 그렇게 의기투합해서 둘이 닭갈비 먹으러 춘천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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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이 할아버지, 자전거 여행 가이드북의 저자다. 아마존에 검색해보니 '콜롬비아 자전거 여행' '네팔 자전거 여행' 부탄 자전거 여행' 등의 책들이 줄줄 나온다. 이름은 Tomas Belc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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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정말 멋지다. 나이 70 다 되어서 낯선 나라에 자전거 한 대 끌고 가서 곳곳을 누빈다. 잠은 텐트 치고 노숙하고, 그 나라에서 제일 싼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한 달간 인도 여행한 적도 있는데 한 달 경비가 350불 들었단다. ^^ 교통비 안 들지, 방값 안 들지, 정말 짠돌이 여행으로 자전거 캠핑만한 게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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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춘천에서 닭갈비 축제도 하더라. 그래도 닭갈비 골목으로 향했다. 기왕이면 오리지널 원조 가게에 가서 대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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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 닭갈비는 매울까봐 숯불로 시켰는데, 고기를 고추장에 찍어 먹더라. ^^ 아, 내가 이분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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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와서 인상적인 게 뭐냐고 물었더니, 숙박 문화라고. 한강 자전거 길 따라 달리는데 옆에 근사한 호텔들이 많다는 거다. 그러다 간판에 크게 '20000원'이라고 적힌 숫자를 봤단다. 저런 멋진 호텔이 20달러? 괜찮은데! 라는 생각에 자전거를 끌고 카운터로 가서 만원짜리 두 장을 꺼냈더니,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 거지. 손가락을 하나 펴고 물어보더란다. '혼자?' '응, 혼자.' 그랬더니 직원이 'Forty Thousand won' 그러더란다. 응? 4만원? 밖에는 2만원이라 써붙여놓고? 외국 사람이라고 혹시 바가지? 간판을 가리키고 'Twenty Thousand won.' 그랬더니, 직원이 그러더란다. "Two people, 2만원, one person, 4만원."

두 사람이면 2만원이고, 혼자 자면 4만원이라니, 계산이 거꾸로 아냐? 그러다 눈치챘단다. 아항! 이 호텔은 용도가 좀 다른 곳이구나! 웃으면서 미안하다 그러고 나왔단다.

양수리 언저리에서 나도 본 기억이 있다. 그 간판. 대실 20000원, 숙박 40000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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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 먹고 후식은 코리안 디저트 카페, 설빙에서 인절미 설빙으로 대접했다. 눈이 휘둥그레지시더군. 도대체 이건 뭐야? 한 입 먹어보더니, 입안에서 폭탄이 터지는 느낌이라며 완전 좋아하는 거다. 설빙을 먹으며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게 또 완전 파란만장한 거다. 그 이야기는 기회가 있으면 다음에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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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전거 여행, 무척 만족스럽다고. 강 따라 이렇게 자전거 전용 도로가 깔린 나라가 흔치 않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응,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께서 수십조원의 돈을 들여 강에다 자전거 도로를 깔아주신단다.'

고향에서 친구들은 나이 70이면 다들 집에서 TV만 본단다. 그러다 서서히 늙어간다고. 본인은 그럴 생각이 없단다. 죽을 때까지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다닐 거라고. 이렇게 훌쩍 떠나지 않았다면, 지구 반대편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고, 그 한국에는 4대강 자전거 길이라는 멋진 자전거 코스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겠냐고. ^^ 이 분이 쓰시는 한국 자전거 여행 가이드북,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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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마 부산을 향해 동해안을 달리고 계실 터인데, 혹 동네에서 만나면 맛있는 식사나 대접해드리시길. 다 잘 드시니 걱정 말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어디로든 떠나보면 멋진 일이 일어날 거야."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 라이더에게 오늘도 한 수 배운다.

덕분에 내게도 새로운 인생 목표가 생겼다.


죽을 때까지 세계일주!

한번 해보는 거지, 뭐. ^^


스무살, 자전거 전국일주의 추억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나이 마흔 여덟에 만난 69세 할아버지 라이더가 내게 희망을 안겨준다.

나이 스물에 즐거운 것은, 40대에 해도 즐겁고, 지금 즐거운 것은, 70에도 즐거울 것이다.


남은 인생도, 아자 아자 아자잣!

드라마는 끝났지만, 내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거!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